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촌놈이 출세했지요"
"사천 촌놈이 출세했지요"
  • 김응삼
  • 승인 2014.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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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화 청와대 춘추관장
“사천 촌놈이 출세했지요”

청와대 춘추관에서 만난 최상화 춘추관장의 첫마디이다. 그는 정당 사무처 현역(국장) 출신으로 유일하게 1급 비서관이 됐고, 박근혜 정부 탄생의 1등 공신으로 꼽힌다. 대통령 취임을 실질적으로 준비한 취임준비위원회 실무추진단장을 역임했고 박근혜정부 1기 홍보라인이 모두 교체되는 대변혁기에도 유일하게 살아남아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 우리 고장 인물이다. 춘추관은 청와대 출입기자 300여명의 취재지원을 돕는 국정홍보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막중한 곳이다. 인터뷰는 청와대 춘추관 관장실에서 이루어 졌다.

춘추관장은 내외신을 포함한 출입기자 및 외부 언론사들과 함께 매일 전투를 치룬다. 비서관으로는 유일하게 가장 큰 업무공관이자 별채에서 일하는 대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누가 봐도 장군감이라고 할 만한 장신의 거친 외모의 남자이다. 게다가 고향도 거친 바다로 유명한 사천이다.

최 관장은 다도에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터뷰 시간에 맞춰 방문하자 통도사 특산품이라는 ‘연근차’를 다상과 함께 준비해 두었다.

-막걸리가 어울리는 것 같은데

▲어머님은 내가 제일 잘생겼다고 하셨다. 막걸리는 즐기지 않고 사실 오랜만에 기자님과 함께 소주 한잔 나누고 싶은데 형편이 여의치 않다. 이렇게 인터뷰를 요청하니 당황스럽다. 언제 편하게 한번 뵙기를.

-박근혜 정부 1기 비서진으로 일한지 1년이 넘었다. 취임할 때 고향에서 많이들 좋아하지 않았는가?

▲고향에서 많이 격려해 주시고 축하해주셨다.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훌륭한 인물이 아닌데 더 열심히 일해야 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실 춘추관장으로 임명받을 때 보다 취임준비위원회 실무단장직을 수행할 때 의전장으로 대통령을 수행하는 모습이 TV에 많이 보여 전화를 많이 받았다. 돌이켜보면 두달 여 동안 너무 힘들었고 지금 생각하면 괴롭기도 하다. 그래도 성공적이고 상징적인 행사를 잘 치러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당 사무처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 새누리당 총무부장, 사무총장 보좌역, 대변인 행정실장, 대표최고위원 보좌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1급), 직능국장을거쳤다. 90년초부터 정당에 몸을 담았다.

-박 대통령과 인연을 어떻게 맺었나

▲지난 2004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천막당사 때에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당 대표였고, 나는 당 총무부장으로 천막당사를 짓었다. 이 때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 지난 2007년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의 경선과정에서 ‘친박계’(친 박근혜)로 낙인이 찍혔고, 몇 번의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이분은 보이는 그대로이다. 꼼수를 부리거나 다른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무엇이든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만을 생각한다. 우리는 한번 좋아하면 끝까지 좋아한다.

그리고 불통이다 뭐다 말하는데 그런 분이 절대 아니다. 편하게 농담도 하고 같이 식사도 하며, 나만 해도 가끔 우기기도 하고 끝까지 관철시키기도 했다. 엄격한 자기기준과 절제가 있어 그렇지 고집불통이 아니라는 말이다. 참 답답한 노릇이다.

-기자들을 가족처럼 대하고 식구라 부른다고

▲아침부터 밤까지 같이 한다. 심지어 아주 바쁘거나 해외를 나가면 같이 잠까지 잔다. 식구란 한 솥에 밥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춘추관내에 구내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매일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인데 식구가 아니면 무엇인가? 마음이 가는 데로 진심으로 대하면 결국 통한다고 생각한다.

-기자들하고 일하기 쉽지 않는데 힘든 것은 없는지?

▲이런 인터뷰가 제일 힘들다.(하하) 왜 힘들지 않겠는가. 많은 언론사의 다양한 요구, 그리고 정부에 대해 잘못된 보도 등도 있지 않겠는가? 춘추관장은 개인 감정에 따르기 힘든 자리로 사람은 사람으로 대하고 업무는 업무로 대한다.

