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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열전 <10> 김형태 경남과기대 감독경남과기대 정상급 끌어올린 승부사
곽동민  |  dmkwak@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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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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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과기대 김형태 감독
 
 
▲2009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배구부 창단과 함께 코치직을 맡게 된 김형태 감독은 창단 4년 만인 2013년 경남과기대를 전국체전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우수한 선수들이 모두 서울의 대학팀을 찾아 떠나고 사실상 대학 진학이 어려워진 선수들과 함께 땀 흘려 이룩해낸 쾌거였다. 더욱이 프로·실업팀이 전무한 진주지역에서 대학 배구팀을 처음으로 창단해 만들어낸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선수들과 함께 땀 흘리고 운동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김형태 감독은 사실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배구부 감독을 맡기 전까지 꽤 오랜 세월을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다.

“현대자동차 코치를 그만두고 진주로 돌아와 현대차 사원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배구가 자리잡고 있었죠.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를 시작한 아들(김광국·우리카드)에게 조언도 해주고 서로의 생각도 나누면서 우리 지역의 선수들에게도 내가 배구를 하며 느낀 점과 배운 것들을 가르쳐 주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됐습니다.”

결국 배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다시금 그의 손에 배구공을 들게 만들었다. 때마침 경남과기대에서 감독직을 제안했다. 아내는 당연히 반대했다. 김형태 감독은 “아내가 직장생활에 적응됐는데, 편안하게 직장생활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래도 제자들과 함께 땀을 흘릴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버리겠느냐”고 말했다고. 그렇게 그는 15년 만에 배구공을 다시 손에 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배구를 시작해 3년 만에 고교 MVP와 함께 국가대표에까지 선발된 김형태 감독은 형인 김형필 전 동명고등학교 배구감독과 함께 진주 배구의 부흥을 이끈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출신의 형이 있어서였을까. 김형태 감독은 1975년 동명고등학교 1학년 시절, 배구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김형태 감독의 형인 김형필 감독이 동명고등학교 배구부 창단을 계기로 진주로 돌아오면서부터였다.

“사실 형님과는 9살이나 나이차가 있어 형님이 경기를 하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인생에 있어서도, 배구에 있어서도 아버지나 다름 없는 형님이 가끔 배구를 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어요. 그 때문에 나도 형을 따라 배구를 해보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배구와의 인연은 동명고등학교 배구부가 창단 3년 만인 1977년 전국고교 춘계배구 연맹전에서 공동 3위에 입상, 개인적으로는 대회 MVP와 청소년 국가대표, 뒤이어 국가대표에까지 발탁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당시 김형태 감독은 관례상 우승팀에게만 주어지는 대회 MVP를 수상할 만큼 월등한 실력을 갖췄다. 이후 김형태 감독은 한양대 등 쟁쟁한 대학의 제의를 물리치고 경기대를 택한다.

“당시 춘계대회에서 형님이 힘든 일을 겪게 돼 심적으로 무척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때 당시 경기대 임태호 감독님께서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경기대가 전국 최고의 팀이기도 했지만 임 감독님에 대한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경기대에 진학했습니다.”

김형태 감독이 속한 경기대는 전국 무대에서 단골 우승팀이었다. 그 스스로도 대학시절 자신이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어렵고 힘든 상황일수록 더 힘이 나고 실력을 발휘하는 승부사 기질도 이때 완성됐다.

“1980년 전국체전 때 결승전에서 인하대와 맞붙었습니다. 당시 인하대의 선수 구성이 무척 좋았어요. 반면 우리 대학은 부상도 많고 선수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1세트에서 밀리자 오기가 생기더군요. 절대로 지기 싫었습니다. 그뒤 내리 3세트를 따내고 역전승을 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승승장구하던 김형태 감독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경기대를 졸업하고 당시 현대자동차 배구팀에 입단, 선수생활을 마친 김형태 감독은 1989년부터 1993년까지 5년 동안 현대자동차 배구팀의 코치직을 맡게 된다. 김형태 감독은 이 시기를 자신의 배구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때라고 회상했다.

“29살 때였어요. 아직은 젊고 선수들과 함께 운동하는 게 좋다 보니 지도자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코치로서 선수들과 감독님 사이에 중간다리 역할을 잘 했어야 하는데, 저는 그때까지도 선수처럼 행동하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팀의 성적도 점점 나빠졌어요. 그러면서 배구와 멀어지게 됐습니다.”



▲처음 코치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 때문일까. 지금의 김형태 감독은 누구보다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은 모든 선수가 한자리에 모여 선수들 스스로 준비한 배구와 훈련에 대한 발표를 하고 생각을 나눈다. 김형태 감독은 이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우정, 의리가 쌓인다고 믿고 있다.

“그저 좋은 기술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습니다.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앞으로 선수들이 사회에 나가게 되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선수로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훈련 속에서 인간관계를 잘 맺을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남과기대는 올해 열린 삼성화재배 전국대학 배구리그에서 전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김형태 감독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빛을 발하는 승부사 기질은 오히려 그를 더욱 성숙한 지도자로 만들었다.

“올해 대학리그에서는 지난해 선수 수급 실패로 11개 대학팀 중 꼴찌를 했습니다. 지난해 좋은 선수들을 스카우트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그렇지만 내년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거의 재창단하는 마음으로 8명의 선수를 선발했습니다. 전승으로 대학리그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목표로 올 겨울 저를 비롯한 선수단 모두가 담금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가 왜 배구를 하는지, 팀이 가야 할 방향이 어느 곳인지 끊임없이 선수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생각을 듣는다는 김형태 감독. 경남과기대와 김형태 감독이 만들어 나갈 또 한편의 ‘대서사시’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글=곽동민기자·사진=오태인기자



▲김형태 감독은
생년월일-1959. 12. 13.
출생-진주시 명석면
학력-진주 명석초등학교-명석중학교-동명고등학교-경기대학교
지도자 경력-현대자동차 코치, 경남과기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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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인천 송림체육관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 결승전에서 한양대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경남과기대 선수들이 김형태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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