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경관이 돈이다
농촌 경관이 돈이다
  • 경남일보
  • 승인 2014.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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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장·건축학과 교수)
독일에서 체류하던 시절 필자가 가장 좋아했던 휴가지 중 하나는 ‘알고이’지방이었다. 이는 내가 살았던 곳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 주에 위치하고 있는데,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어 독일의 알프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알프스가 그러하듯이 수려하고도 낭만적인 자연경관과 목장들이 찾는 이들의 마음과 시선을 뺏어 간다. 특히 이 지방의 끝단에는 우리에게는 물론이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백조의 성으로 알려져 있는 환상의 ‘노인슈반슈타인’성이 그림처럼 버티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그 유명한 독일의 낭만가도가 시작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도시에서의 찌들고 힘들었던 삶의 피로가 눈처럼 녹아내려가는 것을 느끼곤 했다. 특히 아침 일찍 일어나 목초지를 따라 산책하다가 목장에 들러 신선한 우유와 치즈를 사서 갓 구운 빵과 함께 먹던 행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더 감동을 주는 것은 이러한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물이다. 전통 양식의 경사 지붕과 단순하고도 순박한 자연적 형태 및 크기가 주변 자연을 더욱 더 돋보이게 해준다. 여기에다가 통나무 외장과 발코니의 아름다운 꽃 장식이 알프스 전원의 정취를 한껏 더해준다. 이러한 매력과 자원의 힘 때문에 이곳은 일년 내내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이 지방 사람들은 도시보다도 더 나은 부와 행복을 누리고 있다. 사실 이곳도 여느 농촌처럼 산업화 때문에 젊은이들이 먹거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가 버리는 아픔을 겪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농촌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한 산업이 정착되면서 이곳은 아름다운 만큼 살기 좋은 곳으로 변모되었다.

서구에서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던 농촌 공동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1970년대부터 농촌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곧 다가올 추석 같은 명절에는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진풍경을 오늘날까지 연출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면적은 전체의 약 16.5% 정도지만, 인구비율은 90%를 상회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농촌의 고령화 현상은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어서 얼마 가지 않아 농촌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는 국토의 효율적이며 균형적인 관리 및 이용을 어렵게 하며, 농촌이 가지고 있는 우리 고유의 전통과 문화 및 역사 유산을 유실시킬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처럼 농촌과 도시는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최근에는 농촌의 향토적 고유자원에 대한 가치가 매우 중요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농촌 경관이 가지는 특수성과 고유성은 더할 나위 없는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농촌 모습과 여기에 숨겨진 전통과 문화가 우리에게 쉼과 안식 그리고 휴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는 곧 관광 또는 체험산업을 통한 농촌경제의 새로운 효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와 유관기관 및 단체 등에서는 농촌경관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또한 경관법 등을 강화하여 풍광이 마을의 고유한 자산임을 일깨우고 보호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가장 우려되는 것은 공동화 및 노령화된 농촌마을에 대한 난개발이다. 즉, 빈 마을과 땅에 단순 경제논리에 입각해서 농촌 경관에 어울리지 않은 건축물과 시설물, 그리고 자동차 중심의 도시형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 농촌에 기반을 두고 살아왔던 우리의 정신적·정서적·문화적 말살을 초래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제는 농촌 경관을 이용한 틈새산업이 최첨단 IT에 못지않은 창조경제 수단인 것을 확실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이제 필자는 알프스 ‘알고이’가 아닌 지리산 농촌마을을 우리 냄새와 맛을 느끼며 지친 삶을 회복해 오는 휴가지로 선택하고 싶다.
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장·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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