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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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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0  16: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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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03)
<64>경남의 문학제들, 천상병문학제(6) 
 
제5회 천상병문학제는 여러모로 성황이었다. 첫날 세미나에서는 먼저 수상자 이해인 수녀의 특강이 있었다. 가톨릭이 시심에 자리잡는 것, 동심이 소중하다는 것, 시는 희망이라는 것 등에 대해 진솔한 입장에서 이야기하여 많은 갈채를 받았다. 이날 하동에서 달려온 하병석 하동군의회 의장, 산청군 하봉석의원, 부산 해운대에서 몰려온 천상병 시인에 대한 열렬 독자들, 진주 봉곡동 신안동 성당 신자들, 거제에서 통영에서, 서울에서, 대구에서 천상병이라는 이름 하나만을 보고 모여온 사람들로 붐볐다. 특히 미망인 목순옥의 그룹들이 잊지 않고 찾아와 시가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둘째날 추모제에는 마산교구 김차규 신부, 부산 소설가 이규정(신라대 명예교수), 양왕용(부산대 교수), 부산 언론인 클럽 사무총장 최휘웅, 수필가 정경수, 이양 원장(고려병원), 산청군 김영수 의원, 의정부 천상병예술제 사무국장, 한국시사랑문인협회 회원들, 한국작가연합 여규용, 유미란 이경란, 김진섭, 강희창과 그 일행, 이재근 산청군수와 의회의장,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장준우, 김미진, 유화정, 김혜민, 안가을, 이지나, 박현송 등 학생들과 산청문인협회 박우담 회장, 조종명, 양곡, 이산, 정동교, 김경임, 심재순 등 남가람문학회의 정미경, 손석만, 화요문학회 박현숙 등이 참석했다. 주최측에서는 권재효 회장, 권오은 부회장, 류준열 부회장, 김명은, 강신갑, 박종미, 하영순, 김홍, 최해춘, 천향미, 김안로, 김용수, 한시종, 양민숙 등이 손발이 되어 행사를 이끌었다.

이날 어린이도 부모와 함께 참석했는데 봉곡초등학교 1학년 강한결 어린이(현 삼현여중2)는 객석에 앉아 행사를 기다리던 중에 공중에 떠 있는 애드벌룬을 보고 동시 한 편을 남겼다. “푸른 하늘/ 맑은 하늘/ 나무에서 뿜어나오는/ 공기처럼 맑은 하늘// 열매를 따다가/ 풍선 끝에 달아서/ 날려 보낼까?// 조약돌을 주워다가/ 풍선 안에 넣어/ 날려 보낼까?// 내 마음 묶어/ 날려 보내야지”(주최측 기록장에서)

제6회 천상병문학상은 문효치(국제펜클럽 이사장)의 시집 ‘계백의 칼’에게로 돌아갔다. 이 시집은 “기행시이면서도 상투적인 기행에 떨어지지 않고 시적 상상과 불교적 체험의 깊이가 만나서 이루는 백제시의 진경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7회 문학상 수상자는 문학평론가 김우종이 선정되었다. 수상작은 수필집 ‘그 겨울의 날개’였다. 심사위원회는 “김우종은 문학 사랑, 자연사랑, 인간 존중을 지향하는 참여문학의 실천을 보여주었다”고 밝혔다.

천상병문학제는 2009년 제8회를 무사히 마쳤지만 행사 주체인 한국시사랑문인협회의 사정으로 기존의 주최측으로는 더 이상 일을 추진해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주최측 산청 실무 책임자인 류준열은 박득제와 산청문인협회 등과 협의하고 2010년부터는 산청에서 열리는 기존의 ‘지리산평화제’ 안에 ‘천상병추모제’를 신설하여 기왕에 해왔던 천상병문학제의 불씨를 이어가기로 했다. 행사의 몸집을 극도로 줄여 한국문학작가연합의 협조를 얻어 ‘한문연 시화전’(산천재)과 ‘지리산 문학의 밤’(천상변 추모의 밤) 두 행사를 열었다.

2010년 추모제는 남명기념관에서 열었고 주최는 산청문인협회(회장 송귀준)와 한국문학작가연합(회장 여규용)에서 하고 협찬은 ‘천상병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남가람문학회’가 했다. 마침 추모제는 천상병 추모에다 그해 8월 26일 타계한 목순옥(천상병 시인의 부인)의 추모를 함께 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귀천을 완성하신 목순옥 여사님’이라는 제목의 추모사를 한 배종대 ‘천상병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사장은 추모사에서 “‘귀천’하면 왜 천상병 시인과 목순옥 여사님이 함께 떠올랐는지 의문이 풀린 것입니다. 손에 손을 잡고 하늘로 돌아가시는 두 분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조문을 다녀왔던 부산 송유천 시인이 제게 이런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목여사께서 가시자 마자 백세가 넘으신 모친과 함께 사시던 집이 기어코 경매에 붙여져 아무것도 모르는 어르신을 어떻게 모셔야 할지 모르겠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랐습니다. 어린 아기와 같은 해맑음 속에 가까이 계셨던 분조차 몰랐던 가정 형편이었지요. 그저 천상병과 목여사님을 닮고 싶어했던 제 가슴이 멍해져 왔습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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