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경일시단
벽지-가정법원, 그 여자의 진술(최은묵 시인)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8.18  00:00:0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벽지 -가정법원, 여자의 진술

최은묵



나는 벽에 달라붙어 살았다

움켜쥔 손톱은 짓물렀고 등은 시렸다

이제 나는 지치고 늙어

그만 벽에서 내려오려 한다

지금껏 나는 혼자 단단한 줄 알았으니

못에 뚫린 자리는 비로소 바람에 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건 구멍이 아니라 들판이다

내 몸에서 벽화처럼 굳어가던 문양(文樣)의 나비들이

저녁 해를 따라 떼 지어 날아가고, 들판은 점점 커지고

풀칠되지 않은 노을처럼 나는 너그럽게 주름진다

나는 벽을 떠난다

벽과 멀어진 이만큼으로 가볍게

나비가 앞선 들길로 간다

바람이 지나가면 길을 내주고, 잠시 멈춘 거기에 앉아

벽에 붙어 피곤했을 다리를 오래 주무를 것이다

딱딱하게 살았던 날들을 들판에 널고

천천히 데울 것이다



작품설명: 사랑이라는 맹목이 인습이라는 거적때기로 살았든 거지, 연민은 화석이 되어 벽으로 숨었고 바람은 못 자국을 메웠지. 얼레를 벗어나는 방패연처럼 허공으로의 자유, 포개짐을 버린 시린 독백 (주강홍 진주문협회장)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