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배낭
내 인생 배낭
  • 경남일보
  • 승인 2014.05.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명서 (진주경찰서 경비교통과장, 경정)
바쁜 나날 속에 잠시 틈을 내서 산에 오른다. 하늘은 푸르고 산들바람 비켜 가지만 금세 숨이 차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보숭보숭 맺힌다. 양지 바른 곳에 몸을 기대고 먼 하늘을 우르르 본다. 하늘에는 새털 구름 두둥실 흘러가고 보는 사람의 마음도 한결 가볍고 상쾌하다. 옛날에는 산에 오를 때 차체(몸)는 티코처럼 가벼웠고, 엔진(기력)은 에쿠스처럼 힘이 넘쳤는데 지금의 차체는 타이탄인데 티코 엔진으로 오르려고 하니까 과부하에 금방 열 날고 숨이 가프다.

잠시 명상에 잠겼다가 배낭을 풀어헤친다. 김밥, 과일, 버너 등 다양한 것들이 배낭 가득하다. 줄이고 줄였는데도 꼭 챙겨야 할 것들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인생 배낭에는 무엇으로 가득할까. 일종의 운명 같은 인생의 짐, 결코 회피 할 수 없는 인생의 십자가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은 어떤 것일까. 먼저 내 몸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비계 덩어리는 눈에 보이는 짐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짐이 인생배낭에 가득차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미련이나 욕심, 원망, 미움, 증오, 시기 같은 오만 잡동사니가 정돈되지 않은 채 배낭 구석구석에 꾸겨진 채 처박혀 있을 것 같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겁고 성가신 짐들이 양어깨를 짓누르면서 삶을 힘겹게 한다. 옛말에 ‘먼 길을 갈 때는 눈썹도 떼어 놓고 간다’고 했다. 짐이 원수다. 덜어내고 비워내야 한다. 그런다고 사람이 가져야 할 멋을 잃게 되거나 삶의 맛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삶의 맛, 멋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비움에서 온다. 인생을 진짜 아끼고 사랑함은 과욕이나 집착이 아닌 청빈과 비움에서 더욱 빛난다고 하지 않던가.

먹구름처럼 무겁게 잡동사니를 달고 인생길을 갈 수는 없다. 앞뒤 재고 견주지 말고 눈 지그시 감고 과감히 떼어 내고 줄이고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새털구름처럼 맑고 가벼운 자비, 용서, 사랑의 짐으로 인생 배낭을 새로 꾸려야 한다. 금방 떨어지고 말 먹구름이 아니라 오래 멀리 갈 수 있는 새털구름으로….

항상 없었으면 몰랐으면 싶은 것은 늘 곁에 있고, 가졌으면 누렸으면 하는 것은 저 멀리 었었던 삶이 아니던가. 텅 빈 배낭 다시 메고 하산을 재촉한다. 등산이 채움이라면 하산은 비움이 아니겠는가. 무거운 짐 내려놓으니 보이는 세상만물이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아닌 것이 없구나.

아! 행복은 채움 아닌 비움이요 바램 아닌 나눔이니 바라는 것이 없으면 괴로울 일이 없다고 스쳐가는 바람이 일깨워준다.

박명서 (진주경찰서 경비교통과장·경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