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9)
경남일보  |  jung@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7.20  16:25:49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9)
<60>경남의 문학제들, 천상병문학제(2) 
 
앞에서 확인했듯이 천상병문학제가 열리는 산청은 천상병과는 현실적 인연의 경우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학연도 지연도 없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문학제는 문인의 태생지 아니면 그 문인이 창작한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 열리고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보다는 현실적으로 힘드는 쪽이긴 해도 연고는 없지만 그 문인의 작품이 좋아서 어쩔 수 없이 동호인 그룹이 생기고 정기적인 모임 끝에 문학행사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말하자면 천상병의 시가 좋다면 꼭 연고지인 마산이나 진동, 진북이 아니라도 좋다는 것이다. 동호인들이 로스엔젤레스에 많다면 로스엔젤레스에서 천상병을 기리는 낭송회나 문학의 밤 모임을 개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여러 군데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면 더 좋을 것이다.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지리산 아래 전쟁의 참화가 지나간 곳에 따뜻한 양지를 골라 천상병의 천의무봉의 ‘귀천’시를 돌아가면서 읽는다면 이제 지리산은 동족상잔의 공간이 아니라 문화적 화해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이룰 수 있다. ‘귀천’시비를 중산리 관광단지에다 천왕봉을 향해 오르는 의미의 발바닥 형상으로 세우고 난 뒤 그 일을 지역에서 주도한 류준열(수필가), 박득제(시인) 두 사람이 2002년 12월경 필자를 찾아와 한국시사랑문인협회에서 ‘천상병문학제’를 개최하고자 하는데 고문으로 지도를 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필자의 제자다.

그날밤 필자는 이리 저리 생각하면서 ‘그 일을 꼭 산청에서 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스스로 답하기를 여러 차례 하면서 내린 결론은 ‘도와주는 것이 바른 판단이다.’는 것이었다. 우선 천상병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정신적 입지가 확고했고, 대중들의 선호도가 높고, 시의 성격이 문화운동에 알맞은 것이라는 점에 악센트를 둘 수 있었다.

2002년 천상병문학제를 준비하면서 필자는 수상자 심사를 위한 규정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는데 류준열이나 박득제는 여러 군데서 인터뷰 요청을 받고 인터뷰를 했는데 2002년 서울 종로 인사동 귀천카페에서 있었던 천상병의 미망인 목순옥(1935-2010,8, 26)과의 박득제 인터뷰 자료가 현재 남아 있다.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문1) 천상병 문학제에 대한 구상이 있습니까. “천상병 시인은 7살짜리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린이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어린이들을 위한 글짓기대회가 좋겠고, 믾은 분들에게 시를 접하게 하고 사랑하게 되는 행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물놀이 ,판소리 등이 어우러져 천왕봉이 떠나갈 듯이 거행되었으면 합니다.”

문2) 천상병과 지리산을 연관하여 한 말씀 하신다면 “천시인은 평소 산을 좋아하셨고 건강으로 인해 산에는 가지 못했지만 지리산 천왕봉이나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고 싶어 했어요. ‘귀천’은 이상향을 노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저 자신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시비를 세웠으면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내 산청 중산리에 뜻깊은 ‘귀천’ 시비가 우뚝 서 있어 1년에 몇 번이라도 찾아갈까 합니다. 몸은 서울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산청의 가족이 되어 있습니다.”

문3) 천시인의 문학세계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제가 알고 있는 천시인은 시인으로서 긍지를 갖고 있었지요. 평소 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진실에 입각해 쓰여져야 하는 것이 지론이었어요. 1972년부터는 자연을 보고 느낀 대로 솔직 담백한 면을 보여 주었지요. 그래 천시인은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문4) 평소 천시인이 좋아한 음악이나 책이나 아끼던 시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노래는 타향살이, 동심초, 보리수를 즐겨 불렀고, 아끼는 시는 데뷔작인 ‘강물’과 ‘귀천’을 좋아했습니다. 평소 자연을 좋아했는데 새는 날개로 아무곳이나 갈 수 있다고 좋아했구요 산은 의젓해서 좋고 구름은 연인같다고 좋아했어요.”

문5) 술에 대해서는 “젊었을 때는 막소주를 마셨고, 결혼하고서는 막걸리를 마셨고, 간경화로 고생하면서는 맥주 1캔 정도, 돌아가시기 전에는 맥주 2캔을 마셨습니다.”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