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말임 (수필가, 어린이집 원장)
어머니는 불교신자가 아닌데 초파일과 동짓날에 쌀자루를 머리에 이고 어린 내 손을 이끌고 절에 다녔다. 그런가 하면 무당집도 자주 들락거렸다. 새벽이면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고, 일 년에 몇 번씩은 꼬박꼬박 제사도 지낸다. 어린 나는 성탄시즌에 교회에 나가 교리도 배우고 주일학교에서 찬송가도 목청껏 불렀다. 우리 때만 해도 교회 안 나가던 아이들이 성탄시즌에 교회에 가면 사탕 얻어 먹으러 다닌다는 둥 사과 얻어 먹으러 다닌다는 둥 하는 흉을 보기도 했다.
그런 것들을 종교의 경계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집안의 관습이 답습되었고 내 마음이 가는 데로 행할 뿐이지, 그것이 옳으니 그르니 따지거나 마음의 갈등을 느낀 적은 없었다.
염불하는 스님의 목탁소리에 마음이 경견해지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면 마음이 설렌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전야에는 첫사랑이 찾아와 줄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했다. 잔칫집 마당의 그 웅성거림과 풍성한 분위기가 좋은 것이지, 종교적 이념과는 상관이 없었다. 세상 사람이 다 공평하고 충만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부처님과 예수님의 탄신일은 축복의 날인 것이다.
그런데 팔순을 바라보는 언니들이 얼마 전 부모님 제사에 와서는 제삿상을 외면해 앉아 있었다. 언니들이 왜 그러는 줄 알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오빠들과 나는 제삿상에 넙죽넙죽 절을 하고 조카들에게 제사 모시는 방법도 가르치고 ‘조상님을 잘 모셔야 복 받는다’고 교육도 시켰다. 그리고 음복주도 ‘커어~’ 하며 나눠 마셨다.
교회에서 권사, 집사인 언니들께 헌금 내는데 보태라고 가끔 용돈을 드리기도 한다. 교회 헌금을 내라고 용돈을 드리면 어린애처럼 얼마나 좋아라 하는지, 보는 내 마음이 흐뭇하기 그지없다. 교회를 다니고부터 밝아진 언니들 얼굴을 보면서 꼭 교회 나가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외로운 노년에 교회에 나가 친자매처럼 지내는 분들이 있어 든든하고 안심이 되기도해서다.
내가 부처님 오신 날에 등촉을 밝히는 마음이나 언니들이 교회에 나가 예를 차리는 일이나 다 마음속을 환하게 밝히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서 무언가 할 일을 한 것 같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언니들이 종교인으로서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박말임 (수필가, 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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