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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전라를 잇는 인연길 등구재생명의 터전 지리산 둘레길 <15>인월~금계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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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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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보면 위로 하늘만이 보이는 하늘재. 이 고개마루에 서면 지리산이 보인다.

산엘 가다보면 ○○재, ○○치, ○○령이 많이 나온다. 모두 고개를 이르는 말이지만 규모면에서 약간 다른 의미로 쓰인다.

‘재’는 산을 가로지르는 고개, 치는 높은 산이나 험한 산을 넘는 고개를 이르는 말이다. 진주의 도동지역과 옥봉동을 넘는 말티고개처럼 재를 가끔 티로 쓰기도 한다. 티에는 고개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어 이럴 때는 말고개 혹은 말티로 쓰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말은 마(馬), 혹은 마루라는 의미다.

‘령’은 큰 산맥을 가로지르는 고개를 일컫는 말로 재나 산마루의 이름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쓰이기도 한다. 한계령, 미시령 등이 이에 속한다.

이번 구간의 압권은 전북과 경남을 가르는 등구재이다. 이 재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양 도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한 중요한 길목이었다.

과거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 사람들이 전북 인월장에 가거나 남원의 산내 운봉으로 넘어 다니던 고개다. 거북등을 닮아 한자 거북 구(龜)를 써 등구재라 했다. 여름철 늦은 시각 동쪽 법화산 마루에 둥근 달이 떠오르면 노을과 달빛이 어우러져 한껏 아름다움을 뽐낸다.

부모님을 따라 나선 처녀·총각들이 인월장에서 만나 서로 눈이 맞았을 테고, 혼인까지 성사돼 꽃가마를 타고 넘었던 고개이기도 하다. 실제 창원마을에 살고 있는 박금순·박금자 할머니는 50여년 전 재 너머 인월에서 이곳으로 시집을 와 지금까지 드라마처럼 골 깊은 인생을 살고 있다.

상황마을―등구재-창원마을-금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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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예쁜 감나무 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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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구름이 내려앉은 둘레길.
▲취재팀은 1박2일로 진행된 인월∼금계구간에서 지난주 1회차에 이어 2회차로 상황∼금계마을 산행을 위해 오전 9시 상황마을 상부지점 지리산 둘레길에 도착했다.

곧바로 된비알 등구재로 치고 올라간다. 지프와 소형트럭이 오르내릴 수 있는 시멘트 임도이다. 재 입구에 둘레꾼들의 쉼터인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다.

등구재 오름길에서 만난 신선한 풍경은 국내 최고의 야생 산나물인 곤달비농장이다.

곤달비는 우리나라의 심산유곡 지리산, 덕유산 등 고산지에서 자란다. 하트모양의 잎 가장자리 둘레에 톱니모양이 선명한 것이 특징. 봄철 어린잎을 따 생으로 쌈을 싸먹거나 데쳐서 말린 뒤 보관하면서 두고두고 먹는다. 향이 독특하고 강한데다 상큼해 입맛을 돋우는데 그만이다. 곰 발바닥을 닮았다는 곰취와는 비슷하나 약간 다르다.

곤달비는 줄기가 원통형에다 초록색이고 줄기와 잎연결 부위가 V자형이며 잎의 광택이 강하다. 곰취는 줄기가 보래색을 띠며 홈이 있고 줄기와 잎 연결부위 모양이 U자형이다. 그러나 둘 다 야생 산나물 중 최고로 친다.

오전 9시 30분, 해발 650m 등구재를 넘어가면 이제부터 함양 땅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북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에 걸쳐 있다. 거북등 외에도 아홉 굽이를 돌아 오르는 고개라는 의미로 등구치(登九峙)라는 설도 있다.

등구재에서 왼쪽 방향 산등성이 3.1km지점에 삼봉산(1187m)이 있고, 오른쪽 방향 능선의 최고봉이 백운산(903m)이다. 이 백운산은 백두대간 상에 있는 함양 백전면의 백운산과는 다른 산이다.

오전 10시, 편안한 숲길의 산을 내려서면 임도가 나온다. 이 길에서 EBS 한국기행 촬영팀을 만났다.

이 방송사의 다큐 프로그램 ‘한국기행’은 화∼토요일 방영된다. 우리나라의 숨은 비경을 찾기도 하고 마을의 역사와 풍습, 건축문화의 향기를 전달하는 시간여행 프로다. 특히 최근에 방영된 ‘여름비경 베스트 5’는 절제되고 세련된 영상미가 돋보인다.

