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9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19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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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3. 사루마다 귀신들
“우리가 이러다가 영원히 타국 땅에 몸을 파묻는 거 아냐?”

“그런 소리 마라고. 기분 나쁘다.”

“제발 주둥이들 좀 다물어. 안 그래도 오싹해지는 판에…….”

그러던 왜군들은 갑자기 들려오는 높고 거친 고함소리를 듣고 소스라쳐 하나같이 벌떡 몸들을 일으켰다.

“야! 이것들이 지금 여행 온 줄 알아? 어디서 그따위 되지도 않은 소리들을 나불거리고 있는 거야, 엉?”

“칼로 주둥이를 싹 도려내버려?”

왜장 장강충흥과 소야목중승이었다. 둘 다 얼굴이 원숭이 볼기짝같이 붉었다.

“이 봐, 오노기 시게카쓰!”

장강충흥이 집어 삼킬 듯이 부하들을 노려보고 나서 소야목중승을 불렀다. 소야목중승, 그는 훗날 일본 본토에서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졌을 때, 1만 5천의 서군을 거느리고 다나베 성을 포위, 수성하던 호소카와 후지타카가 성문을 열게 하여 승리를 거두는 인물이다.

소야목중승에게는 이런 일화도 전해진다. 그가 충주성 공략을 할 때 휘하 군사들에게 소위 ‘오노기 카사(小野木笠)’라고 불리는 철제의 전립을 쓰게 하였는데, 나중에 덕천가강이 그것을 보고 편리하다고 생각하여 ‘급할 때 뒤집어서 솥으로 사용해도 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하이, 나가오카 다다오키!”

소야목중승이 장강충흥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호소카와 다다오키라고도 불리는 장강충흥의 이름 다다오키(忠興)의 ‘다다(忠)’는, 오다 노부나가의 적자인 오다 노부타다(織田信忠)의 이름 글자 중의 하나인 ‘다다(忠)’에서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자는 지조가 없고 약삭빠른 인물이다. 이른바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추방당한 후에는 나가오카 씨(氏)를 칭하다가, 나중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서 하시바 씨를 하사받았으며, 오사카 전투 이후에는 호소카와 씨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렇게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듯, 당대의 권력자를 번갈아 섬기며 호소카와 가문의 기초를 다져간 것이다.

훗날의 일이지만, 그 장강충흥에 비하면 소야목중승의 최후는 비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풍신수길의 직신(直臣)으로 전투에서 패하자 천수각에서 할복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자 그 소식을 들은 그의 아내는 ‘새가 울어 이제 가는 저승의 산, 혹시 산자와 죽은자를 가리는 관문이 있어도 나를 나무라지 마라’는 내용의, 일본 전통시인 ‘와카(和歌)’ 가운데 하나인 짧고 구슬픈 ‘단카(短歌)’를 남기고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조금 전에 하세가와 히데카즈와 상의했는데…….”

소야목중승에게 낮은 소리로 그렇게 말하면서 장강충흥은 장곡천수일이 있는 막사 쪽을 돌아보았다. 역시 그쪽을 바라보는 소야목중승 얼굴에 긴장의 빛이 번져났다.

“어떻게 하기로……?”

예하 병력이 3천5백인 장강충흥과 1천인 소야목중승보다도 훨씬 많은 5천을 통솔하는 장곡천수일은, 그들에게는 부러움과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다.

어쨌든 두 왜장은 부하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서로 무어라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이윽고 장강충흥이 흡족하면서도 음흉한 미소를 띤 귀신 같은 얼굴로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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