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02)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02)
  • 경남일보
  • 승인 2014.06.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02)
<63>경남의 문학제들, 천상병문학제(5) 
 
2007년 제5회 천상병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해인(수녀,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 부산 광안리 소재) 시인은 앞뒤 수상자 가운데서 필자가 보기로는 가장 천상병 시인의 시에 근접한 시를 쓴 사람으로 평가된다. 우선 언어가 평이하고, 자연의 목소리 받아적기라 할 수 있고, 동시(童詩)에 가까운 천진한 시심으로 일관된다는 점이 특징이 되기 때문이다.

천상병의 시 ‘새’를 읽어보자.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가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날/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천상병의 대표작인 ‘귀천’의 시상과 유사한 시다. ‘귀천’은 이 세상살이를 소풍 온 것으로 말하고 하늘에 가서는 재미 있었다고 말하겠다는 요지의 시다. 그런데 ‘새’는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 있지만 새는 늘 정감에 찬 목소리로 울며 개의치 않고 초연해 있는 자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크게 보면 현실 초월의 의미를 새기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은 시라 할 수 있다.

이해인의 시‘행복도 새로워’를 읽어보자. “날마다 순간마다/ 숨을 쉬고 살면서도/ 숨 쉬는 고마움을/ 잊고 살았네//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 또한/ 당연히 마시는 공기처럼/ 늘 잊고 살았네// 잊지 말자/ 잊지 말자/ 다짐을 하면서// 다시 숨을 쉬고 / 다시 사랑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 새롭게 사랑하니/ 행복 또한 새롭네” 숨 쉬는 고마움을 잊고 살았다는 평범한 사실에 대한 확인이다. 가톨릭적 사랑이 배어 있는 시지만 일반화된 정서이다. 천상병도 가톨릭 신자가 되었지만 목순옥과 결혼하면서 주로 개신교 교회로 아내 따라 나갔다. 어딘가 글에서 천상병은 “나는 천주교를 개신교로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의리상으로도 불가하다. 몸은 비록 아내따라 편의에 의해 같은 하느님 보러 교회에 오지만 절대 천주교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고 한 바 있다. 최근 가톨릭 장례미사 파견성가에 천상병의 ‘귀천’이 작곡되어 불려지고 있다.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이해인 수녀의 시집 ‘작은 기쁨’(2008, 열림원)에 발문 ‘지상에 핀 천상의 말꽃’을 붙인 바 있다. 서두는 다음과 같다. “이해인 시인의 시는 말꽃이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향기로 그냥 다가오는 꽃과 같이 말이 그냥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것도 사랑으로, 기쁨으로, 기도로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 이상으로 일렁이며 다가온다. 그래서 그의 시는 말꽃이다. 이해인 시인의 시는 지상에서 피는 꽃이지만 천상으로 부르는 기쁨이거나 소망을 담고 있다. 천상으로 가는 이들이 천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천상의 음성 같은 빛깔을 띠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지상에서 피는 천상의 말꽃’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이해인 수녀 시의 언어는 뒤틀려 있는 말이 아니라 뒤틀리기 전에 있었던 본원적인 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세상이 뒤틀려 있으므로 이해인 시인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우리나라 시인들은 뒤틀린 언어로 뒤틀린 세계를 노래한다. 그러나 이해인 시인은 뒤틀려 있지 않은 세계의 사랑을 노래하면서 사랑으로 가 닿는 세상의 대상들과 만난다. 기도 안에서 만나고 편지로서 만나고 그리움으로서 만난다.”

이해인 시인에게 모든 것들은 사랑의 교과서다. “자연이 더 그렇다. 세상에 드러나 있는 것들은 하나도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같이 말 한 마디씩 던지고 있는 대상이다. 신이 지어놓은 피조물들은 아무것도 의미 없이 만들어진 것은 없다는 말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셈이다.”

이해인 수녀가 천상병문학상 수상자가 되자 그 소식은 우리나라 전 언론 매체를 강타했다. 동아, 조선, 부산,국제, 한국, 한겨레, 경향, 문화, 서울, 서울경제, 연합, 오마이뉴스, 경남일보, 경남신문, 경남도민일보 등이 앞다투어 보도했다. 과히 우리나라 시인 중에 독자를 가장 많이 확보한 시인이 이해인이라는 점을 증명해 주는, 그것대로의 쾌거였다. 2007년 6월 5일 보도자료가 나가고 바로 그 다음날 아침 기사를 실은 언론이 위와 같았던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