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품은 너덜겅…절집 앞 산마루에 넘실
바다 품은 너덜겅…절집 앞 산마루에 넘실
  • 경남일보
  • 승인 2014.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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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만어사를 찾아서
여름휴가를 맞은 피서차량들이 태풍이 오든 가든 아랑곳없이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채로 어디론가 향해 꾸역꾸역 밀어붙이고 있어 아침 TV화면이 터질 것만 같다. 바다로 가려는지 계곡으로 가려는지 아니면 강으로 가려는지 제마다 갈 곳 찾아 줄지어 늘어섰다. 모처럼의 휴가에 준비물 챙기고 설레는 마음까지 다스리느라 밤잠까지 설쳐가며 떠나는 여행일 게다.

바다는 작열하는 태양과 거친 파도로 열기와 박력이 넘치는 젊음의 축제장이고 강과 계곡은 가족들이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피안의 도원이며 여름의 산은 새로운 도전과 성찰의 길이다. 휴가철인 이맘때면 명소가 아니라도 어디를 가나 북새통이라서 ‘나 홀로 객’은 피서객이나 구경하는 속절없는 관람객 신세가 되고 만다. 그래서 간섭 받지 않고 눈치 볼 것 없는 심산고찰이 여행자의 멋까지 부려가며 선경에 빠질 수 있어 딱 들어맞는 제격이다.

바다 아니라도 수많은 고기떼가 골짜기를 가득 메운 만어사를 찾아 삼랑진읍을 향해 길머리를 잡았다.



만어사
만어사


삼랑진읍에 들어서자 삼랑진역이 저만큼에서 보였다. 역에서 만어사까지는 8km에 불과하다는데 그럴 바엔 진주에서 무궁호열차를 타고 삼랑진역에 내렸으면 여행하는 맛이 제격일건데 달리 방법이 없는 줄만 알고 철마를 몰고 길을 나섰다.

삼랑진읍을 벗어나면 온통 복숭아 과수원이 들을 덮었고 길섶에 내놓은 좌판에서 빛깔 고운 늦복숭아가 상큼하고 향긋한 향을 내뿜는 것만 같아 군침이 절로 난다. 과수원 날머리에서 비탈이 완만한 산길로 접어들자 짙푸른 활엽수가 하늘을 가리고 시멘트로 포장된 길은 간간이 교행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을 뿐 조붓한 길이다. 모롱이를 돌면 또 한 모롱이가 끊어질듯이 이어지며 우거진 숲의 터널이 별천지를 예비한 듯 틈틈이 햇볕의 빛살줄기가 얼기설기 내려 꽂혀 장관을 이룬다.

하늘이 훤하게 뚫렸기에 절집에 닿았나 했더니 가무잡잡한 빛깔의 커다란 바윗돌이 너덜겅을 이루고 산길을 가로막고 길게 산 아래로 뻗어 있다. ‘만어산의 암괴류’라며 천연기념물 제528호로서 반출이나 손괴하면 엄히 다스리겠다는 경고문이 버티고 섰다. 자세히 볼까하고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 차를 세우려니 숲속에 파묻힌 토종닭 백숙전문이라는 식당 주차장이라서 길동무 생기면 대나무평상에 자리를 잡기로 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도토리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틈새마다 느티나무의 짙푸른 기세가 하늘을 덮고 있어 어디만큼이나 가는지도 모르고 끝이 닿는 곳에 만어사가 있겠지 하고 앞만 보고 산길을 기어올라 작은 고갯마루에 닿자 멀리 겹겹의 산들이 하늘 아래에 깔려 있다. 훤하게 하늘이 열린 우람한 느티나무 뒤로 커다란 돌덩이들이 펑퍼짐하게 드넓은 골짜기를 한 가득 메우고 시원스럽게 비탈을 지운 너덜겅이 드넓게 펼쳐졌다. 만어사의 절집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두루뭉술한 바위덩어리의 거대한 너덜겅이다.

널따란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염불소리가 나직하게 깔리면서 네댓 동의 절집 건물이 듬성하게 자리를 잡고 드넓은 돌너덜을 길게 산발치로 드리우고 나직나직한 겹겹의 산을 시원스럽게 굽어보고 앉았다.

만어산을 찾아들어 만어사에 들었으니 우선 대웅전에 들어서 예를 먼저 갖출까 하고 높다랗게 쌓은 돌계단을 오르니 두어 아름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그늘부터 내어 주는데 먼저 온 탐방객들이 빙하니 둘러섰다. 바쁠 것도 없는 몸이라 기웃거렸더니 돌을 한 번 들어 보란다. 농짝만한 펑퍼짐한 바위 위에 럭비공만한 돌이 놓였는데 돌이 쉽게 들리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게고 무거워서 들어지지 않으면 소원을 이룬다는 소원돌이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원성취를 점쳐 보려고 들기를 했기에 손때가 묻어 저토록 반들거릴까. 손사래로 사양을 하자 잽싸게 중년부인이 자리를 잡더니 돌부처에 합장하고 소원돌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숨을 가다듬는지 간절한 소원을 비는 건지 그대로 멈춰 버렸다. 부군의 쾌유일까, 자식의 일자리일까. 간절한 소원이 누군들 없으랴만 애타는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복전함을 앞에 놓은 돌부처는 지긋한 미소를 머금고 지키고 앉았다. “그저 천근같이 무겁기만 하소서!” 돌아서는 길손의 진심 어린 기도였다.



