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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이 따라오는 산길…둘레꾼 인심에 미소생명의 터전 지리산 둘레길 <6>가탄마을∼송정마을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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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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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탄∼송정마을구간은 지리산 둘레길 15코스에 해당한다. 11.3km에 휴식포함 6시간이 소요되는 난이도 ‘상’이다.
하동과 구례사람이 넘나들었던 작은재와 목아재가 있다. 목아재에서 송정마을 말고도 지리산방향 당재까지 8.1km 별도구간이 있다. 산속 길에서 중간 중간에 용틀임처럼 흐르는 섬진강줄기를 볼 수 있으며 송정마을 주변에 석주관 칠의사 묘가 있다. 대부분 숲속길이라 시멘트임도가 많았던 14코스(원부춘∼가탄)와는 달리 걷는 맛이 좋다. 가탄마을→화개천→법하마을→작은재→기촌마을→연곡천→은어마을→목아재→송정마을.
▲혈류성천(血流成川) 위벽위적(爲碧爲赤), ‘피가 흘러 강이 되니 푸른 물이 붉게 물들었다.’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며 평화롭게 흘러가는 강이지만 과거 붉은 핏물로 얼룩졌던 때가 있었다.

조선 선조 31년(1597) 정유재란 시 왜 적장 요시히로가 대군을 이끌고 광양만 사천 하동 섬진강을 따라 밀고 올라왔다.

구례현감 이원춘은 의병들과 함께 전남 구례와 경남 하동의 경계로 전략적 요충지인 섬진강변 석주관에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고 왜적에 맞서 옥쇄(玉碎)항전을 펼친다. 그러나 중과부적, 많은 의병들이 죽고 전세가 밀려 남원성까지 후퇴한 뒤 결국 전사한다.

이를 빌미로 왜구들이 구례까지 들어와 주민들을 괴롭히고 분탕질을 계속하자 구례현 선비 왕득인이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 왕의성과 함께 수백 명의 의병을 모집해 석주관전투를 벌이지만 이 역시 5명의 의사와 많은 의병들이 전사한다. 살아 남았던 왕의성은 훗날 병자호란(1636)때 재차 의병을 일으켜 이곳에서 싸웠다. 이때도 수백명의 의병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진다. 그야말로 섬진강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래서 이 일대를 혈천, 혹은 피내골로 불렀다.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피아골이 피내골에서 온 말이다. 피밭이 많아 피밭골, 단풍이 붉은 피처럼 보여 피아골이라고 불렀다는 것과는 다른 시각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피아골을 ‘지리산 빨치산의 생존투쟁 산물’로 그린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리산 둘레길 15코스 가탄∼송정마을에 혈천, 피내골이 있다. 당시 전사한 이원춘 현감을 비롯한 7인의 의사를 모신 곳이 석주관 칠의사 묘(사적 제 106호)이며 산화한 의병들의 넋도 함께 봉안돼 있다. 묘비 뒷면에 ‘푸른 물이 붉게…’라고 기록돼 있다.
 
▲오전 8시 50분, 귀제비가 날아다니는 가탄마을을 출발한다. 화개천 가탄교를 건너면 쌍계사 가는 1023번 도로상에 법하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을 관통해 오르면 곳곳에 밤꽃의 향연이 화려하다. 마을 담벼락에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회장 유병언 수배전단이 붙어 있다. 한때 ‘하동에 피신했다’는 정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골목길이 끝나면 곧장 산길이다. 돌로 쌓은 두렁이 훤칠하게 높은 논의 사이길이 정겹다. 처음부터 경사가 큰 오르막이다. 주민들의 손이 많이 가는 매실나무 산나물밭 밤밭이 이어진다. 산나물과 매실 수확이 막바지고 이제 밤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어느 순간 인적이 끊긴 곳에서 길도 같이 좁아진다. 사람의 손을 적게 탄 편백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군락이 차례대로 나오고 이때부터 향기로운 풀냄새 나무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오전 9시 50분, 법하마을에서 1.2km지점이자 이 구간 첫번째 재인 작은재에 닿는다. 시작부터 드센 길이라 맺힌 땀과 거친 숨을 고른다. 이정표는 기촌마을 1.9km를 가리킨다. 작은재에서 고도를 낮춘 둘레길은 편안하고 고즈넉하다. 산 속에 의외의 늪지대가 나오는데 강가에 자라는 버들강아지 군락이 있고 물을 찾아 모여들었던 동물들의 흔적도 보인다. 멧돼지는 아예 뻘 목욕을 한듯 군데군데 허방을 만들어 놓았다.

이도 잠시, 숲의 정면이 뻥 뚫리며 하늘의 반이 열린다. 맞은 편 언덕 위에 펜션단지, 그 뒤 높은 산 왕시리봉(1212m), 더 멀리 노고단(1507m) 등 지리산 서쪽 주릉이 아스라하다.

