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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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4.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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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경남의 문학제들, 천상병문학제(8)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05)
<66>경남의 문학제들, 천상병문학제(8) 
 
천상병추모제는(지리산평화문학제) 매년 10월 초순에 열리는데 2011년 추모제는 문학제 창립 주도자 김선옥 변호사 추모의식을 겸하여 열렸다. 김변호사는 거창지원 판사를 지냈는데 경북사대부고를 나와 독학으로 고시에 합격한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는 천상병의 부인 목순옥과는 경북 상주초등학교 동기동창으로 천상병을 좋아했고, 나중에 결혼한 부인이 목순옥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더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호주가였다. 암이 걸려 두 번 수술 끝에 유명을 달리했는데 부고를 받고는 추진위원장 류준열과 함께 영안실이 있는 부산의료원으로 달려갔다. 2012년 3월 14일이었다.

이날 서울 대구 포항 등지에서 한국문학작가연합 쪽 회원들과 한시문협 쪽 회원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달려와 국화 한 송이씩 영전에 바쳤다. 눈물이 많은 유미란 시인, 최해춘, 송유천 시인 등은 복도에 앉아 퍽 퍽 울었다. 김변호사는 그만큼 인정이 많았고, 천상병 시인을 각별히 존경하고 사랑했다.

천상병 추모제에서 김변호사 추모의식을 겸하는 시간 오랜 동안 천상병을 정점으로 모였던 사람들은 천상병-목순옥-김선옥을 트리오로 추모하는 묘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참석한 사람들은 아마도 지리산 중산리는 천상병의 새로운 신화를 쓴 사람들을 포근히 안아주는 또 다른 역사를 기록해 갈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류준열은 김선옥 변호사에 대해 <觀 235-동백꽃>이라는 시적 발상의 에세이에서 추모한 바 있다. “2002년 처음 만난 날 술잔 들며 수술 선배가 된다며 동병상련의 눈짓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화에 취하고 문학에 취했던 순간 어제 같은데/ 지리산 골짜기 중산리 귀천 시비 서는 날, 감격과 감탄의 흐뭇한 미소 짓던 날 어제 같은데 천상병문학제 뒤풀이 자리에서 술이 거나해지면 즐거운 분위기 연출하기 위해 살아오면서 달았던 훈장 떼어버리고 상주고을 개구쟁이 되어 탁자 아래로 위로 오르내리는 낭만주의자였는데/ 문학행사 열릴 때마다 비용으로 골머리 앓을 때 든든한 종결자로 항상 옆에 서 계셨는데/ 긴 세월 재판정을 지켰던 판사의 근엄한 흔적도 나이가 들었다는 어른의 점잔도 벗어버리고 시심에 젖고 시정에 눈물 흘리는 여리고 아름다운 시인이었는데.....”하고 절절한 추모의 정을 감추지 않았다.

김선옥 변호사는 <동백꽃 지는 날>이라는 시를 남겼다. “마추파추에서 꼬불꼬불 꾸스꼬를 오를 때/ 석양에 울고 가는 새 한 마리/ 그 울음이 너의 울음인 줄 몰랐다// 아마존 롯지에서 반달이 구름에 가리고/ 별똥별 하나 긴 꼬리 남기고 스러질 때/ 네가 남긴 슬픔의 상흔인 줄 몰랐다// 엄청나게 쏟아 붓는 이과수 폭포에서/ 하늘에 걸친 무지개가/ 네가 타고 올라가는 천상의 다리임을/ 그때는 몰랐다” 동백꽃이 누구일까. 여기서는 목순옥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어쨌거나 아무 연고도 없는 산청군의 오지 지리산 자락 중산리에서 천상병문학제와 그 후속 추모제가 연이어져 오고 있는 것은 어쩌면 기적일지 모른다. 학연과 지연이 아니면 이루어지 않는 문학제! 그 속에서 천상병축제야 말로 순수하고 문학 자체에 대한 열망의 표현일 수 있을 것이다.천상병은 우리나라 시인 가운데서 오직 시만 쓰고 살리라는 생각으로 출발한 거의 유일한 시인이었다. 이를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를 체험으로 보여준 시인이기도 했다.

어떤 평론가는 그를 일러 방외인이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삿갓과 상통하는 점이 있는 시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이 부끄러워 현실세계를 얼굴 들고 다닐 수 없다는 자각으로 주유천하를 하며 시를 쓰고 다니는 것에 모두를 걸었던 김병연(삿갓)이었다. 천상병은 입지를 시에다 걸고 시 안에서만 살겠다는 의지를 실현한 희귀하지만 눈물겨운 일생을 보여준 시인이었다. 이 점에서 그의 시가 비록 경우에 따라서는 완결성이 부족한 면도 있을 것이나 필요 이상으로 난해의 문고리를 잡고 나갈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시인들에 비해서는 일견 성스럽기까지 하다. 그를 생각하는 착한 사람들은 1년에 한 번씩 의정부에서 모이고 중산리에서도 모인다. 눈이 있는 사람은 보고, 귀가 있는 사람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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