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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열전<12> 하종화 동명고 배구부 감독‘코트의 신사’로 불린 스타플레이어
곽동민  |  dmkwak@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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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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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화 감독 (1)
하종화 감독
 
▲잊을 수 없는 1991년…올림픽 출전권 따낸 극적인 역전

1991년 8월18일 호주 퍼스 슈퍼드롬에서는 아시아선수권 결승전이 열렸다. 바르셀로나행을 놓고 맞붙은 두 팀은 ‘숙명의 라이벌’ 한국과 일본이었다.

이 대회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한 장의 티켓이 걸려 있었다. 오직 우승팀만 올림픽에 초청받을 수 있었다.

195cm의 장신 공격수였던 하종화는 높이와 파워는 물론 기술도 뛰어났다. 마낙길과 함께 대표팀의 왼쪽을 책임진 그는 한양대 우승으로 한층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승리의 여신은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접전에 접전을 펼친 한국이었지만 마지막 세트에서 벽을 넘지 못했다.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올림픽 티켓을 놓친 한국은 바르셀로나행이 불투명해 보였다. 그러나 희망은 있었다. 그해 11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월드컵대회에서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월드컵대회에서 한국은 유럽의 강호인 독일과 남은 한 장의 티켓을 놓고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을 펼쳤다.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한국은 3-2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특히 5세트 11-14로 뒤처진 상황에서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독일의 공격 범실 2개가 연달아 나오면서 14-14 듀스를 만들어냈고, 노진수와 마낙길의 마무리 공격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지금도 그때 그 기분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세트에서 11-14라는 점수를 뒤집는 그 기분은 경험해 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게다가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낸 뒤 이어진 일본과의 경기에서 아시아선수권대회 때 패배한 설욕도 할 수 있었으니 저에게 1991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입니다.”

2003년 동명중고감독 부임 당시의 하종화 감독
2003년 동명중고감독 부임 당시의 하종화 감독. 경남일보DB


▲감독 하종화, 모교 배구 중흥 위해 나서다

전성기를 구가하며 한양대를 졸업한 하종화 감독은 2002년까지 10년간 선수와 코치로 몸담았던 남자배구 현대팀에 사표를 낸 뒤 2003년 모교인 진주 동명중·고 배구부 감독을 맡게 된다. 잃어버린 배구 명문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1985년 창단 10년 만에 종별 전국대회에서 우승해 전국 제패의 위업을 달성하며 배구명문으로 발돋움했던 동명고 배구부는 1987년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문을 닫게 된다.

그로부터 11년 만인 지난 1997년 동명중·고가 진주시 초전동으로 자리를 옮긴 뒤 1998년 동명중 배구부가 창단되고 이어 2001년 동명고 배구부가 재창단됐다. 이후 학교측은 옛 배구명문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 하종화 감독과 접촉하며 감독 영입을 추진했다.

모교로부터 팀 재건 부탁을 받은 하종화 감독은 자신이 배구인으로 성장한 고향 진주에서 새출발을 결심하고 2003년부터 모교에서 제2의 지도자 인생을 걷게 된다.

“선수와 코치로 활동하던 기간 동안 내가 느끼고 배웠던 것들을 학생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기본기를 충실히 다듬는다면 금방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지요.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지도방법이었지만 아이들이 잘 따라준 덕분에 좋은 결과도 얻고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이끈 하 감독은 부임 이후 2005년 18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메이저대회 우승과 준우승을 수차례 기록하며 동명중·고교 배구를 전국 최강의 반열에 올려 놨다.

이후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인정 받은 하 감독은 2011년 당시 남자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새 사령탑을 맡는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풍랑을 만난 하 감독은 2013년 감독직에서 내려와 2014년 다시 모교로 돌아온다.

모교로 돌아운 하 감독은 특유의 지도력으로 다시 한 번 동명고를 고교배구 최강자의 자리에 올렸다. 이미 올해 메이저대회 2관왕을 달성한 동명고는 10월 열리는 전국체전 우승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2005년 전국대회 우승
2005년 제32회 대한 배구협회장기 전국남녀 중고배구대회 결승에서 경북사대부고를 3-0으로 따돌리고 18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동명고 선수들이 하종화감독을 헹가래 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경남일보DB


▲‘코트의 신사’ 다운 지도철학…‘즐기면서 하라’

하 감독은 ‘코트의 신사’라는 별명답게 지도방식도 ‘젠틀’하다. 그의 지도철학은 즐기면서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못한다고 심하게 나무라는 법이 없다.

“운동하기 싫으면 억지로 하지 말고 ‘차라리 쉬라’고 얘기하는 편입니다. 재미있게 배구를 해야 ‘내가 왜 배구를 하는지’ 알고 욕심도 더 생기지 않겠습니까. 자라나는 선수들은 그래야 발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돕는 게 제 역할이지요.”

학교 팀 감독으로서 가장 힘든 건 역시 선수 스카우트. 학부모를 설득하는 작업도 만만찮다. 고등학교 졸업반 선수들의 진학문제도 풀기 어려운 숙제다.

그러나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전국 수준의 중·고교 배구를 선보이는 진주에 정작 초등학교 배구팀이 없다는 것.

“예전에는 배영초등학교와 봉원초등학교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배출됐습니다. 저 역시 배영초, 봉원초에서 배구를 처음 배웠지요. 그렇지만 지금 진주에는 이렇다할 초등학교 배구팀이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학교 선수들만 봐도 진주 출신은 1~2명이 채 안됩니다. 진주 배구가 다시 한 번 부흥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부터 중·고교, 대학까지 이어지는 인프라가 마련돼야 한다고 봅니다. 탄탄한 배구 인프라를 갖출 수 있다면 실업 배구팀 유치도 그저 꿈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하종화 감독은

생년월일:1969년 8월 28일(음력) 가족관계:아내 왕순이 씨, 1남(혜성), 3녀(혜민 혜진 혜교) 출신학교:봉원초-진주동명중·고-한양대-경남대 교육대학원 소속팀:현대캐피탈 92~2000년 국가대표:89~96년 별명:코트의 신사 주요성적:87년 바레인 세계청소년대회 우승, 91년 일본월드컵 5위, 93년 태국아시아선수권 우승, 91·94슈퍼리그 우승 수상경력:88년 대통령배 신인왕, 91년 대통령배 MVP, 92년 올스타전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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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충북 단양에서 열린 제48회 대통령배 전국 남녀 중고배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동명고 배구팀. 경남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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