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열전 <8>권원식 마산제일여고 前 감독
배구열전 <8>권원식 마산제일여고 前 감독
  • 박성민
  • 승인 2014.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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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배구의 중흥기 이끈 열정의 명장
▲권원식 마산제일여고 전 감독 황선필기자
 
1984년. 선수구성이 너무 좋았다.
마산제일여고(이하 제일여고)는 국가대표급 세터 김경희를 비롯해 전국 최고 기량의 선수들로 구성돼 일반 실업팀과 겨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최고의 전력을 자랑했다. 전국 어느대회에 나가도 우승할 수 있는 전력감이었다.

그러나 자만이 화를 불렀을까.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제일여고 배구팀은 전국의 어느 대회에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오히려 팀의 주축인 김경희가 10개의 실업팀이 달려든 스카우트 파동에 휘말리며 팀은 급격히 와해됐다.

이후 우수한 선수들을 떠나 보내고 랭킹 3위급 선수들로 구성된 1986년. 권원식 감독은 심기일전, 이들을 데리고 전국 춘계연맹전에 참가한다. 어려움은 예상했지만 예선전 부터 쉽지 않았다.

언제나 좋은 성적으로 예선을 통과했던 제일여고는 예선부터 1패를 안게 되고 가시밭길을 걷는다. 권 감독은 이때부터 기본기를 다듬고 조직력을 강화하는 등 조직을 재정비하며 본선에 대비했다. 결과는 좋게 나타났다. 제일여고는 당시 강자로 군림했던 김철용 감독의 서울 일신여상을 물리치고 최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누리게 된다.

그는 “감독생활을 되돌아볼 때 그때 그 감격이 잊혀 지지 않는다. 전력이 다소 좋지 않았던 선수들로 구성된 우리가 강팀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하나 된 마음과 조직력이라 생각한다”며 조직력을 강조했다.
이는 팀을 되살리는 계기가 됐다. 그 대회 한 달 뒤 마산에서 열린 종별 선수권 대회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자랑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권 감독은 연승을 계기로 행정실 직원 신분에서 교직으로 자리를 옮기는 개인적인 행운도 함께 얻는다.
‘좋은 선수들만이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뒤엎은 그의 신념이 이루어낸 결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제일여고와 함께한 ‘한 우물’ 지도자
권원식 감독(66)은 자신의 감독 생활 대부분을 제일여고에서 보냈다.
진주와 마산으로 대표되는 경남배구에서 제일여고의 위상은 특별하다. 당대 스타플레이어로 불리는 황경자, 김경희, 황둘선, 정학숙 등이 한 시대를 풍미했고 현재도 최고의 리베로 불리는 임명옥과 곽미란, 김해란 등이 프로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모교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권 감독이 부임한 1976년 이래 제일여고는 1988년까지 10여년 이상 고교여자배구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진해중과 서울경동고, 성균관대 배구부를 거친 권 감독은 웅동중학교 재직시절 제일여고 법인 사무국장인 김우철 선생의 부름을 받고 제일여고와의 인연을 맺었다.
선수시절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세터를 비롯해 전 포지션을 소화했던 그는 학생들에게 항상 기본기를 강조했다.
그는 “경기에서는 반드시 승리를 해야 하지만 배우는 학생 같은 경우에는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만 실업팀에 가서도 발전이 있고 부상도 방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제일여고는 당시 다른 학교 배구부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배구시설을 갖고 있었다. 배구부 전용 기숙사를 만들어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에 나섰고 체육관도 따로 마련해 배구 명문의 기반을 완성했다.

지금이야 흔히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180㎝이상 장신선수가 없었던 제일여고는 항상 기본기를 바탕에 둔 수비와 조직력으로 신장의 열세와 지방팀의 핸디캡을 극복했다.
그는 “큰 선수들에게 이기려면 빠른 속공과 수비가 필수적이었다. 훈련에 매진했고 선수들이 결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배구를 생활체육으로…
권 감독은 순간적인 전술적 영감이 떠오를 때 마다 자신의 전술노트에 메모를 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그는 “배구를 처음 시작할 때는 좋은지도 모르고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시작했었다. 지금은 배구에서 잔뼈가 굵고 생활의 일부가 돼 너무 좋아졌지만 단지 좋아하는 것으로 지도자가 될수는 없다. 지도자에겐 배구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열정이 아직 식지 않았을까. 그는 제일여고 퇴직 후 고향 진해에서 또 다른 배구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아직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지 못했던 배구클럽을 조직해 배구저변 확대에 나선 것이다. 권 감독은 진해에서 주부들의 중심으로 어머니 자모회 배구단을 결성해 18개의 클럽팀을 조직했다.

어렵게 창단한 배구클럽은 현재 남자팀 6개, 여자팀 8개팀이 운영 중이다. 그는 “창단 작업과 클럽을 조직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래서 애정이 많이 간다. 선수들과 달리 순수하게 즐기는 배구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권 감독이 지도하는 진해지역 클럽팀은 생활체육배구대회에 6번 참가해 4번이나 우승할 정도로 실력이 향상됐다.
오는 6월 중순 170여개 팀이 참가하는 통영생활체육대회에도 권 감독은 자신의 팀을 이끌고 참가할 예정이다.
그는 “배구클럽팀의 활동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올해도 전력이 상승된만큼 역시 기대하고 있다. 다들 가정을 가진 어머니들이어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지만 밤 늦은 시간에도 모여 즐거운 마음으로 배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엘리트 종목으로 배구의 인기는 높지만 생활체육으로 배구의 발전 가능성은 아직 여타 종목에 비해 뒤쳐진다.
언제나 인원수 부족에 시달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지역에서는 유연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부산에서는 7인제 배구를 실시하고 있다.
배드민턴과 에어로빅, 수영 등 이미 익숙한 다른 종목에 비해 배구는 리스브 토스 스파이크 등 익히기가 쉽지 않지만 탄력적으로 운영하며 놀기좋은 종목으로 전환을 하고 있다.

그는 “요즘은 예전보다 운동하는 사람들도 전문적인 지도에 어려움에 많다. 학부모들께서 학생들의 소질 개발차원에서 참여해주시면 우리나라 배구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남자대표팀도 월드리그에서 20년 만에 네덜란드를 꺾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어떻게든 배구가 생활체육으로 뿌리를 내려 저변확대가 많이 되는 것이 바람”이라며 배구인의 작은 소망을 드러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유소년 팀을 만들어 클럽활성화에 기여하고 샆다’고 말하는 권원식 감독. 그의 식을 줄 모르는 배구열정은 아직도 진행형이었다.
 
▲권원식 감독은
생년월일-1948.02.24
출생-마산 진전면
학력-진해 도천초등학교-진해중학교-서울 경동고등학교-성균관대학교
지도자경력-마산제일여자고등학교(1976~1988),도로공사(1980) 감독
 
▲마산제일여고 배구부가 지난 1985년 전국남녀종별배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기념촬영을 한 모습. 사진에서 맨 오른쪽이 권원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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