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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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4.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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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시인, 소설가)
약속이란 언제나 가벼운 흥분과 함께 그것에의 이행(履行)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가져다준다. 더군다나 그것이 오래고도 절친한 친구와의 약속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일이 있어 부산에 가는 길에 그곳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일이 주된 목적인지 친구를 만나는 일이 주된 목적인지 분간이 안 되는 출타였다. 그야 아무러면 어떤가? 흔한 말로 뽕도 따고 임도 보고, 둘을 다 이룰 수 있으니 좀 좋지 않으랴. 서화가로서 30년 넘게 오직 한 길만 걸어가는, 나와는 참 절친이다.

부산에 도착하고, 시간에 맞춰 해운대 약속장소로 나가자 친구는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가 환한 웃음을 보내왔다. 한 길만 묵묵히 걷는 데서 나오는 깊고도 은은한 향기가 밴 웃음이었다. 그 웃음만으로도 푸근하고 넉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한 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어떤 이름으로 만나게 되는 것일까? 부모형제, 선후배, 동료…. 정말 많은 사람들을 여러 관계로 얽혀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 친구라는 것처럼 편하고 가까운 이름이 있을까? 물론 배우자나, 부모형제처럼 혈연으로 맺어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배우자나 혈연관계라 하더라도 악연이다 싶을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다 해도 대해야 되는 격이 다른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친구라 해서 격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쩌면 가장 격을 다해야 되는 게 친구관계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또한 가장 허물없고 자신의 속내를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는 게 친구이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어떤 모습을 보여도 친구 사이에서는 부끄러움이 없다. 마음을 써주면서도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과하면 과한 대로 통하는 게 바로 친구이다.

살아가면서 좋은 친구를 두는 것은 그 어떤 금은보화를 얻음보다 값지다는 말은 누차 들어왔고, 주지의 사실이다. 친구로 인해 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배우자나 부모형제와는 또 다른 면에서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살아가면서 서로 의지가 되고, 떨어져 살아도 정신적으로 늘 함께하기 마련인 이름, 친구.

내가 피곤해보였던지 친구는 달맞이고개로 가겠다는 계획을 바꿔 자기 집으로 향했다. 평소의 품성대로 잘 정돈되고 견디어 온 세월의 향기가 배어나오는 집안이고 또한 갤러리이기도 하다. 앉아있으니 내 집이나 다를 바 없이 편안함이 밀려온다. 거기에 친구와 함께라 생각하니 그처럼 넉넉할 수가 없다. 그래,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 떠날 때까지 이렇게 지내는 거다. 속으로 뇌며 친구를 바라보자 내 속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웃음을 짓는다.
전미야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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