사 온 며느리
사 온 며느리
  • 경남일보
  • 승인 2014.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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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시인, 소설가)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게 때로는 불편하고 더는 자신에게 짜증스럽기도 하여서 잊혔으면 싶은데도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기억을 놓아버리면 홀가분하고 마음 편할 것이 분명한데도 그래지지가 않아 떠오를 때마다 무겁고 공연한 괴로움 하나 떠안고 있는 형국이다. 몇 해 전에 보았던 일도 그런 것들 중 하나.

꽤 오랫동안 병원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옆 병상의 환자는 고령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대소변조차 제대로 가리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성격도 여간 깐깐하고 거친 게 아니어서 웬만한 사람은 상대하기가 어렵고 꺼려질 정도였다. 그런 노인의 수발을 드는 것은 앳되어 보이는 며느리였다. 온갖 타박도 모자라 입에 담을 수 없는 거친 욕지거리에 사납게 굴어도 그 앳된 며느리는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혼자서 병수발을 다 들었다. 대소변을 못 가리니 하루에도 몇 번씩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혀야 함에도 불구하고 짜증스러움은커녕 사근사근하게 굴며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해냈다. 요즘 세상에 어디 가서 찾아보나 싶은 그 며느리, 국제결혼으로 오게 된 베트남 여자였다.

같은 병실 사람들이 보다 못해 노인을 나무랐다. 착하디착한 며느리를 왜 그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이냐, 멀리 시집와 고생하는 게 안쓰럽지도 않느냐, 좀 잘 대해줘라…. 그러자 노인이 쏘아붙였다. 저 년을 얼마나 주고 사왔는데 그라노. 돈 엄청 주고 사왔다 아이가! 고생한다꼬? 여기 와 사는 거 호강하는 기라. 지 살던 곳 가봐라. 예서는 꼭지만 틀면 수돗물 콸콸 나오는 것만도 제 팔자에 누려보지 못할 호강인 게지. 다른 거야 그렇다 해도 돈 주고 사왔다는 그 소리에는 대꾸할 말을 잃게 했다. 그게 무슨 이야기겠는가. 그만큼 돈을 들여서 데리고 왔으니 본전을 뽑아야겠다는 것이고, 말 그대로 돈 주고 사왔으니 종이고 노예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보기에도 그녀는 노인의 며느리이고 아들의 아내가 아니라 종이나 다름없었다. 부모와 가족을 위하는 것은 자식으로선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한국에 와서 사라져가는 가정의 맥을 잇게 하고 가정을 살리는 큰일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몇 해가 흘렀어도 그 일은 잊히지 않고 종종 떠오른다. 그리고 그녀를 생각하노라면 내 얼굴이 화끈거리고 미안하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마치 내가 죄를 짓기라도 한 것처럼.

요즘 다문화가정이라고 해서 외국 며느리를 들이는 가정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중에는 잘 적응하고 사랑 받으며 살아가는 외국인 며느리도 많지만 문화적 차이나 인식의 문제로 해서 마음고생을 치르는 이들도 많다. 여러 이해관계로 해서 먼 타국으로 시집 와 사는 저들. 적어도 평등한 사람으로 대접하며 손 한 번 더 잡아줘야 되는 것이 아닐까?

전미야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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