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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열전<11> 윤남철 전 배영초등학교 감독진주 배구의 터전 일군 평생 배구인
곽동민  |  dmkwak@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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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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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진주 평거초등학교를 마지막으로 퇴직한 윤남철(67) 전 진주 배영초등학교 배구부 감독.

열한번째 배구열전의 주인공으로 윤남철 교사를 만나게 된 것은 지금까지 배구열전을 통해 만난 배구인들이 하나같이 진주 배구의 저력은 그에게서 나왔다며 적극 추천했기 때문이다.

윤남철 감독은 초등학교 체육교사로 교직생활 30여년 간 진주지역 초등학교 배구부 감독을 도맡아 왔다. 그래서인지 그가 발굴해낸 제자들의 면면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화려하다. 국내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던 하종화 감독을 비롯해 국내 최장신 센터 중 한명이었던 윤종일 선수, 현재 청소년배구 국가대표 감독인 김양수 감독, 황현주 전 현대건설 감독 등 다 말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윤남철 감독은 배구선수로 이름을 날리지 못한 다른 제자들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성장한 선수들이 이제 자기들도 나이가 들어 사회의 한 구성원이 돼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매년 스승의 날이면 밥을 사겠다며 찾아주는 제자들이 고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항상 마음 한켠에는 운동선수로 빛을 보지 못한 친구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남아 있어요. 제가 배구를 시키지 않았더라면 더 멋진 인생을 살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방방곡곡, 배구 인재를 찾아서

중학교 시절 큰 키와 특출난 운동신경 덕에 체육선생님의 눈에 든 윤남철 감독은 진주농업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배구선수로 꽤 이름을 날렸다. 당시 배구로 유명한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정도라고. 그러나 운동선수의 길을 반대했던 부모님의 뜻을 따라 배구를 포기하고 진주교육대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이후 당시 충무시(현재 통영시) 진남초등학교, 진주 문산초등학교, 대곡초등학교를 거치면서 체육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배구를 가르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

그러던 중 당시 진주교육청에서 근무하던 조석제 장학사의 “진주 배구의 부흥을 위해 힘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배영초등학교로 부임, 본격적인 초등학교 배구 지도자의 길로 나서게 된다. 이때가 1976년 즈음이었다.

당시 배영초등학교를 맡고 있던 박영환 교장은 윤 감독과 배구부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윤 감독은 당시 조석제 장학사와 박영환 교장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과 진주 배구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배구 지도자의 길은 쉽지 않았다. 특히 어린 학생들이라 좋은 선수를 발굴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지금도 선수 수급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때는 더 힘든 일이었지요. 당시엔 교통편도 없었고, 길도 이렇게 좋지 않았어요. 키가 큰 학생이 있다고 하면 김해며, 충무(지금의 통영)며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한번은 첩첩산중에 있는 학생의 집을 찾아갔었는데, 차편이 없어 버스에서 내려 2시간을 산길을 걸어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학생의 아버님께서 그 수고를 좋게 봐 주셨는지 가기 전에 벌꿀주 한잔 하고 가라는 바람에 벌꿀주 한 말을 다 비워 버린 적도 있었지요. 그 덕분에 내려오는 길에 넘어져 온통 흙투성이가 됐던 기억도 있습니다.”



▲배구 지도자이자 인생의 멘토로

윤 감독은 그렇게 어렵게 데려온 학생 선수들이 ‘운동부는 공부도 못하고 불량학생인 경우가 많다’는 소리를 듣는 게 가장 싫었단다. 그래서 항상 선수들에게 “인성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은 공부다. 운동은 세번째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변변한 배구부 기숙사가 없는 열악한 환경 탓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공부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었던 윤 감독은 선수들을 자신의 집에서 먹이고 재우며 저녁시간에는 직접 학교 공부를 가르쳤다.

“적게는 예닐곱명에서 많을 때는 열두명까지 아이들을 집에서 돌봐야 했습니다.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있고, 다른 하숙집에 맡기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지요. 학교 수업은 무조건 다 듣도록 했고, 방과 후에 배구수업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배구보다는 학교 공부를 가르쳤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서 배구를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닥친다면 반드시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학교 체육이 학교수업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끼고 학생들이 교과과정을 모두 소화하도록 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윤 감독은 이미 70~80년대부터 공부와 운동의 균형을 이뤄 학생들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 때문일까. 경남도내를 비롯해 현재 전국 각지에서 학교 체육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제자들은 지금도 스승의 교육방식을 그대로 닮아 있다고.

“체육교사로 활동 중인 제자들이 여럿 있는데 다들 운동보다 인성과 공부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내 교육방식이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해 주더군요. 다른 훈련법도 도입해 봤지만 결국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라고 합니다. 쑥쓰럽지만 제 방식이 맞았다고 말해 주니 그동안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기분이 들어 참 뿌듯했습니다.”



▲진주 배구 꿈나무들과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크게 욕심 부리지 않고 제가 좋아하는 운동을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행복합니다. 또 아이들이 제가 가르쳐 주는 대로 잘 따라주고 실력이 늘어 좋은 선수로 자라줘서 무척 고맙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훌륭한 사회인으로 자라준 제자들이 매년 잊지 않고 찾아주는 것도 말할 수 없이 감사한 일이지요. 이제 저는 퇴직을 하고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자랑스러운 제자들이 진주 배구의 명성을 계속 이어 나가 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윤 감독은 어린 학생 선수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충고도 빼놓지 않았다.

“학생 선수들, 특히 초등학교, 중학교까지의 어린 선수들은 자라면서 키가 더 크지 않아 계속 배구를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함께 운동을 했던 많은 아이들이 모두 프로선수가 되는 경우도 극히 드물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성품입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에 나갈 때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공부하는 습관입니다. 학생 운동선수에게 운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배구뿐 아니라 모든 학생 운동선수들이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엄친아’가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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