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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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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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경남의 문학제들, 천상병문학제(3)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00)
<61>경남의 문학제들, 천상병문학제(3) 
 
천상병문학제를 지리산 중산리에서 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천상병의 부인 목순옥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오빠의 친구인 천시인을 만났고 그 이후 동생같이 돌봐 주었습니다. 동백림사건 이후에 힘들었던 시절 정신병원에 가 계실 때 잘 아시는 분의 중간 역할로 병원에서 퇴원한지 2주만에 결혼을 했어요. 17년 동안 알다가 결혼을 한 셈입니다. 나는 그분의 동반자로서 그림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여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 분이 다시 있을까 할 정도로 정말 순박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남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에게나 돈을 받지 않았고 돈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분들에게만 받아서 자기보다 더 어려운 분들에게 막걸리를 사주었습니다.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았습니다.”

목순옥은 천상병의 문단 데뷔에 대해 “중학교에 들어가 세계문학전집을 모두 읽었고, 마산고등학교 2학년때 ‘강물’이라는 시로 국어선생님이신 김춘수 시인에 의해 추천되어 문예지에 나왔는데 본인은 모르고 있었는데 친구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기뻐했다고 합니다.”라 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남편인 천시인을 그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2002년 12월 천상병문학제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위원장에는 부산의 김선옥변호사가 맡고 위원에는 류준열, 박득제, 임명순, 최해춘 등이 맡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류준열 위원은 ‘귀천 시비여’라는 시를 남겼다. “숱한 인내와 인고를 딛고/ 의미의 옷을 입은/ 어엿한 신부가 되어 화사한 자태로/ 돌아와 서 있었다// 너의 몸에는 천상의 아름다운 음율자락이/ 부드럽고 따스한 매만짐 속에 / 하나 둘 새겨졌고/ 그 억만년 어쩔 수 없이 무디고 무디어진 몸뚱아리에/ 화려한 문신으로 수놓아져....”라 썼는데 지리산의 무표정한 돌이 아릿다운 자태인 신부(시비)로 새겨져 와 있다고 감격을 읊었다. 류작가는 중산리 아래 천평리 태생으로 고향 골짜기에 천상병의 시비가 하나의 문화적 형상으로 서 있게 된 것이 단순하지 않은, 지리산 억년 역사에서 예비된 것이라고 노래한 것이다.

필자는 류준열의 작품이 씌어진 그 무렵 ‘귀천 시비’를 썼다. “귀천 시비 서고 난 뒤/ 천왕봉이 시를 읽기 시작했다// 동켠으로 앉아/ 머얼리 남강가 기생이 나왔다가/ 들어간 흔적 살피며 지루 덜어내고// 눈을 더 아래로 다잡을 땐/ 붓대롱에 목화씨 세 낱 넣어 갖고 와/ 세상에 퍼뜨린 일/ 그 일의 순서를 몇 번씩 풀어보는데//아니다 아니다/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천석들이 종(鍾)이지/ 수염 꼿꼿이 붙이고 사는/ 선비/ 팔자 걸음으로 가는 정신이지....”(귀천 시비 전반부) 후에 이 시를 읽은 이들이 중산리가 그렇게 아름다운가, 하고 중산리에 와 보니 천왕봉이 보일 뿐 각별한 경치는 없구먼, 하고 실망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경치이기에 시비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천왕봉이 시를 읽게 되는가, 하고 물음을 던진 사람 가운데 그런 실망을 보인 이들이 있었다. 경치가 아름다워서 천왕봉이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시비에 새겨진 천상병의 시가 아름다워 시를 읽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필자가 이 시를 쓴 의도는 지리산의 역사에는 전쟁의 참화와 이데올로기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수놓였던 곳이고 선비정신과 민족문화의 배경이 되어왔던 점을 환기시키면서 이제는 갈등이 끝나고 문화적 치유의 공간으로 지리산이 거듭나는 계기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려고 한 것이다. 말하자면 시비가 서고 난 뒤 “이슬과 노을/ 구름과 하늘이 제 이름으로 걸어다니고//천왕봉이 제 이름 걸고 / 시를 읽기 시작했다”라 하여 산이 산으로서의 기본 정서를 길어올리는 아늑한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제1회 천상병문학제는 시인 타계 10주년을 맞아 2003년 5월 3-4일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귀천’시비 주변에서 열렸다.전야행사로 3일 오후 6시 30분부터 정통부 세미나실에서 천상병세미나를 열고 이어 축하 음악공연 및 리셉션을 마련했다. 이튿날에는 오전 11시부터 시낭송회, 사이버3행시 우수작 시상, 천상병시문학상 시상, 추모제 등을 전국에서 몰려온 동호인 300여명과 더불어 진행됐다. 이 무렵 의정부에서는 제1회 천상병예술제가 개최되었다. 연극인들이 중심이 되어 의정부시의 협찬으로 이루어졌다. 한 시인을 두고 두 군데서 문학제가 열리는 셈이었다. 그것은 필자가 의도한 동시 다발적인 비출생지역 축제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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