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 있는 근대문화유산이 위험하다
공원에 있는 근대문화유산이 위험하다
  • 경남일보
  • 승인 2014.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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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창원YMCA 명예총장)
푸른 하늘, 맑은 날씨에 초록빛 공원을 거닐면서 소중한 문화유산을 통하여 역사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공원과 근대문화유산이 함께 있는 곳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라도 제대로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제황산공원 정상에 있는 진해탑에서 위쪽으로 조금 가면 일제시대에 만든 통신부대 지하벙커가 재작년까지만 해도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해군본부와 진해부대 간의 통신시설인데, 1946년부터 일반인들의 출입과 접근이 통제되고 해군에서 오랫동안 관리한 덕분에 원형이 손상되지 않았던 것이다. 희망원에서 올라오면 진해탑으로 계속 올라가는 길과 제황초등학교 쪽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다. 이곳에 도로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군인숙소 건물이 있고, 오른쪽에는 지하벙커가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1m 정도 높이로 흙을 쌓아서 풀밭으로 되어 있는 벙커지붕이 보인다. 군인숙소 출입구는 도로 쪽으로 되어 있었고 지하벙커는 아래쪽으로 약간 내려가서 좁은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야 입구가 있었다. 도로에서는 지하벙커의 지붕만 보이기 때문에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다.

2차공사가 진행중이었던 2012년이었다. 군인숙소 건물은 한창 철거 중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시청 공원사업소에 문의하니 숙소 건물은 철거해 평화의 광장을 만들 예정이라고 하고, 지하벙커는 동굴카페테리아로 활용할 계획이지만 아직 검토중이라고 했다. 근린공원 조성계획서를 구하여 살펴보니 벙커 입구에 피로티를 설치해 오픈스페이스를 확보하고 외장재 사용은 물론이고 판매공간을 유리로 만들 계획이었다. 한마디로 원형을 파괴하는 계획이었다. 지하벙커는 원형대로 보존하고 카페테리아가 필요하다면 진해탑의 전망공간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더니 아직 공사할 계획이 없으니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했다.

2~3개월 후에 다시 찾은 지하벙커는 몰라볼 정도로 벌거숭이가 되어 있었다. 진입로에 자리잡고 있던 자그마한 초소도 사라졌고 송수신탑 등의 관련시설과 위장막도 철거하였다. 위쪽의 군인숙소 건물을 철거할 때 한꺼번에 공사를 했던 것이다. 철거를 한 이유는 청소년 우범지역이 될 것을 염려하는 주민민원이 있었다고 설명하였다. 원래 벙커의 지붕에는 시멘트로 만든 3개의 통기구가 있었고 가운데가 비어 있었으며 오르내릴 수 있도록 발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통풍과 비상구인 것 같았다. 주변은 출입을 통제하기 위하여 블록담장과 철망이 높이 쳐져 있었으나 내가 들렀을 때는 이미 담장도 철거되었으며 통기구 안의 구멍에는 돌을 가득 채워 놓았다. 벙커 내부에 습기가 생길 것이라는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었다.

최근에 다시 찾아간 지하벙커는 썰렁한 모습이었다. 벙커 내부의 면적은 1160㎡인데 여러 개의 방과 통로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제일 구석진 방의 높은 천장에 통기구가 마련되어 있다. 벙커를 나와서 위쪽으로 가보았다. 평화의 광장 입구쪽에 1m 높이의 사각형 시멘트 구조물이 있고 철판으로 만든 뚜껑이 덮여져 있는데 페인트가 벗겨져서 녹슨 모습이 꽤 오래된 것 같다. 뚜껑 위에 작은 네모박스가 돌출되어 있는데 통풍구인 것 같았다. 풀밭으로 되어 있는 벙커지붕 한가운데에는 흉물스럽게 폭 1m, 길이 17m 정도의 시멘트가 깔려 있었다. 바로 이곳이 3개의 통기구가 있던 자리이다. 담당공무원은 사람이 빠질 것 같다는 주민민원이 있어서 돌로 메우고 시멘트를 덮었다고 설명하였다.

지금도 벙커 입구에는 ‘정보통신대, 송신소’라는 글이 진한 녹색바탕에 흰 글씨로 적혀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공원조성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근대문화유산을 담당하는 시청 담당부서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문화재 관련 전문가의 자문도 없었다. 단지 조성계획 용역보고서에 의존하여 공원담당부서 공무원과 조경전문가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근본적으로는 이런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공원 내에 있는 근대문화유산의 실태를 미리 조사하고 공원조성 계획 수립과정에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전점석 (창원YMCA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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