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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열전 <6>주강윤 경남배구협회장경남배구 위해 뛰는 ‘영원한 배구인’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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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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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해변에서 자란 소년의 꿈은 배구선수로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었다.

때마침 도내에는 창원에 체육중학교가 있었다. 거기에 진학하면 배구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고향 남해를 떠났다. 그것은 착오였다. 진학한 체육중학교가 1년만에 없어져 버렸다. ‘배구로 성공하겠다’며 고향을 떠나 배구를 시작했으나 곧바로 좌절한 것이다. 뒤이어 진주동명고에 진학해 배구를 계속하고 대학까지 진학했지만 크게 빛을 보지 못한다.

그는 젊은 나이에 배구와의 짧은 인연을 뒤로하고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 된다.

배구와 관련이 없는 사업가로 변신한 그는 어느날 지역의 건실한 기업인으로 성장해 있었다. 조금의 여유도 생겼다.

그런 그가 다시 배구판에 다시 뛰어들었다. 배구선수로서가 아닌 경남배구협회를 이끄는 수장이 된 것이다. 주변 인사들의 격려도 있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소년은 경남배구협회장이라는 배구에 대한 인연을 되살리며 경남배구와 배구인들을 위해 헌신적인 봉사를 하고 있다.

주강윤 경남배구협회장의 간략한 배구인생이다.



◇ 남해소년 배구공을 처음 잡아보다.

남해 출신인 주강윤(54)경남배구협회장은 어릴 적 도내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했던 1974년 창원의 체육중학교에 입학했다.

일찌감치 ‘배구로 성공하겠다’며 남해를 떠나 창원 소재 체육중학교로 진학한 것이다.

본격적인 배구를 시작한 그는 리더격인 세터를 맡으며 배구선수로서 성장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도 용기를 북돋워 주었고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나 날벼락이 떨어졌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지만 중학교가 1년만에 없어져 버렸다. 결국 자신을 비롯한 남학생 40명은 마산중학교로, 여학생 40명은 마산여중으로 각각 편입돼 버렸다.

졸지에 배구와 멀어졌다. 그는 미련때문에 배구공을 만지작 거릴 수 밖에 없었다. 공부 역시 눈에 들어 올리 없었다. 그러나 허송 세월하며 빈둥거릴 수만은 없는 노릇. 중학교 3학년 때 다시 기회가 왔다. 당시 배구 명문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진주동명고에 진학의 길이 열린 것이다.

1977년 진주동명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배구를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그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이 돼줬다.

당시 고교생 최고의 공격수였던 김형태 선배와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동료 선배 뿐 아니라 평생 잊을 수 없는 지도자를 만난다. 김형태의 형 김형필 감독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뼈를 깎는 혹독한 훈련 속에 배구선수로서 기량을 키워가게 된다. 동명고가 전국대회에 입상하며 명성을 높이기도 한다.

주강윤 회장은 “중·고교 시절 김형필, 고상일 선생님 같은 은사님을 만나 더욱 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또 인생의 멘토이신 정창호 전 교장선생님과의 인연도 깊다”면서 “지금도 연락을 주고 받으며 안부를 묻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창호 교장선생님께선 당시 “너는 운동을 그만 두더라고 무엇이든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와 자신감을 북돋아 주신 것이 항상 기억에 남는다”라고 말했다.

주 회장은 진주동명고를 졸업하고 배구특기자로 창원대에 진학하는 등 배구를 위한 삶을 지속했다. 그러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신체적 한계와 기량 부족을 느끼며 대학 3년 때 배구를 접게 된다. 국가대표의 꿈은 사라졌고 또 다시 배구와도 인연이 멀어지게 된다.

그는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는 180도 다른 기업인으로 변신해 어려움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 후배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

그는 “경기인 출신으로 실제 배구선수들의 고충을 더 이해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대표선수 경력도 없고 배구를 그만둔 것이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영원히 배구인이라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주 회장은 인터뷰 내내 전광인, 하종화 등 엘리트 배구인들을 칭찬하기도 했지만 배구로 성공하지 못하고 진로를 바꾼 학생들을 향한 걱정과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후배들을 보면 참 안타깝고 아쉽다. 운동을 사랑하고 열심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운동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예전에는 수업을 하고 운동을 하게되면 당연히 성적이 안좋을 수 밖에 없었다. 대회에 입상을 해야 배구로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학생들이 지금 수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런 주 회장의 철학이 그에게 경남배구협회장직을 맡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일과 운동을 포기한 후배들의 진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멘토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는 “제가 어렵게 운동을 했기 때문에 후배들의 고충을 알고 있다. 회장직을 수행함으로써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일선 학교에서 고생하는 감독·코치님들께도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가 지난 5년 동안 회장으로 재직했던 김해배구협회는 현재 약 600여 명의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어울리며 도내 배구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 배구사랑은 현재 진행형

지난 2013년 경남배구협회장으로 취임한 주강윤 회장은 앞으로 3년의 임기를 남겨두고 있다.

주 회장은 취임하자 마자 도내 배구원로들과 함께 도민체전과 배구인의 밤을 치르면서 배구인들의 결속을 다졌다. 협회 이사진도 진주와 마산 중심으로 이뤄졌던 부분을 도내 각 지역을 배려해 확대 개편했다.

주 회장은 “배구원로들이 평생을 몸담은 현역에서 은퇴한 뒤 점점 존재감이 없어지고 잊혀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도민체전과 배구인의 밤을 계기로 도내 배구인들의 화합을 도모 중이다”라고 밝혔다.

주 회장은 한편 도내 배구의 위세가 하락한데 대해 책임감과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해 경남과기대 김형태감독께서 지역대학이라는 한계에도 전국체전을 우승하셨다. 그럼에도 서울, 경기 중심의 인재유출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올해 더 어렵겠지만 여전히 우승권인 선명여고를 비롯한 선수들의 기량과 능력을 믿는다”고 말했다.

주 회장은 끝으로 “항상 우리 배구인들이 코트 안팎에서 깨끗한 플레이를 선보이고 사회에 나와서도 일반인들과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학교현장에서도 힘써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내 라이벌 배구인들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존재로 상생 관계다. 나는 경남배구를 위해서라면 발벗고 나설 각오가 돼 있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영원한 배구인’이라 말하며 배구사랑을 몸소 실천해 온 주강윤 경남배구협회장. 그의 배구사랑은 임기와 관계없이 현재진행형이다.



주강윤(55) 경남배구협회장은

생년월일:1960년 6월 8일

학력:남해대서초등학교-마산중학교-진주동명고등학교-창원대학교

경력:김해시배구협회장(2007.12~2012), 現 경남배구협회장(2013~), 現 한국철력 주식회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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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김해문화체욱관에서 열린 제18대경남배구협회장 취임식에서 주강윤회장이 선명여고 하혜민에게 꽃다발을 받고 있다.
주강윤
18대 경남배구협회장 취임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주강윤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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