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준비는 잘 되어 갑니까
노후준비는 잘 되어 갑니까
  • 경남일보
  • 승인 2014.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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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말임 (수필가, 어린이집 원장)
요즘 노후준비를 지나치게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부각하고 있는 듯하다. 친절하게도 정년 후 20, 30년 후까지 필요한 자금의 액수를 제시해 주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긴 하다. 그런데 그 노후준비에 필요하다는 돈의 액수를 보고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하는 사람은 몇 퍼센트나 될까. 대개의 경우 가슴이 철렁하고 자신의 자산을 가늠해 보며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과연 노후준비에 돈만 충분하면 우리의 행복이 보장되는 것일까.

현역에서 물러난 사람들이 이삼년만 되면 정말 노인이 된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자주 본다. 팔팔하던 사람이 저렇게도 빨리 노인의 경계에 합류되는 것일까. 그 원인은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보려고 등산이 필수 수순이 되었는데, 등산이 모두에게 해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다. 현역에서 물러난 사람이 누군가에게 매일 점심을 사겠다고 해서 누가 매번 상대를 해 주겠는가. 돈도 써본 사람이 쓰는 재미를 아는 것이지, 평생 봉급생활자가 쓸 돈이라는 건 한정돼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이삼년이 흐르면 ‘인생은 다 그런 것이야’ 하는 허무감에 젖어 과거의 영광을 반추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되고 만다. 현재의 삶을 치열하게 살지 않는다면 이미 갈길 정해진 노인일 수밖에 없다.

진정한 의미의 노후준비는 무한대의 시간, 자유를 어떻게 무엇으로 채워갈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될 일이다. 95세의 노인이 댄스를 배우겠다고 했다. 65세 정년 때에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며 30년 세월을 허송했노라 후회했다. 90세인 홍영녀 할머니는 문맹으로 살다가 70세부터 손자 어깨너머로 한글을 깨우쳐서 20여년 동안 일기를 썼다. 그 어른의 일기는 한편의 시요, 깊은 성찰이 담긴 철학서였다. 꾹꾹 눌러 삐뚤빼뚤 서투른 글을 쓸 때마다 어른이 누렸을 벅찬 희열을 돈으로 살 수 있겠는가.

노후준비에 돈은 중요한 요소이다. 돈이라는 것을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남보다 더 많이 벌고 싶고 더 많이 비축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내 분복대로, 주어지는 대로 누릴 뿐인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잘 운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노후는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자아실현의 기회가 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년이 서글픈 일만은 아니다. 정년은 제 2의 나의 인생을 살아갈 출발점인 것이지, 죽음을 목적으로 한 도정(道程)이 아닌 것이다.

박말임 (수필가·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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