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아름다운 기부정신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아름다운 기부정신
  • 경남일보
  • 승인 2014.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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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기 (경상대학교 총장)
모하(慕何) 이헌조(李憲祖) LG전자 전 회장이 지난 7월 16일 우리 경상대학교에 ‘경상우도 전통문화 연구기금’으로 5억 원을 출연하셨다.

이 전 회장은 올해 82세로서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학문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이미 지난 2010년에 우리나라 대표적 인문학 연구단체인 ‘실시학사’(實是學舍)에 70억 원을 출연하여 참된 학자들을 도와 우리 전통학문을 일으키는 의미 있는 일을 하신 바 있다. 또한 ‘모하실학연구상’(慕何實學硏究賞)을 제정하여 해마다 실학을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을 시상하는 등 학문을 진흥시키고 있다.

이 전 회장은 경상우도 전통문화 연구기금을 출연하면서, 경상우도 지역의 고문헌, 언어, 사회구조, 노비 등의 계급사회상과 서민생활 등 전통문화 연구에 경상대학교가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선조들의 삶과 사상, 학문을 재조명하고 아울러 서민들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여 오늘날의 교훈으로 삼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의 관심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졌던, 힘없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우리 겨레의 전통을 면면히 이어온 서민들의 삶에 쏟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길거리 풀처럼 이름조차 없는 삶을 사는 노비들은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 전 회장이 경남지역 고문헌과 각종 향토자료를 수집ㆍ보관ㆍ연구하고 있는 경상대학교에 이 연구기금을 기탁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전 회장은 경남 의령군 낙서면 내제리라는 벽진 이씨(碧珍李氏) 집성촌의 유가(儒家)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선비가 배출되어 학문을 사랑한 집안이다. 이 전 회장의 증조부 서강(西岡) 이중후(李中厚) 선생은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여 꼭 해야 할 일이라면 천금이 들지라도 인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별도의 전답을 마련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혼례나 장례를 돕고 노인을 봉양하고 학업을 권장하였다. 후일 재산을 더 늘려 이러한 사업을 확대해 나가라고 후손들에게 당부하였다.이 전 회장은 이런 집안의 종손으로 태어나 봉사의 마음이 몸에 배어 있다. 그는 재벌이 아니다. 단지 기업에 참여한 경영자일 뿐이다.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자신의 생활에는 모든 면에서 철저히 근검절약한다. 그의 옷차림은 수수하여 처음 본 사람은 평범한 노인으로 생각한다. 그의 사무실에는 사치스러운 물건은 하나도 없고 교수 연구실처럼 책밖에 없다.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들이 은근히 도움을 바라면, “자기 힘으로 노력해서 살아야지, 왜 남의 도움을 청하느냐?”고 자립정신으로 살라고 훈계만 할 뿐이다. 그러나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이헌조 전 회장은 증조부가 만든 가문 전래의 남을 돕는 규범을 실천하는 후손으로 이 시대의 진정 훌륭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재물을 나누어 주는 선비 경영자인 그는 기업에서도『논어』(論語)를 접목시켜 정도경영(正道經營)을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LG그룹이 건전한 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이 전 회장의 선비정신과 실천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전 회장의 외가는 지수면 승산리의 김해 허씨(金海許氏) 가문인데, 진주여고 설립자 효주(曉洲) 허만정(許萬正) 선생이 바로 이 전 회장의 외조부(外祖父)이시다. 이 전 회장은 친가나 외가 모두 학문을 사랑하고 선비정신을 옳게 실천하고 있는 집안인데, 그는 그 전통을 이어받아 오늘날에 올바른 선비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경상대학교는 문천각(文泉閣)에 방대한 경남지역 고문헌 자료를 수집 보관하여, 전국의 연구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경상대학교는 이 자료들을 현재 건립 중인 ‘고문헌 전문 도서관’으로 옮겨 더욱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연구할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 또한 경상대학교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진주농민항쟁, 형평사운동 등 경상우도 지역의 서민생활과 사회계급구조 등에 대한 연구를 축적해 오고 있었다. 이 전 회장이 출연한 연구기금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준비를 이미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전 회장의 아름다운 기부정신은 길이 후세에게 전해져 경상우도 전통문화 연구를 꽃피우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이 전 회장께 다시 한 번 충심으로 감사드린다.

깨끗하게 모은 재산을 의미 있는 일에 쾌척한 이헌조 전 회장의 이번 전통문화 기금 출연은, 재산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사고를 바꾸게 하고 새로운 기부문화를 창달하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믿는다.

권순기 (경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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