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야 (시인, 소설가)
물론 아들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 아들들이 남의 자식들 못지않게 마음을 써주긴 한다지만 그래도 그놈들 중에 하나만 딸이었어도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이 들어가면서 더해진다. 아무리 아들들이 삭삭하고 곰살궂게 굴어도 딸 같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고, 거기에 여자인 어머니 입장에서라면 역시도 여자인 딸이 더 헤아려줄 것은 당연한 일일 터가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 인간 감성을 자극하고 위무해줄 수 있는 쪽은 아무래도 아들보다는 딸인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미루어 일찍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일까? 요즘 젊은 부모들, 특히 아빠들은 딸을 더 좋아하는 것이 보편적 세태인 것 같다. 그들을 보면 세삼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깊게 뿌리박혀 내려오던 남아선호 사상으로 남녀의 인구비율 불균형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인데 지금은 아들 낳는 비법이 아니라 딸 낳는 비법이 나돈다고도 한다. 그게 감히 상상이나 해보았던 일인가?
물론 나는 아들을 낳고서는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갔던 세대이다. 아들을 낳으면 낳을수록 시부모에게도 떳떳할 수 있었고, 당사자 역시 비로소 할 일을 제대로 해낸 것 같은 기분이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거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을 터이다. 사람들의 달라진 의식과 사회구조의 변화와 그 밖의 여러 가지가 말이다.
어쨌든 시대도 변한데다 또한 나이까지 먹어가다 보니 딸 가진 사람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딸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아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뭔지 모르게 위축되는 기분마저 든다. 그래서일까. 한창 딸 자랑을 늘어놓는 친구를 향해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 ‘그만 해라, 나도 마트 가서 딸 하나 사오련다’였다. 부러움에서 그런 되지도 않는 말이 나온 것이겠지만, 웃음을 터뜨리는 친구 앞에서 오기 부리듯 식식거리며 할 수 있으면 정말 어디 가서 딸 하나 사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미야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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