만어석 너덜겅
만어사 너덜겅


상념에 잠긴 채 발길을 돌려서 고개를 들자 회색빛깔의 베 삿갓을 깊숙이 눌러쓰고 먹장삼을 길게 드리운 팔척장신의 스님이 코앞에 다가섰다. 보물 제466호인 삼층석탑이다. 단아한 기품과 수려한 용모라고 하면 어울리는 표현일까. 옥개석이 조금은 두툼하지만 투박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이 안정감이 완벽하고, 층층의 균형감이 눈가는 곳 없이 단정하다. 삼국유사에 실린 전설에는 가락국의 수로왕이 만어사를 창건했다고도 하나 1181년에 만어사가 창건되었다는 삼국유사의 또 다른 기록이 전한다며 안내판에는 고려시대에 만어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되어 제자리에서 오늘에 이른다는 3층 석탑이라고 일러준다.

‘똑도그르’, ‘똑도그르’ 둔탁한 목탁소리에 섞인 염불소리를 따라서 또 하나의 돌계단을 올라서니 세월에 빛이 바랜 맞배지붕의 자그마한 목조 대웅전이 고색창연한 옛멋을 풍기며 덩그렇게 높이 앉아 길손을 반기었다. 열려진 문 안으로 여신도들이 빼곡했다. 가사장삼 드리운 스님의 염불에 맞추어 나직한 소리로 따라서 해댄다. 사시마지예불로 법당 안이 빼곡해서 문밖에서 합장으로 예를 가름하고 오른쪽 삼성각을 지나서 깎아지른 암벽에 양각된 아미타마애대불 앞으로 발길을 돌렸다. 푸르스름한 돌의 빛깔이 근작임을 일러주는데 바닥의 배례석은 반질반질 닳아서 윤기가 흐른다. 백팔 배를 했을까, 삼천 배를 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기에 바닥돌이 닳아서 반들거리는 걸까. 부디 중생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십사고 합장으로 예를 갖추고 소나무 숲 사이로 비켜 앉은 미륵전으로 행했다.

2층으로 된 팔작지붕의 전각은 위층의 높이가 납작하게 반으로 내려앉은 특이한 건물인데 미륵전의 문을 열고는 깜짝 놀랐다. 커다란 미륵불상이 있겠거니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얼토당토않게 배를 바닥에 붙이고 머리와 가슴팍을 곧추세운 채 연방이라도 2층 천장을 뚫고 하늘로 치솟을 것만 같은 거대한 바위가 아닌가! 마치 흰수염고래가 거대한 몸집을 수면위로 솟구쳐 오르는 형상인데 턱밑에서부터 가슴팍까지가 밋밋하고 반반하며 옆구리는 길게 모가 났고 머리는 유선형의 타원으로 약간 뾰족하며 등줄기는 날이 섰다. 높이가 5m를 넘는 거석이라서 전각건물을 2층으로 세운 까닭을 알 수가 있었는데 그래도 엉덩이부분은 뒷벽을 뚫고 바깥으로 나앉았다.



삼봉산 금봉암.jpg4
삼봉산 금봉암


모가 나고 날이 선 거석을 어찌하여 미륵부처라고 했을까. 사람들의 키 높이인 옆구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지극한 믿음으로 반들거리고, 간절한 기도는 미륵불의 턱 밑에서 향불의 연기가 되어 피어오르고 있었다.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서 용왕의 아들이 목숨을 다한 것을 알고 인근 무척산의 신통한 스님께 새로이 살 곳을 일러 달랬더니 가다가 머무는 곳이 인연이 있다 하여 왕자가 머문 곳이 바로 이 자리였고 후세불인 미륵불이 된 바위라고 안내판이 일러 준다.

미륵전을 나서자 발끝에서부터 까마득한 산기슭까지 온통 너덜지대가 무진장으로 펼쳐졌다. 간간이 농짝보다도 더 큰 덩치도 있지만 너무 많은 바위덩어리가 빼곡하고 촘촘히 뒤엉켜져서 한눈으로 보아서는 크기도 엇비슷하고 주둥이를 치켜세운 모양새까지도 비슷한데 그 빛깔도 하나같이 거무스레하고 모난 곳이 없이 두루뭉술하여 물범이나 바다코끼리가 뒤엉켜서 꿈틀거리는 것만 같다.

용왕의 아들이 만어산을 찾아들자 수많은 고기떼가 왕자를 따라 이곳으로 와서 바위덩어리로 변했다니 무슨 조화인가. 더구나 두들기면 카랑카랑한 쇳소리가 난다. 범종의 소리처럼 울림은 없으나 작은 동종의 소리 같기도 하고 운판을 치는 소리 같기도 하니 속절없이 불국정토를 위한 미륵불의 선경인 모양이다. 얼음골의 결빙과 표충비의 땀 흘림과 함께 만어산의 만어석이 밀양의 삼대 신비로 알려진 사실이다. 암괴가 뒤엉킨 너덜겅으로 깊숙이 들어서니 천군만마라도 거느린 듯하여 크게 군령이라도 내지르면 수만 군졸의 함성이 터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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