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휴가보내기
소박한 휴가보내기
  • 경남일보
  • 승인 2014.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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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객원논설위원·국제대학교 교수)
“요즘 바쁘시죠?”, “네?!” 누굴 만났을 때면 무의식적으로 묻고, 생각 없이 답하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 가는 대로 당연하다는 듯이 무작정하고 뱉어낸 말이긴 한데, 무언가 개운치 않은 듯 찜찜한 답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렇다. 우리는 왠지 모르게 정말 바쁜 것 같은, 아니 바쁠 것 같아야 하는, 스스로 쳐 놓은 덫에 갇혀 살아가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 걸 안부라고 묻고, 바쁜 삶에 매달려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내심으로는 ‘쉬고 싶다’는 마음 이다.



잘 보내려면 제대로 쉬어야

휴가에는 ‘푹 쉰다’는 뜻이 깊이 숨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바쁘게 사느라 쌓인 군더더기의 떼를 씻어내듯 푹 쉬러 휴가를 떠난다. 떠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정신적·육체적 압박에서 해방되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을 기대한다. 한데 우리는 매번 찾아오는 휴가에 대해 ‘매번 떠나는 거, 뭐 그저그런 휴가 보낼 거 아니야? 푹푹 찌는 더위에 사람들에 치여 고생만 하는’ 하면서 휴가를 앞둔 마음은 왠지 탐탁지 않다. 그렇다고 남들 다 떠나는데 떠나지 않을 수도 없고 해서 그저 할 수 없이 떠나는 것이 우리가 흔히 겪는 휴가문화가 아닌가.

진정으로 휴가를 보내려면 제대로 쉬어야 한다. 휴식을 제대로 하게 되면 휴가도 잘 보내게 된다. 휴식(休息)은 뜻하는 그대로 나무에 기대어 앉아 내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다. 좋은 음악의 악보에는 쉬어가는 쉼표가 있어 아름다운 음을 만들어낼 준비가 된다. 좋은 풍경화에는 아름다운 경치를 드러나게 해주는 여유로운 여백이 있다. 마찬가지로 땀 흘려 일한 후에 푹 쉬면서 깊이 들었던 단잠이 피로를 몰아내 준다. 쉬어가는 시간과 비어 있는 공간은 인생을 여유롭게 하고 생활을 행복하게 해준다.

물론 사람마다 제각기 처한 생활이 다르다 보니 잘 쉰다는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쉰다는 말을 잘 살펴보면 휴식에도 나름대로 작용하는 원리가 있다. 그 원리는 일상의 바쁜 시간의 ‘멈춤’과 일상생활의 속박된 공간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오게 하는 것’이다. 멈춘 시간은 기억에 남을 만한 느린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그저 아침 먹는 것조차 귀찮아 침대에서 구르다 커튼 사이로 비추는 햇살에 실려 온 새소리에 깨어나는 상쾌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빈둥거리면서 이리저리 숲속을 헤매다 언젠가 본 적이 있던 작은 꽃을 기억해내는 느린 시간으로 하루를 보내는 그런 자유로운 생활이다.

그러면 휴식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휴식을 보내기 좋은 장소는 휴식의 원리가 작동하는 그런 곳이다. 그런 장소는 한가한 산림이나 호수로 둘러싸인 별장, 한적하고 고요한 어촌, 어린 시절의 농경생활이 그대로 유지되는 농촌, 비포장된 길로 이어진, 그리고 걸어서 찾아가야 하는 산골마을, 깊은 산속에 있는 절간과 같은 곳이다. 이런 장소의 공통점은 우리 일상을 잠시 멈추게 한다. 그런 장소는 온갖 군더더기가 있는 복잡한 것들에서 우리를 분리시켜 준다.



휴식장소 스스로 찾아야

하지만 아차! 이걸 놓치면 진정한 휴가 보내기는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누구나 진정한 휴식이 있는 소박한 휴가를 보내려면 그런 장소를 찾는 수고쯤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철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령 자기 마음 전부를 내려놓고 싶은 휴식하기 좋은 장소로서, 고요한 적막 속에서 맑은 여울과 고운 새소리가 귀를 깨우는 그늘 좋은 숲을 찾고 싶다면 스스로 작정하고 샅샅이 뒤져 찾아내야 한다는 걸 명심하자. 그런 곳은 한번 발견하기만 하면 마치 오래 사귀어 편한 벗이 된 친구처럼 늘 휴가기간에 편한 휴식처가 되어 줄 것이다. 그것도 이미 다른 사람이 모두 차지해 버려 떠날 수 없다면 휴가기간을 바꾸어 보거나 그것도 안된다면 차라리 떠나지 말고 집에서 푹 쉬는 게 어떨까.
고원규 (객원논설위원·국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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