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건너는 부부둘레꾼에서 삶을 본다
계곡 건너는 부부둘레꾼에서 삶을 본다
  • 최창민/강동현
  • 승인 2014.08.15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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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터전 지리산 둘레길 <14>인월~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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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은 고락을 함께하며 같은 길을 걸어가는 가족의 길이자 동료의 길이다.




▲인월∼금계구간은 지리산 둘레길 중 가장 긴 22km이며 시범으로 개통된 최초 5개구간 중 3번째이다.

전북 남원시 인월면과 경남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을 잇는 길로 지리산 최북쪽 끝 전남에서 남동쪽 경남으로 돌아 들어온다. 난이도는 중이다.

구간 구성은 계곡 수성대가 아름답고, 배너미재 너머 장항마을과 주변 풍광이 가슴을 트이게 한다. 남원시 산내면 상황마을과 함양 마천 창원마을을 잇는 옛 고갯길 등구재는 도계를 넘어 경남으로 돌아오는 고개다. 특히 지척에서 지리산 주릉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 많을 뿐 아니라 넓게 펼쳐진 다랑논과 6개의 산촌마을이 산재해 고향처럼 포근함을 준다. 마지막에 금계마을 앞 엄천강과 만난다.

이번 취재는 주행거리가 긴 관계로 인월∼상황마을까지 1회차, 상황마을∼금계까지 2회차로 나눠 1박 2일로 진행됐다.

인월면→인월경애원→중군마을→수성대→배너미재→장항마을 당산소나무→장항교→서진암 삼거리→상황마을(매동마을 숙박)



▲둘레길 3코스 중 가장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수성대계곡은 전날 내린 소나기로 물이 불어나 있었다. 둘레꾼들은 센 물살과 깊은 물로 인해 계곡을 건너기가 쉽지 않아 상류 쪽으로 이동해야만 건널 수 있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한 부부 역시 센 물살로 인해 상부로 이동한 뒤 계곡에 들어섰다. 앞에서 걷던 남편은 계곡의 중앙에서 뒤돌아 부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뒤따르던 부인은 발을 헛디뎠는지 잠시 기우뚱하더니 앞에서 남편이 손을 내밀자 그 손을 잡았다. 부부 둘레꾼은 위험한 계곡을 무사히 건너서 소나무·참나무가 울창한 숲으로 난 길을 총총히 걸어 시야에서 사라졌다. 가슴에 전기처럼 찌릿하게 닿는 무언가가 있었다.

부부는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 3구간 산행이 끝나면 인근 실상사와 노고단 성삼재를 둘러볼 계획이라고 했다. 지리산 둘레길은 생명의 길이자 가족의 길, 동료의 길, 친구의 길이다. 서로 손을 잡아 의지하고 고락을 함께하며 같은 길을 걸어가는, 그래서 동료애·가족애를 실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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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창궐한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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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창궐한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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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창궐한 버섯


▲오전 9시 24분, 지리산 3구간 시작점인 구인월교 위에서 출발해 광천이 흐르는 방향으로 난 제방길을 따라간다. 광천은 2구간 운봉∼인월에서 만났던 람천에서 이어진 강으로 인월면에서 광천이라고 부른다. 이 물은 하류로 가면서 임천, 엄천강, 경호강으로 차례대로 이름을 바꿔가며 진양호에 모인다.

인월장은 남원의 아영 인월 산내와 경남 함양의 마천사람이 모이는 장으로 지역경계를 넘어 큰 장이 섰던 곳이다.

인월이라는 지명이 재미있다. 한자 ‘끌인(引)’자에 ‘달월(月)’자를 쓴다. 유래는 고려 말(우왕 6년)이성계의 황산대첩이다. 왜장 아지발도가 황산으로 쳐들어오자 이성계가 이를 막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고 날이 어두워져 버렸다. 피아 식별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자 이성계가 신통력을 발휘한다.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백성을 살피소서, 달을 뜨게 해주옵소서”라고 기원한다.

순간, 칠흑같은 어둠이 걷히고 거짓말처럼 하늘에 둥근달이 떠올랐다. 대지는 밝아졌고 적군의 동태가 파악되자 이성계군은 부원수를 시켜 신궁을 쏴 왜장 아지발도의 목을 날렸다. 이성계가 ‘달을 끌어온 곳’, 인월이다.

오전 9시55분, 첫번째 만나는 중군마을. 임란 때 전군 중군 후군 중 중군이 주둔한 것에서 유래했다. 입구에서 마을 앞을 돌아 산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마을을 벗어나면 황매암과 백련사로 갈리는 갈림길이 나온다. 양쪽 길 모두 둘레길에 속하지만 백련사 길은 광천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황매암 길은 산으로 올라간다. 두 갈래의 둘레길은 산을 넘은 뒤 다시 합류한다. 황매암 길은 광천방향보다 시간이 30분 더 걸리지만 상대적으로 길이 좋고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택한다.

