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휴가
대통령의 휴가
  • 경남일보
  • 승인 2014.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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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미국은 지난 2011년 중단했던 이라크 공습을 31개월 만에 재개했다. 이슬람의 극단주의로부터 중동국가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이다. 최첨단 무기가 동원됐고 지금까지 모두 4차례 이상의 공습이 이뤄졌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오바마 대통령은 9일 휴가를 떠났다. ‘전쟁은 전쟁이고 휴가는 휴가’라는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도 휴가를 보냈다. 그러나 휴가지는 청와대 경내였다. 지난해에도 추억 어린 진해의 저도에서 휴가를 보낼 예정이었지만 단 하루만에 청와대로 돌아와야 했다. 아마 대통령도 모처럼의 망중한을 즐기며 가족간의 우애를 나누고 그동안 소원했던 지인들과 테니스를 치며 복잡하고 무거운 일상에서 벗어나 즐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청와대 경내의 휴가도 세월호를 내세워 못마땅하게 보는 눈이 있는가 하면 대통령이 일에 너무 집착한다는 볼멘소리마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인과 딸, 그리고 백악관 식구인 애완견과 함께한 휴가기간 중 한차례 백악관에 돌아와 긴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다시 휴양지로 돌아가 2주간의 휴가를 채울 예정이다. 이 같은 휴가일정은 어떻게 보면 강대국만의 여유마저 느끼게 한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대통령이 휴가 중이라도 세계 최강국 미국의 시스템은 빈틈이 없다는 과시이기도 하다. 휴가를 얻고도 국민의 시선과 당면한 과제에 억눌려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지 못하고 업무에 복귀해야 하는 우리의 대통령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미국도 이라크 공습재개에 크게 긴장하고 있다. 중동국가는 물론 세계 각국의 여론을 살펴야 하고 새롭게 개발한 첨단무기의 성능과 파괴력도 가늠해봐야 한다. 그런 와중에서 대통령의 휴가는 미국의 관료체계와 사회적 건강성을 잘 말해준다.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명예를 걸고 일할 땐 일하고 즐길 땐 즐기는 굳건한 체제가 대통령에게 재충전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요즘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세월호 사건은 여전히 미결로 남아 있고, 윤 일병의 고통은 국민들의 가슴을 후벼 판다. 자식이 군대에 있거나 입영을 앞둔 부모들은 어떤 조치로 안심할 수 있을지 대통령의 조치만 기다리고 있다. 정치의 한 축이었던 야당은 멘붕상태에 빠져 갈피를 못잡고 있어 갈 길 바쁜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이런 복잡하고 난마 같은 우리사회를 보면 경제는 성장했는지 모르지만 사회적 안정성은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명량’이 1천만 관중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 더운 여름에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열광하게 할까. 영화속 치열한 전투장면도 볼거리이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시류와 맞아떨어진 것이 아닐까. 장군의 인간적 고뇌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 지도자가 선택해야 할 명분을 현실의 우리와 비교하면서 대리만족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국민들은 이 땅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이순신적 리더십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이 영화의 관중동원이 잘 말해 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한국의 대통령은 휴가기간도 짧고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특히 독신인 여성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더욱 그러하다. 아직은 국민정서가 대통령에게 고난의 길을 원하고 있다. 숲속의 두길 중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을 택하길 바라고 있다. 어쩌면 오는 14일 방한하는 금욕과 평화의 사도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은 높은 도덕률과 영향력을 대통령에게도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와 미국대통령의 휴가행태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도리 없이 우리대통령은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숙명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 길은 외로운 길이지만 후회가 없는 길이다. 한번 쯤 우리 국민들도 이제는 대통령의 고뇌를 이해하고 격려해야 하지 않을까. 오바마처럼 한 2주 휴가를 즐길 날이 재임 중에 왔으면 좋겠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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