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짓는 환경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농사 짓는 환경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 경남일보
  • 승인 2014.07.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보농사꾼의 귀농일지> 빗속의 하동 칠불사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린 한 주였다. 늦게 시작한 장마가 끝이 없다. 찔끔찔끔 내리던 비가 때로는 천둥번개까지 동반하며 폭우로 돌변하기도 했지만, 오래 지속되지를 않아 지금까지는 큰 비 피해는 남기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농사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비가 그쳤더라도 물기가 어느 정도 빠지기 전까지 할 수 있는 밭일은 제한적이다. 풀을 베는 일과 비바람에 쓰러진 농작물을 일으켜 세워 묶거나 병충해 방제를 위하여 농약을 뿌리는 정도다. 비가 잦고 습도가 높은 날이 지속되면 약해진 농작물에 병해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햇볕이 잠깐 내리쬐는 틈이 있는 날이면 병해충 방제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논밭으로 나선다.

비가 내리고 궂은 날에는 병원을 찾거나 관공서에서 볼일을 많이 본다. 바쁜 농사일 때문에 미루어 왔던 일을 보기 위하여 모처럼 찾는 바깥일이 때로는 서툴게 느껴진다. 제일 큰 차이는 시차에서 느끼는 것이다. 농사일은 일찍 시작하고 한낮에는 쉬었다가 해질녘에 다시 나서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한다. 특히 농약을 뿌리거나 풀을 벨 때는 바람이 없고 시원한 새벽시간을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동트기 전에 일을 나선다. 이런 일상에 익숙하다 보니 병원과 관공서 시작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아침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오후 일도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일을 나서기 때문에 저녁 모임이 있는 날에는 오후 일을 쉴 수밖에 없다.

늘 가까이서 지내며 농사에 관한 정보를 서로 주고받던 ‘비화학적 병해충방제연구회’ 모임을 1월과 7월에는 바람도 쐴 겸 1박2일로 관외에서 하기로 정했다. 서로가 일정을 잘 알고 있는 처지라 이때가 함께 시간을 내기에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가까운 지리산 계곡을 정했는데도 회원 몇이 빠지거나 늦게 찾아왔다. 예년 같으면 장마도 끝나고 바쁜 일은 모두 마친 이후라 수확 전까지 한가할 때인데, 잦은 비 때문에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밤 늦게 찾아 온 이들은 장마 때문에 끝내지 못한 일을 잠깐 날씨가 든 오늘 같은 날 무리해서라도 마쳐야 했단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비가 다음날까지 그치지 않고 내리자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된 회원들은 억지로라도 함께 지낼 수 있었다. 농사꾼은 비오는 날이 휴일이다. 아무리 일이 밀려 있어도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민박집 주인의 차 대접을 받으며 한담을 나눴다. 농사를 짓는 환경은 달랐지만 접점을 찾아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주인은 직접 만든 녹차와 황차, 산죽으로 만든 차까지 맛을 보고 가라며 권했다. 커피에 익숙한 사람들은 밋밋한 차 맛에 맹물 마시는 것 같다고 하면서도 권하는 모든 종류의 차를 맛보았다.

민박집을 나와 가까이 있는 칠불사와 쌍계사를 구경했다. 지리산 화개골을 찾으면 늘 들르는 곳이지만 비가 내릴 때 찾으니 다른 감회가 들었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어 멀리 볼 수는 없었지만 모처럼 조용한 산사에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도 들어볼 수 있었다.

산사를 나오니 빗속에서도 녹차를 돌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년 농사를 위하여 녹차밭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난해 우리 회원들은 이때 잘라낸 녹차를 구입하며 탄화를 했었다. 모두들 그물망에 담긴 녹차 잎을 보고는 저렇게 기계로 따는구나 하면서 반가워했다. 지난해 만들었던 녹차 탄화물이 큰 효과가 있으면 내년에도 만들어 보자며 웃었다. 농사꾼은 어디를 가도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빗속이지만 오고 가며 배우는 것도 있다며 매실과 배, 대봉이 즐비한 곳을 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주말에 날씨가 개어 병충해 방제를 위하여 감나무에 농약을 뿌렸다. 비가 자주 내리는 날씨에는 방제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갠 날이 없어 미루어 왔다. 비가 계속 내려 걱정을 하자 빗속에서 쳐도 효과는 있다며 틈틈이 비가 그치면 농약을 뿌리라고도 했다.

지난주에 참깨밭에 노린재가 많아 코스모스 탄화물을 뿌렸더니 효과를 보는 듯했다. 그런데 주말에 다시 찾아 둘러보니 노린재보다 이제는 어린 벌레가 많았다. 참깨 꼬투리에 구멍을 내고 드나들며 피해를 내고 있었다. 멀리서는 모르고 깨밭을 헤쳐 보아야 발견할 수 있는 벌레였다. 다시 한 번 ‘깨는 털어 보아야 알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서둘러 방제를 하지 않으면 속이 꽉 찬 참깨는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정찬효·시민기자
빗속의 하동 칠불사
농사에 관한 정보를 서로 주고받는 ‘비화학적 병해충방제연구회’에서 찾아간 하동 칠불사와 쌍계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