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화,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상화, 국민의 눈높이에서
  • 경남일보
  • 승인 2014.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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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근 (객원논설위원, 가야대 행정대학원장)
지난해 8·15 경축사 이후 우리 사회에 던져진 가장 큰 화두는 ‘비정상의 정상화’다. 박대통령은 국무회의뿐만 각종 정부행사에서도 이 말을 빼놓지 않는다. 정부에서도 이미 작년 말에 10대 분야의 48개 정상화 정책과제를 선정하여 공표하였다. 올해에도 부처별로 정상화 과제를 발굴하여 본격 추진한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대국민 담화에서도 비정상과 정상화란 단어를 유난히 강조했다. 이쯤 되면 또 하나의 막연한 정치적 구호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제대로 마음먹고 던진 말이기 때문에 메시지가 지닌 영향력도 당연히 크게 느껴진다.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잡겠다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담긴 ‘비정상의 정상화’는 누가 뭐래도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그런데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와 닿지 않는다. ‘기본이 바로 선 국가를 위한 비정상의 정상화, 국민 여러분과 함께 만들겠습니다.’ 이 말은 국무총리실의 홈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에 관한 주제어다. 국민과 함께 만들려면 국민이 정상과 비정상에 대해 정확히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개념이 명확하지 않으면 각론은 더욱 혼란스럽게 된다.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다. 정상보다 더 정상 같은 비정상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어느 것이 정상이고 어느 것이 비정상인지 공감대 형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무엇이 비정상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정상화가 가능하겠는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해 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흑백논리처럼 분명하게 가를 수 있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어떤 잣대를 놓고 보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결론을 낼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념간, 세대간, 노사간, 지역간 갈등과 분열의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총리 후보직을 사퇴한 안대희 전 대법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청와대의 눈높이에서는 변호사 개업 5개월 만에 16억 원의 막대한 수입을 올린 것이 정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논란이 되는 돈을 ‘기부만 하면 총리로 임명받는데 문제가 없다’라는 생각은 안대희식 정상화 개념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 그 어떤 잣대로도 비정상이다. 결론적이긴 하지만 정상인지 아닌지를 구분해 내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부터 4년 전이다. 2010년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들고 나왔다. 국정 후반기의 통치이념으로 공정한 사회를 정하고 단호한 의지로 밀고 나갔다. 심각한 양극화 현상으로 불만과 절망에 가득 차 있던 국민들도 공정이라는 말을 하나의 희망처럼 받아들였다. 행정고시를 축소하고 공무원 50%를 전문직 등에서 특채하겠다는 정부안도 발표했다. 이번 담화에서 박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과 흡사하다. 미국 하버드대 철학교수인 마이클 샌덜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은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지 몇 달 만에 수십만 부가 팔려 나갔다.

우리 사회에는 ‘공정’이라는 새로운 잣대가 생겼다. 새로운 잣대로 들여다본 우리 사회는 너무나 불공정했다. 청문회 과정에서 장관 후보들이 줄줄이 낙마하고, 딸을 전문직으로 특채한 모 장관도 잣대에 걸려 사퇴했다. 국정 운영의 곳곳이 공정의 잣대에 발목이 잡혔다. 결국 대통령이 내세운 통치이념이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는 안 좋은 모양새가 되었다. 퇴임과 함께 사라졌지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평범한 교훈을 재인식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의 온갖 적폐가 쌓여져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넘어갔던 모든 유형의 부조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분노와 좌절, 절망을 넘어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사회의 비정상화가 그 원인이었다면 반드시 바로 도려내고 바로잡는 것이 맞다. 공정사회나 정상사회는 모두 ‘바르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정치란 공자의 말처럼 바르게(正)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부터 자신을 바르게(正) 하고 모범을 보여야 나라가 바르게 설 수 있다.

안상근 (객원논설위원, 가야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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