굳이 꼽자면, 사실 개인에 대한 음해성 발언이나 루머는 감내할 수 있다. 내가 아니면 당당한 것이고 밝히면 되니까. 그런데 부모님에 대한 음해는 너무 힘들었다. 최근 2년 사이에 어머님과 아버님 두 분이 모두 작고하셨다. 그런데 아버님 마저 어머님 가신 충격에 1년 사이에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을 두고 내가 전용기를 타고 다니고, 경찰을 동원해 카퍼레이드를 하고, 조의금을 몇 십억 받았다는 기사가 나왔다. 결국 언론중재위의 기사정정요청까지 받았다. 이때 정말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끼고 힘들었다.

-춘추관장이 하도 바빠 미혼인줄 아는 사람도 많다

▲아내와 딸 세 식구다. 결혼을 늦게 한 편이다. 나이만 많지 철이 덜 들었는데 딸을 키우면서 철이 좀 든 것 같다. 나를 닮아 속상하지만 딸이 너무 좋다. 춘추관장이 되고 난 이후에는 자주 못 놀아줘 미안하고, 부쩍 커버린 딸이 훌쩍 떠나 버릴까봐 두렵기도 하다.

-아내 이야기도 좀 해보세요

▲아내는 뭐.. 내가 사랑해준다고 데리고 왔는데…. 신랑 얼굴을 잘 보여 주지 못해 미안하다. 정당인의 부인으로 살면서 고생도 많이 했다. 여기저기 봉사도 다녔고, 일도 했고, 장사도 시켰다. 가끔 힘들다고 그러기도 하는데 집에 가서 한번 씩 꽉 안아주면 다 풀린다. 고마운 사람이다.

-춘추관장으로서 평이 꽤 좋은데

▲고맙다. 그런 칭찬이 가장 감사한 것 같다. 사실 홍보라는 것이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인 영역이기도 하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 새누리당에서 (홍보에 대해)훈련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춘추관장과 비슷한 형태의 일인 당 대변인 행정실장과 대표최고위원 보좌역을 해봤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SNS도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기계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배워서 지금은 곧잘 한다. 세상에 못하는 것은 없다. 안하는 것이지. 나 같은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후배들도 따라서 많이 가입했다. 최상화스럽게 촌스럽게 잘 운영하고 있고 이제는 나도 재미가 붙었다.

-청불회(청와대 불교신자회) 수석부회장으로 불심이 깊다고 하는데

▲이름 상화를 거꾸로 하면 화상이다. 화상은 ‘큰스님’ 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가끔 스님들께서 내가 절에 가면 “큰스님 오셨어요?” 농담을 해 무안할 때도 있다. 군대는 강원도 철원에 있는 백골부대의 비무장지대에서 수색업무를 했는데 그때도 아무런 연고 없이 군종병이 됐다. 당 직능국장이 종교도 담당하는데 절과 관련된 일이라면 열심히 했고 스님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시인이고, 불교미술에도 조예가 깊은데

▲2010년에 등단했다. 글도 좋아하고, 그림도 좋아하고, 목각에도 조금 취미를 가지고 있다. 외모만 보고 판단하면 안된다. 심지어 나는 혈액형도 섬세하다는 A형이다. 절에 다니면서 불교미술에 큰 관심을 갖게 돼 좋은 스님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나는 한류 창시자 고은 최치원 선생의 후손이다. 그래도 후손으로서 조상의 글월을 읽을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조금씩 공부를 했다. 지금도 직접 글을 쓰기보다는 읽고 배우는데 많이 집중하고 있다. 또한 고향 사천의 명승지 남일대 보존회 회장으로 최치원 선생의 유적비를 세우고, 남일대의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춘추관장직은 언제까지, 출마 얘기도 있는데

▲출마는 무슨. 아직 그런 것을 논할 때가 어니다. 나 자신이 오랜 정당경력을 가지고 있고 선거를 치러도 몇 십번을 치러본 사람이다. 그렇게 쉽게 뱉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지금은 오직 박근혜 정부의 성공만을 위해 생각하고 일한다.

춘추관장직 역시 내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너무 고집을 부리면 안된다. 자리에 연연하는 순간 그 사람은 망가진다. 그런 것들을 보아왔다. 사실 많이 피로하기도 하고 건강도 상했다.
 
 

희망이 열리는 나무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한 최상화 청와대 춘추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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