선 자리는 촛대봉을 거쳐 황장산으로 가는 능선. 주민들은 이길 한쪽 산사면의 비탈을 깎아 밤밭을 조성했고 그 아래에는 고사리를 심었다. 요즘 자연산 고사리가 인기를 끌면서 산을 대규모로 개간해 농가수익을 올리고 있다. 고사리 꺾은 망태기 2개가 보이는데 인기척은 없다.
 

오전 10시 35분, 고도를 30m내외까지 급격히 떨어뜨리면 기촌마을이다. 교회 옆을 지나 큰길 피아골로를 만난 뒤 다시 거슬러 5분 만에 추동교를 건넌다. 마을을 관통하는 계곡이 피아골이 시작되는 연곡천이며 반야봉까지 연결된다.

계곡 건너 은어마을 펜션 이름들이 재미있다. 하모니펜션을 비롯해 지리산 아름다운, 섬진강 햇살좋은 아침, 전망 좋은집, 숲속의 아침, 지리산 나무향기, 민들레, 야생화펜션에다 은어펜션까지 있다.
 
핏빛으로 물들었던 섬진강과 피아골에 아이니컬하게도 지금 은어가 헤엄치고 있다. 남해에서 산란을 위해 모천으로 거슬러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은어는 깨끗할 뿐더러 은은한 수박향이 나 맛 좋은 물고기로 명성이 높다. 여름철 섬진강에 낚싯대를 드리운 채 은어를 잡는 사람들이 목격되고 있다. 은어 잡는 전통방식은 자기영역을 지키려는 은어의 속성을 역이용하는데, 성격이 전혀 다른 씨은어를 미리 낚시줄에 매단 뒤, 물에 던져 놓으면 이를 적으로 알고 몸을 비벼 쫓아내는데 이때 낚시바늘에 찔려 잡힌다. 씨은어를 미끼로 이용하는 놀림낚시다. 은어마을 뒤로 이 구간 두번째 오름길이 시작된다.

오전 11시, 담쟁이가 덮은 재실의 기와집 앞을 지나면서 고도를 400m까지 한껏 끌어올린다.
임도가 끊어지고 다시 숲길. 가끔씩 서쪽으로 트인 곳에 섬진강이 조망된다. 어찌 보면 호수면처럼 평화로운데 실제는 갈수기와 만수기 수량의 차가 가장 큰 강에 꼽힌다. 장마철 집중호우시 시뻘건 황톳물이 성난 파도처럼 강 유역을 훓고 지난다.

낮 12시, 고사리재배단지를 만들려는 것인지 벌목된 비알 아래를 지나, 이 구간 2번째 재인 목아재에 닿는다. 목아재에서 오른쪽으로 농평마을 연곡사 당재까지는 별도의 길로 8.1km길이다.
취재팀은 이 길을 뒤로하고 목아재에서 산길로 들어선다. 앞선 작은재와는 달리 목아재에선 오름길로 시작한다. 고도를 500m까지 끌어 올린다. 군데군데 목책으로 둘레길을 단장해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하다.

오후 12시 30분, 섬진강이 보이는 이 구간이 사진촬영 포인트. 섬진강과 산줄기가 어울려 있는 실루엣을 온전하게 조망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섬진강을 따라 석주관앞을 2번 지나갔다. 감옥에서 나온 장군은 1597년 5월 26일 이곳을 지나 하동을 거쳐 진주로 나갔고, 원균이 패전하자 8월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 된 후 수군을 재건키 위해 이곳을 지나 구례를 거쳐 순천으로 갔다. 왜군은 이곳을 우군침투경로로 삼았고 장군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점심과 휴식 후 오후 1시 40분, 송정마을로 향한다. 한껏 높였던 고도를 돌려주지만 산 아래가 도착지로 부담스럽지 않다. 해충방제기가 곳곳에 설치돼 있는 밤밭을 지나고 전원주택 드문드문 자리한 마을에 닿는다. 마을 직전 작은 계곡은 둘레꾼들의 땀을 식혀주기에 안성맞춤이다.

오후 2시 30분, 서울서 내려와 둘레길을 걷고 있다는 젊은이 2명은 지쳐 있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구례에서 출발했는데 화개 가탄까지 갈 예정입니다.” “갈 길이 먼데, 음식은 충분한가요.” “떡 2개에 막걸리 한병입니다. 이 산을 넘어가면 음식점이 있을까요” “외곡에는 있지만 화개까지 가기엔 무리입니다.”

남은 얼음물을 넘겨줬다. 길이 멀고, 가진 것이 없었음에도 취재팀에게 떡 한 조각을 내어 주려했던 그들의 마음이 가상했다.
최창민·강동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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