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절의 길 끝에서 만난 이순신 밥상
충절의 길 끝에서 만난 이순신 밥상
  • 경남일보
  • 승인 2014.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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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운의 맛이 있는 여행 <36> 이순신 백의종군 이야기
이순신은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번 승진하여 1587년(43세) 함경도 조산보 만호 겸 녹둔도 둔정관 시절 호족들이 쳐들어 와서 많은 피해를 입게 되자 병사 이일의 모함으로 모든 책임을 지고 파직되었다가 1차 백의종군을 한 후 선조 24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옥포 당포 당항포 한산도 등의 해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어 1593년 삼도수군 통제사가 되었지만, 1597년에는 일본군을 공격하라는 임금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는 원균의 모함을 받아 2월26일 함거에 실려 서울로 압송되어 3월4일 투옥되었다. 28일 간의 옥고를 치르고 부사 정탁의 구원으로 4월1일 석방되어 도원수 권율의 부하로 2차 백의종군을 하게 되었다.

옥문을 나서 먼저 남대문 밖 윤간의 여종 집에서 아들 울과 조카들을 만난 후 3일 일찍 남쪽으로 길을 떠나 수원에서 경기 체찰사인 홍이상 수하 병사의 집에서 잤으며, 4일은 오산에 이르러 평택현 이내은손의 집에서 지냈다. 5일은 아산의 외가로 내려가 사당에 예를 올린 후 해거름에는 처가에도 들러 장인·장모님의 신위에 절을 올렸다. 8일에는 금부도사를 만났고, 13일에 종 순화가 어머님의 부고를 전하니 가슴을 치며 달려가 깊은 슬픔에 빠졌지만, 길을 재촉하여 19일 일찍 어머님 영전에 하직을 고하고 이동하여 공주에서 잔 후 21일부터 익산 전주 임실 남원 운봉 구례를 거쳐 27일에 순천에 이르니 저녁에는 정원명의 집으로 권율이 군관 권승경을 보내 조상하고 간곡하게 안부를 물었다.

이순신 백의종군로란 한양에서 옥문을 나선 후 충청도 전라도를 거쳐 경상도에 머물며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로 임명된 1597년 8월 3일까지 걸었던 구간을 말하는데, 이 중에서 우리 경남에서 가까운 곳의 일정을 살펴보면 5월 14일 순천 송치를 거쳐 구례현의 손인필의 집에 이르러 묵었고, 19일 체찰사가 구례현에 들어온다고 하여 동문 밖 장세호의 집으로 옮겨 갔으며, 5월26일 구례의 관문에 이르니 억수같은 비가 내려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악양 이정란의 집에서 당도하여 쉬다가, 27일 저녁나절에 두치의 최춘용의 집에 도착했다. 28일 늦게 출발하여 하동현에 이르니 현감이 성안의 별채로 맞아들여 정성을 다하니 머물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도 했다.

이충무공군사훈련유적비
이충무공 군사훈련유적비

손경례의 집
손경례의 집


6월1일 일찍 출발하여 청수역(옥종면 정수리)을 지나 해거름에 단성면 성내리 부근 박호원 종의 집에 투숙하였으며, 2일에는 궂은 날씨에도 일찍 출발하여 신등면 단계리 시냇가에서 아침밥을 먹고 늦게 삼가에 이르니, 현감은 이미 산성으로 가고 없어 빈 관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4일 낮에 합천 땅에 이르러 성주 쪽 점막에서 아침밥을 먹고 문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잤다. 기암절벽이 천 길이나 되고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개벼리를 걸어 초계 도원수 진에 도착하여 머무는 동안 이순신은 직속 군관을 배속 받아 도원수와 종사관 등 원수부 지휘관들의 자문역할을 하며 거처할 방을 도배하기도 했다.

7월16일 원균의 수군이 크게 패하자 해안으로 가서 적정을 살핀 후 방책을 정하기로 하고 삼가현으로 갔다가 다음 날 단성의 동산산성에 올라 형세를 살폈으며, 20일 진주의 정개산성 아래 있는 강가 정자에 이르렀다. 21일 일찍 곤양에 이르니 백성들이 통곡하기에 거제로 이동하여 배위에서 현령 안위와 사경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잠을 자지 못해 눈병을 얻었으며, 22일 남해 현감 박대남이 있는 곳에 이르니 병세가 심하여 몸이 불편했지만 곤양에서 그대로 자고, 23일 진주 운곡(옥종면 종화리 대정리)의 전에 유숙했던 곳에서 잤다. 8월3일 아침 선전관 양호가 뜻밖의 교서와 유서를 주었는데, 그 내용은 삼도 통제사를 겸하라는 명령이라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에 올랐다.

경상남도에서는 2009년부터 이순신 백의종군로 조성사업을 시작하여 탐방로 161.5㎞를 만들어 청소년과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활발히 활용하고 있는데, 1코스 고난의 길은 남사예담촌에서 시작하여 박원호 농노 이구산 입구 참숯굴 진입로를 거쳐 금만마을회관에 이르는 4.95km이고, 2코스 좌절의 길은 금만마을회관을 출발하여 지리산고등학교 손경래의 집을 거쳐 진배미 유적지로 이어지는 5.56km이며, 3코스 희망의 길은 진배미 유적지에서 문암정을 거쳐 용연사로 이어지는 3.99km이다. 4코스 고뇌의 길은 용연사에서 이희만 이홍준 집 입구까지의 3.4km이고, 5코스는 하동 읍성 길, 6코스는 합천 초계 길, 7코스는 사천 응취루 길, 8코스는 통영 이순신공원 길, 9코스는 통영 한산대첩·제승당 길, 10코스는 남해 이락사·충렬사 길로 이어진다.

