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경남일보
  • 승인 2014.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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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말임 (수필가, 어린이집 원장)
불교신자냐고 물어오면 냉큼 대답하지 못한다. 또 불교신자가 아니라는 대답도 하지 못하겠다. 부처님 오신 날에 등을 밝히기 위해 매년 절에 가기 때문이다. 불자도 아닌데 해마다 등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얼까, 스스로 자문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보아온 집안 내력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머니는 불교신자가 아닌데 초파일과 동짓날에 쌀자루를 머리에 이고 어린 내 손을 이끌고 절에 다녔다. 그런가 하면 무당집도 자주 들락거렸다. 새벽이면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고, 일 년에 몇 번씩은 꼬박꼬박 제사도 지낸다. 어린 나는 성탄시즌에 교회에 나가 교리도 배우고 주일학교에서 찬송가도 목청껏 불렀다. 우리 때만 해도 교회 안 나가던 아이들이 성탄시즌에 교회에 가면 사탕 얻어 먹으러 다닌다는 둥 사과 얻어 먹으러 다닌다는 둥 하는 흉을 보기도 했다.

그런 것들을 종교의 경계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집안의 관습이 답습되었고 내 마음이 가는 데로 행할 뿐이지, 그것이 옳으니 그르니 따지거나 마음의 갈등을 느낀 적은 없었다.

염불하는 스님의 목탁소리에 마음이 경견해지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면 마음이 설렌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전야에는 첫사랑이 찾아와 줄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했다. 잔칫집 마당의 그 웅성거림과 풍성한 분위기가 좋은 것이지, 종교적 이념과는 상관이 없었다. 세상 사람이 다 공평하고 충만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부처님과 예수님의 탄신일은 축복의 날인 것이다.

그런데 팔순을 바라보는 언니들이 얼마 전 부모님 제사에 와서는 제삿상을 외면해 앉아 있었다. 언니들이 왜 그러는 줄 알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오빠들과 나는 제삿상에 넙죽넙죽 절을 하고 조카들에게 제사 모시는 방법도 가르치고 ‘조상님을 잘 모셔야 복 받는다’고 교육도 시켰다. 그리고 음복주도 ‘커어~’ 하며 나눠 마셨다.

교회에서 권사, 집사인 언니들께 헌금 내는데 보태라고 가끔 용돈을 드리기도 한다. 교회 헌금을 내라고 용돈을 드리면 어린애처럼 얼마나 좋아라 하는지, 보는 내 마음이 흐뭇하기 그지없다. 교회를 다니고부터 밝아진 언니들 얼굴을 보면서 꼭 교회 나가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외로운 노년에 교회에 나가 친자매처럼 지내는 분들이 있어 든든하고 안심이 되기도해서다.

내가 부처님 오신 날에 등촉을 밝히는 마음이나 언니들이 교회에 나가 예를 차리는 일이나 다 마음속을 환하게 밝히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서 무언가 할 일을 한 것 같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언니들이 종교인으로서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박말임 (수필가, 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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