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서 (진주경찰서 경비교통과장, 경정)
잠시 명상에 잠겼다가 배낭을 풀어헤친다. 김밥, 과일, 버너 등 다양한 것들이 배낭 가득하다. 줄이고 줄였는데도 꼭 챙겨야 할 것들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인생 배낭에는 무엇으로 가득할까. 일종의 운명 같은 인생의 짐, 결코 회피 할 수 없는 인생의 십자가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은 어떤 것일까. 먼저 내 몸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비계 덩어리는 눈에 보이는 짐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짐이 인생배낭에 가득차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미련이나 욕심, 원망, 미움, 증오, 시기 같은 오만 잡동사니가 정돈되지 않은 채 배낭 구석구석에 꾸겨진 채 처박혀 있을 것 같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겁고 성가신 짐들이 양어깨를 짓누르면서 삶을 힘겹게 한다. 옛말에 ‘먼 길을 갈 때는 눈썹도 떼어 놓고 간다’고 했다. 짐이 원수다. 덜어내고 비워내야 한다. 그런다고 사람이 가져야 할 멋을 잃게 되거나 삶의 맛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삶의 맛, 멋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비움에서 온다. 인생을 진짜 아끼고 사랑함은 과욕이나 집착이 아닌 청빈과 비움에서 더욱 빛난다고 하지 않던가.
먹구름처럼 무겁게 잡동사니를 달고 인생길을 갈 수는 없다. 앞뒤 재고 견주지 말고 눈 지그시 감고 과감히 떼어 내고 줄이고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새털구름처럼 맑고 가벼운 자비, 용서, 사랑의 짐으로 인생 배낭을 새로 꾸려야 한다. 금방 떨어지고 말 먹구름이 아니라 오래 멀리 갈 수 있는 새털구름으로….
항상 없었으면 몰랐으면 싶은 것은 늘 곁에 있고, 가졌으면 누렸으면 하는 것은 저 멀리 었었던 삶이 아니던가. 텅 빈 배낭 다시 메고 하산을 재촉한다. 등산이 채움이라면 하산은 비움이 아니겠는가. 무거운 짐 내려놓으니 보이는 세상만물이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아닌 것이 없구나.
아! 행복은 채움 아닌 비움이요 바램 아닌 나눔이니 바라는 것이 없으면 괴로울 일이 없다고 스쳐가는 바람이 일깨워준다.
박명서 (진주경찰서 경비교통과장·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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