임도를 따르면 와불전망대가 나온다. 앞산이 부처님이 누워 있는 듯한 형상을 한 와불산을 볼 수 있는 전망대다. 와불산 아래 송전길로 둘레길이 이어지는데 이 산 상부에 한국전쟁의 상흔이자 최후의 빨치산 정순덕이 마지막으로 은거했던 선녀굴이 있다. 예부터 와불산을 보면서 기원하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전해지고 있다.

산 정상부에 스산한 안개가 내려앉아 을씨년스러운 모습이기도 하나 아래에는 비럭에 소나무, 산이 어우러져 몽환적이다.

상황∼금계구간에는 지리산 천왕봉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많다. 운골농장과 창원마을 정자가 이에 속한다. 북쪽에서 남으로 보는 장면이니 천왕봉을 중심으로 왼쪽이 중봉, 오른쪽이 제석봉, 장터목, 세석이 펼쳐진다. 남쪽에서 보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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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카드속 그림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평화로운 창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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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을 뜯다가 취재팀과 대화를 나눈 할아버지.
오전 10시 30분, 천왕봉 배경의 촬영 포인트 창원마을 옆 동산의 정자나무 아래를 지난다. 금계 4.1km가 남은 지점이다. 지리영산의 마루금이 구름에 가려 있어 상상만으로 그려볼 뿐이다.

창원마을은 일찍이 전통한지를 생산했다. 지금은 이 마을 이상옥씨가 3대째 한지를 생산해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이곳에서 자란 닥나무를 채취해 만드는 이씨의 한지는 여러 겹으로 치밀하고 광택이 나는 것이 특징. 또한 색감이 변하지 않으면서 통기성과 보온성이 뛰어나 오래도록 보존이 가능하다.

닥섬유가 친환경 천연섬유라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농한기에 약 6000여장의 한지를 생산해 농가수익을 올리고 있다. 함양군에서는 전통산업 보존을 위해 무형문화재 지정과 한지 생산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10시 30분, 창원신촌 생태마을’을 지나 내려서면 왼쪽으로 아늑하고 평화로운 모습의 창원마을 전경이 펼쳐진다. 시골교회와 마을, 수목과 논밭이 어우러진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의 시골농촌 풍경이다.

학창시절 한번쯤 동경하고 그려봤을 법한 크리스마스 카드의 그림이나 이발소 그림의 한 장면처럼 예쁘다. 다만 하얀 눈 대신 아직 초록이 일렁이는 모습이 다를 뿐이다.

오전 10시 42분, 이번에는 하늘재를 넘어간다. 고개마루에 아무 것도 안 보이고 하늘만 보여 하늘재다. 사진촬영을 하기에 그만인 장소다. 하늘재를 벗어나면 다락논의 논두렁 사이를 곡예사처럼 줄을 타듯 걸어가야 한다.

눈대중으로 한뼘 남짓한 논배미에서 나물을 캐는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허리를 펴지 않았다. 취재팀 일행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인기척을 느꼈는지 허리를 폈다.

“할아버지 지금 뽑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요.” “아! 이거, 매물! 보드랍은 거 골라 나물해 물라고.” 할아버지는 한뼘 남짓 자란 어린 메밀 순을 한줌 들어 보였다.”

둘레길 조성 시 논두렁을 기꺼이 허락한 할아버지로서는 흔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이 귀찮을 법도 했지만 “조심해 가라”면서 웃어 주었다.

할아버지의 메밀밭을 지나면 커다란 바위들이 쌓여 있는 돌강이 등장한다. 이 바위지대는 산의 상부에서부터 아래로 거대한 띠를 형성하고 있다. 자그마치 아주 오래 전 3만년 동안 자연의 풍화작용으로 빚어진 신비의 돌강이다. 태고적 일어난 신비한 현상이지만 별 생각없이 건너간다. 가만히 생각하면 지금까지 있어 줘서 고맙고 또 감사한 그대로의 자연이다.

소나무 숲길 속으로 들어간 뒤 야트막한 등성을 하나 넘으면 이제부터는 마을과 사람들의 냄새가 난다. 왼쪽 멀리 엄천강이 힐끗힐끗 보이고 산 쪽에는 마천에 석산이 눈에 들어온다. 석재를 채취하기 위해 거대한 산 하나를 통째로 부셔 버린 자연에 반하는 모습이다. 산을 무너뜨린 것이 가책이 됐을까. 큰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어 놓았는데 참, 설상가상이다.

오전 11시 50분, 마을을 관통해 더 내려오면 폐교를 활용한 지리산 둘레길 함양군 안내센터 앞 금계마을에 닿는다.

최창민·강동현기자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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