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다
방학이다
  • 경남일보
  • 승인 2014.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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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영산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대학은 이미 방학에 들어갔고, 이번 주에 전국의 모든 초·중·고등학교가 8월말까지 방학에 들어간다. 학창시절 방학이 다가오면 설렘도 함께 왔었다. 그때라고해서 딱히 지금보다 나을 여건이 하나도 없었지만 지난 세월 방학에 대한 기억을 단순히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추억에 대한 아름다운 향수로만 치부하기에는 오늘날 학생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 각박하고 불쌍하기까지 하다.

필자가 초등학생 시절 방학식 날마다 성적통지표와 함께 받았던 그리 두껍지 않은 방학책은 제법 중량감이 느껴졌었다. 지난 학기 동안의 전 과목을 망라한 문제들과 평소의 일상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들이 숙제로 주어졌었다. 당시의 생활환경과 학습여건으로는 시도조차 못할 것들도 있었다. 방학책의 상당한 부분의 답을 쓰지 못하고 개학식 날 행여 선생님께 혼이 나지 않을까 가슴 졸이며 제출할 때의 기억이 혼자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입시를 경험한 마지막 세대요, 대입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경험한 세대이고 대학 4학년 공포의 10월 공채를 경험한 세대였지만, 그 시절의 방학에는 나름 낭만과 추억이 있었다. 서울 촌놈이 시골의 외가에서 모닥불 옆에서 모기에 뜯기며 옥수수를 먹던 기억도 새롭고, 당시에도 중·고등학교에서 방학 중 보충수업이 있었지만 방학 중에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하겠노라 호기도 부렸고, 대학시절에는 인천에서 고성까지 해안선을 따라 무전여행을 하던 객기도 부려 보았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인내도 배우고 협동도 배웠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고민도 했었고 나름 깨달음의 희열도 있었다.

이제는 거의 사회 초년병이 되었을 소위 이해찬 세대 아이들부터 지금의 아이들을 보면 교육현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움과 미안한 마음이 아주 크다. 오죽하면 선행학습 금지법이 입법 추진되고 우리 학생들이 조사한 바로는 대도시의 비교적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지역의 초등학교 4~6학년의 80% 이상이 사교육을 경험하거나 받고 있었다. 각급 학교는 상급학교 진학이 교육의 최우선 과제가 된지 이미 오래고 대학의 목적은 오직 취업으로 경도되어 다른 목소리를 내었다가는 이방인이 되어 버리는 현실이 되었다. 궁극적으로 대학을 졸업할 때 학생들은 취업을 위한 스펙만을 가지고 졸업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하지만 지난달 업계의 지인들을 만나 대화하는 가운데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요즘의 입사 지원자들이 소위 취업 5종 세트를 완벽하게 갖추고 면접 등의 상황과 심지어 외모까지 손을 보고 취업에 임하기 때문에 저들의 위장을 벗겨내고 순수한 인성을 찾느라 심혈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토익성적을 강조하고 자기소개서를 퇴고해 주고 프레젠테이션을 지도했던 나로서는 매우 난감했었다. 도대체 어찌하여야 하는가.

방학은 시작되었는데 방학이 아니다. 캠퍼스에 이 무더운 가운데 토익점수를 올리려는 학생들과 지도하는 교수들의 열기가 무더위보다 더하다. 아파트 앞에 방학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등교를 위한 승합차는 줄을 이을 것이고, 그 줄은 저녁 때의 학원가를 거쳐 다시 아파트로 돌아오는 순환을 할 것이다. 태권도장과 미술학원, 음악학원, 여러 보습학원을 거쳐 와야 하는 슈퍼 키즈들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아니다. 아이들에게 방학을 돌려주어야 한다. 레드메이드 인생이 아닌 아이들 각 사람만의 인생을 살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하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결과를 인정하고 축복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한 첫 단계로 아이들에게 방학을 돌려주어야 한다.
이상훈 (영산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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