황매암은 조용한 사찰로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석천이 명물이다. 사찰 앞 돌담길 앞을 지나면 산으로 가는 된비알이 이어진다. 산 중턱에 수량이 많지 않은 얼음골 쉼터가 있으나 물은 그리 차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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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무인판매대


오전 10시26분, 이름 없는 재, 이정표는 지나온 인월면 4.1km를 가리키고 있다. 임도에 내려서면 앞서 헤어졌던 길과 다시 합류한다.

생경한 풍경이 발길을 붙잡는다. 인적 없는 계곡에 막걸리통과 김치통이 물에 둥둥 떠 있다. ‘웬 떡인가’ 아니, ‘웬 술인가’ 싶어 허겁지겁 다가가 자세히 보니 막걸리 한사발에 2000원을 받는 무인판매소다. 내친 김에 막걸리를 가득 부어 벌컥벌컥 들이켜면 특유의 구수함과 알싸함이 몸으로 스며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이마의 땀만 아니라 한 고개를 넘은 수고까지 덜어낼 수 있다.

오전 11시, 수성대계곡. 지상파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1박2일 출연자들이 사진을 찍고 놀다간 장소라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이곳에서 부산서 왔다는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굳이 막걸리를 사서 취재팀에게 일일이 권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오전 11시15분, 배넘이재. 인월에서 출발한 뒤 5.8km 지나온 지점이다. 장항마을 사람들이 인근 마을로 넘었던 추억의 고갯길이다. 배넘이재 넘어서 장항마을 당산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높이 18m에 400년 된 소나무로 생김새가 예쁘다. 소나무 반을 기준으로 한쪽이 땅으로 처져 있는 특이한 수형을 보여준다. 2008년 보호수로 지정됐다. 마을사람들이 매년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낸다.

어느 순간 전방이 훤히 뚫리는 풍광이 펼쳐진다. 오른쪽 광천 옆 언덕배기 좋은 위치에 일성콘도가 자리하고 있고 왼쪽에는 장항마을의 꼬막같은 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낮 12시10분, 장항교를 건넌다. 장항교는 나라에서 세워준 교량이 아니다. 출향인들을 비롯해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내거나 쌀을 내어 건립한 다리다. 건립비에 주민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요즘 같으면 주민들이 지자체나 정부에 민원을 요구했겠지만 당시에는 스스로 불편함을 해결하는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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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마을 당산소나무 준메인


60번 도로 천왕봉로를 만난다. 이 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백장암이 있고, 오른쪽은 매동마을과 산내를 지나 실상사다. 실상사는 들녘 한가운데 있는 특이한 사찰로 구산선문 최초의 가람이다. 지금은 생명평화운동과 지역공동체 회복운동의 요람으로 명성이 높다. 실상사 말사인 백장암에는 국보 제10호 백장암 삼층석탑(신라말)이 있다. 화강암제 석탑으로 기단부와 탑신부의 구조가 기존 양식에 따르지 않은 이형석탑이다. 조각이 섬세하면서도 화려하다. 오래 전 도굴을 당해 쓰러진 것을 복원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아 약간 삐뚤삐뚤하다.

장항교 건너 오른쪽 산내방향으로 300m 정도 이동한 뒤 도로를 떠나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산중에서 서진암 가는 길을 만나지만 곧장 직진해야 둘레길이다.

낮 12시40분, 오름길의 중간 어디쯤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1시 30분 다시 길을 떠난다. 지리산 길섶 갤러리가 인근에 있다. 묵답, 산업화의 물결 따라 농부는 논밭을 버리고 도시로 떠났다. 한때 고추가 익고 벼가 고개 숙이던 논밭은 농부의 발길이 끊기자 나무가 들어서 숲으로 거듭나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땅과 자연의 본능이다.

오후 2시, ‘다래랑 머루랑’이라는 간판을 단 펜션 민박집 앞을 지나면 앞에 다랑이마을이 펼쳐진다. 산속 깊은 곳까지 전답을 만들어 먹을 것을 해결하려 했던 조상들의 땀과 눈물이 빚은 걸작이다. 중황마을을 지나면 제법 큰 계곡이 하나 나오는데 탁족 등으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리산둘레길이 개통됐을 때 인근 지역에 많은 주민들이 먹을거리를 판매하기 위해 설치한 시설들이 요즘에는 개점휴업 상태로 남아 있다. 미관을 흐려 정비가 필요한 시점까지 이르렀다.

오후 3시13분, 노고지리 산방 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아래는 상황마을이다.

최창민·강동현기자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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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암 앞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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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동마을소나무민박 2015-04-05 07:59:37
'우리는 매동마을소나무민박에서 경남일보 취재팀과 숙박을했다 둘레길 걷는동안취재진께 냇가를 건너다우리에 정겨움을 들겼는데 이렇게감사의 사진을 주셨다 편집국장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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