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그것에의 목마름
딸, 그것에의 목마름
  • 경남일보
  • 승인 2014.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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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시인, 소설가)
모임에 나갔는데 친구 하나가 유별나게 딸 자랑을 해댄다. 저간의 사정이야 그렇고, 늘어놓는 이야기야 항용 세속적인 성공담이나 치부(致富)에 관한 것들을 넘어서지 못하는 게 뻔하다 할지라도 어쨌든 부러운 일면이기는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딸을 갖지 못한 사람으로서 세속적인 자랑거리야 뭐 그렇거니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겠지만 그런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즉 모녀지간에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막연히 부럽기도 하고 뭔지 모를 갈증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떤 모녀가 하찮은 일로 아웅다웅 다투는 것을 보게 되어도 그렇고,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모녀를 보게 되어도 그렇고 나도 딸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끔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곤 한다.

물론 아들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 아들들이 남의 자식들 못지않게 마음을 써주긴 한다지만 그래도 그놈들 중에 하나만 딸이었어도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이 들어가면서 더해진다. 아무리 아들들이 삭삭하고 곰살궂게 굴어도 딸 같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고, 거기에 여자인 어머니 입장에서라면 역시도 여자인 딸이 더 헤아려줄 것은 당연한 일일 터가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 인간 감성을 자극하고 위무해줄 수 있는 쪽은 아무래도 아들보다는 딸인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미루어 일찍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일까? 요즘 젊은 부모들, 특히 아빠들은 딸을 더 좋아하는 것이 보편적 세태인 것 같다. 그들을 보면 세삼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깊게 뿌리박혀 내려오던 남아선호 사상으로 남녀의 인구비율 불균형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인데 지금은 아들 낳는 비법이 아니라 딸 낳는 비법이 나돈다고도 한다. 그게 감히 상상이나 해보았던 일인가?

물론 나는 아들을 낳고서는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갔던 세대이다. 아들을 낳으면 낳을수록 시부모에게도 떳떳할 수 있었고, 당사자 역시 비로소 할 일을 제대로 해낸 것 같은 기분이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거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을 터이다. 사람들의 달라진 의식과 사회구조의 변화와 그 밖의 여러 가지가 말이다.

어쨌든 시대도 변한데다 또한 나이까지 먹어가다 보니 딸 가진 사람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딸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아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뭔지 모르게 위축되는 기분마저 든다. 그래서일까. 한창 딸 자랑을 늘어놓는 친구를 향해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 ‘그만 해라, 나도 마트 가서 딸 하나 사오련다’였다. 부러움에서 그런 되지도 않는 말이 나온 것이겠지만, 웃음을 터뜨리는 친구 앞에서 오기 부리듯 식식거리며 할 수 있으면 정말 어디 가서 딸 하나 사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미야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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