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79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79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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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3. 신종(神鐘)은 울리고
날이 지날수록 왜군의 공성작전이 한층 드세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무기를 비축하고 있는 것일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조총을 쏘아댔다. 그것도 무차별 사격이었다. 그런가 하면, 장편전(長片箭, 긴 화살)을 성 안에다 어지러이 날렸다. 흡사 메뚜기 떼가 날아드는 것 같았다. 그 행태가 어리석고도 같잖아 보였다. 마치 가지고 있는 무기들을 누가 먼저 소모해버리는가 하는 경기를 펼치는 것 같았다. 성만 공격하는 게 아니었다. 사방팔방 흩어져 나가 재물을 불사르고 도적질을 자행했다. 그 잔혹성에는 하늘도 땅도 치를 떨 정도였다.

“장군! 수십 리 안에 있는 민가가 모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부하들이 울부짖으면 시민은 조용히 타일렀다.

“적은 우리들 손톱 하나 자르지 못하고 있으니, 성내거나 슬퍼할 필요 없다.”

시민은 하늘을 믿었다. 부처를 믿었다. 성내 군관민들 누구도 모르고 있었지만, 그는 조운이 그 난리통 속에서도 하늘을 날 수 있는 기구에 매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늘과 부처의 각별한 보호가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시민의 그런 믿음에는 확실히 어떤 신적인 면이 작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다른 모든 가옥들은 모조리 쑥대밭이 되는데, 조운의 집만은 무사할 리가 있겠는가 말이다. 어쩌면 비봉산 산신령과 가마못 용왕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왜적의 눈을 가리고 앞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을까. 하여튼 천행이면서도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신마저도 바짝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여간 수상쩍지 않았다. 왜군이 멀리 가까이 있는 긴 대나무를 죄다 찍어 와서 묶기도 하고 엮기도 하였다. 솔가지를 가져와 진 앞에 높직이 쌓았고, 큰 나무를 베어 잠시도 쉴 새 없이 실어 날랐다.

“대체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거지? 꿍꿍이속을 알 수가 없다고.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야 우리도 대처를 할 터인데, 그저 보고만 있자니 너무 답답하고 불안해.”

“이대로 있다간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하는 게 아닐까?”

“갈수록 저놈들이 물귀신같이 보인다고. 남강에 빠져 죽은.”

성내 분위기가 더없이 어수선해졌다.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부질없이 서성거렸다. 엄청난 조총소리에 귀가 멀어버릴 지경이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병은 끊임없이 눈을 괴롭히는 게 사실이었다. 접전이 벌어지기 전부터 심리적으로 크게 몰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놈들의 심리전에 휘말리면 큰일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군사들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을까?’

시민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전황을 뒤집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이윽고 그의 눈이 빛났다. 그는 즉시 악공들을 불러 명했다.

“지금부터 문루(門樓)에 올라 할 일이 있다. 피리도 불고, 퉁소도 불고, 거문고도 타도록 하라.”

성문 위 다락집에서는 난데없는 악기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쟁터의 밤, 어둠을 뚫고 퍼져나가는 그 악기소리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묘한 힘을 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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