이 정도로 이순신 백의종군로를 살폈으니 며칠이고 이 길을 걸으며 그 시절 장군의 입장에서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느껴보고 싶지만, 일단은 쉽게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몇 곳만 둘러볼 요량으로 맛이 있는 여행은 길을 나서 남사예담촌으로 향한다. 지리산 초입에 자리 잡은 남사예담촌은 담장 너머로 우리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옛 담 마을이라는 의미를 갖고, 담장 너머 그 옛날 선비들의 기상과 예절을 닮아가자는 뜻이 있다. 경상도의 대표적인 전통한옥마을로 경남하면 산청 남사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옛날부터 그 명성이 자자했고 담장과 최씨 고가 등이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으며 옛것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 나가는 배움의 휴식터로 자리하고 있다.
남사예담촌
남사예담촌
예담촌 담장
예담촌 담장

아름다운 돌담길을 걸으며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 같은 장군의 혼을 느끼며 진배미 유적지로 간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6호인 진배미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군사훈련을 하였다는 진터의 논배미로, 초계에 있으면서 원균의 수군이 대패하였다는 급보를 받고 군관 수 명을 대동하고 남해안을 돌아 23일 이곳 수곡에 도착하여 손경례의 집에 묵으면서 군사훈련을 하며 도원수를 기다리다 교서를 받고, 즉시 수군 재건을 위하여 전라우수영으로 출발하였다. 1975년 지방 유지들이 여기에 이 충무공 군사훈련 유적비를 세웠지만 주변의 농지에 둘러싸여 그 뜻이 퇴색된 듯하여 안타깝다.

손경례의 집까지 둘러본 후 옥종 법대리와 정수리를 거쳐 북천면 사평마을회관에 들러 산길구간의 백의종군로를 확인하고 고개를 넘어 남해대교 아래 하동 노량으로 향하였다. 이슬다리라는 뜻의 노량이란 이름은 파도가 심하게 치면 그 물결이 마치 이슬방울을 뭉쳐 만든 다리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하는데, 평소에는 물살이 세기로 유명하지만 오늘 잔잔한 수면은 그날의 격전은 느낄 수 없고 시장기만 밀려온다. 가까이 대교 아래 큰바다횟집으로 들어가 창밖의 고요함에 잠시 편안한 마음으로 장어구이를 청하였다. 먼저 내다주는 복껍질 회무침 소라고둥, 맛있게 삶은 감자 등으로 허기를 달랜 후 잘 손질하여 온 장어를 적당하게 구워 한 입 하니 꿀맛이 따로 없다. 장어구이의 맛뿐만 아니라 양도 좋고 가격도 착하여 기분 좋게 즐기고 남해대교를 건너 관음포 이 충무공 유적지로 향한다.
장어구이
장어구이
장어구이
장어구이

남해 관음포 이 충무공 유적지는 노량해전으로 더 잘 알려진 임진왜란의 마지막 격전지로 충무공 이순신이 순국한 곳이다. 1598년 11월 19일 여기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하며 전쟁명언인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겨 지금까지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으며, 이락사를 조성하여 순조 32년(1832)에 왕명으로 제사를 지내는 단과 비 비각을 세운 후, 1965년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다라는 뜻인 ‘대성운해(大星殞海)’라는 액자를 경내에 걸었다. 그 옆에는 138석의 관람석을 갖춘 국내 최초의 돔형 입체영상관이 있어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으며, 임진왜란 최후의 전투였던 노량해전의 격전을 입체영상으로 보여주어 명장 이순신의 공로와 충의가 담긴 역사의 옛터일 뿐 아니라 전쟁극복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인 남해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달려 삼천포·창선대교를 지나 통영 이순신공원으로 간다. 가는 길에 상리 연꽃공원에 들러 연꽃의 향연을 잠시 즐기며 긴장을 푼 후 아름다운 통영항을 내려다보며 걷는 마음은 행복하다. 그 시절 온몸을 바쳐 이 나라를 지켜낸 임이 계셨기에 이런 즐거움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장군께서 드시던 음식이 그립다. 몇 년 전 역사의 그림자와 장군의 영혼을 느낄 수 있는 것에 비중을 두고 이순신밥상을 차려내는 식당이 있었는데 문을 닫았고, 여수의 오죽헌에서 이순신밥상을 차려낸단다. 전화로 예약한 후 바로 고속도로를 달려 1545m의 이순신대교를 건너 식당에 도착하니 늦은 시간이지만 손님으로 만원이다. 조용한 방에 안내를 하여 서너 차례 음식을 차려내는데, 너무 행복하여 과연 그 시절에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긴 여정이었지만 좋은 음식을 먹으며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행복한 날이다.

/삼천포중앙고등학교 교사
 
이순신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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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대교
남해대교
전쟁명언
전쟁명언
 
이순신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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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밥상
이순신밥상
이순신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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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종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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