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04)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04)
  • 경남일보
  • 승인 201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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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04)
<65>경남의 문학제들, 천상병문학제(7) 
 
지난 번에 적었던 것처럼 2010년 8월 26일 천상병의 미망인 목순옥이 돌아가고 2010년 10월 9일 지리산 시천에 있는 산천재와 남명기념관에서는 ‘천상병추모제’가 열렸다.한국문학작가연합과 산청문인협회가 주최하고 ‘천상병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산청군이 후원한 행사였다. 추진위원장은 류준열이었다. 이날 천상병추모제는 천상병에 대한 추모의식에다 그의 부인 목순옥을 추모하는 의식을 겸하는 것이 되었다.

필자는 행사 팜플렛에 다음과 같은 목순옥 여사 추모사를 올렸다. 제목은 ‘천상병을 완수하고 간 인사동 천사’였다.

‘목순옥 여사! 여사는 살아 있는 천상병 시인이었다. 천 시인의 병 간호로부터 시작되는 목여사의 생애는 천 시인이 타계함으로써 그 이름이 천 시인 이상의 이름으로 한국문단의 한 지점이 되었다. 여사는 지병으로 수술 후 타계하셨다. 천상병의 지상의 생애는 이로써 마감되었다. 여사가 믿었던 천국으로 가시길 빈다. 가서 ‘귀천’을 읊다가 간 낭군을 만나 그 ‘귀천’ 때문에 귀천하기가 쉬웠다 하면서 도란 도란 만단회포를 풀어내시길 빈다.’

내가 목여사를 만난 것은 2003년 5월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중산리에 ‘귀천’시비가 서고 난 다음해 천상병문학제가 열리면서 그 문학제에서 부산 변호사 김선옥 시인의 소개로 첫 대면하게 된 것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김시인은 당시 문학제의 실제 책임자였고 목여사와는 경북 상주초등학교 동창이었다. 한시문협이 온라인 단체인데 오프라인 행사가 필요하여 김시인은 산청군의 협조를 얻고 목여사와 상의하여 ‘귀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중산리에서 천상병문학제를 개최하는 데 합의를 했다.

나는 목여사를 보면서 또 해마다 행사때 만나면서 여사의 인간적 매력과 고 천상병 시인의 미망인으로서 흩으러지지 않는 모습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이 되었다. 여사는 만날 때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하며 나의 노고를 치하한다는 뜻의 인사말을 했지만 나는 언제나 시인의 아내를 거룩하게 수행하고 있는 여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루 전날 전야제에서는 꼭 천상병 시 세미나를 개최했고 그때마다 목여사가 참석하여 인사말을 했는데 그 내용이 시원찮은 주제 발표보다 더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천 시인이 늘 애기같이 술을 달라고 하여 하루에 막걸리 석 잔으로 제한해 주었다는 것, 아내의 말을 신뢰해 주었다는 것, 천주교 세례를 받고도 개신교회에 자기와 같이 가기도 했다는 것, 그러면서도 개종은 어림도 없었다는 것, 천 시인 주변의 성춘복, 강 민, 민 영 등의 시인들이 우정을 넘어 헌신의 애정을 보여주었다는 것 등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해주었다.

그런데 목여사는 명사 반열이었다. 내가 어쩌다 서울 회의가 있어 갔다가 마친 뒤에 인사동 ‘귀천카페’에 가면 뭐 예술의 전당이다, 무슨 문학 행사의 참가 순서다 하여 자리를 비우기가 일쑤였고 운 좋게 카페에 있을 때도 공짜 커피를 한 잔 타 주고는 곧장 스케줄이 있어 나가곤 했다. 그러니까 여사는 남편의 후광으로 살았던 사람이었지만 남편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며 창조적으로 살았던 분이다. 남자가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그의 짝이 남아서 죽을 때까지 남편의 이미지를 완결해 주는 경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사는 그것을 완수하고 천국으로 갔다. 분명 천국으로 갔을 것이다. 여사는 삶 자체가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여사 곁에는 사람이 늘 끓었다. 친구의 폭이 넓었다. 부산 광안리나 해운대쪽 여류화가들을 비롯하여 하동 칠불사 근처 특수 펜션 맛깔의 집 보살님 등이 있었다. 내가 아는 범위로 보면 그렇다. 나는 어느 해 문학제를 마친 뒤 목여사와 부산 맹렬 멤버들에 이끌려 그 맛깔집으로 간 일이 있었다. 미리 준비된 만찬상이 나오는데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밥상이었다. 어디 이름 있는 밥집이라 하여 이 집보다 더 고급스러울 수 있을까? 아니 이집 밥상보다 더 토속적일 수 있을까?

아! 목여사님. 저는 그 밥상으로 다시 한 번 달려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그 기회를 가지고 가시다니! 목여사님, 인사동 천사님! 아무쪼록 가가대소하는 천상병 시인에게 안부나 전해 주시고 영복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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