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 시인 ‘에코의 초상’ 펴내
김행숙 시인 ‘에코의 초상’ 펴내
  • 연합뉴스
  • 승인 2014.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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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비극 후 시를 쓴다는 것은…”
전 국민을 깊은 슬픔의 심연에 빠뜨렸던 세월호 비극 이후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시인 김행숙(44) 강남대 국문과 교수는 최근 펴낸 네 번째 시집 ‘에코의 초상’(문학과지성사)에서 세월호 참사의 깊은 슬픔을 애잔하게 읊는다.

“별이 못이라면 길이를 잴 수 없이 긴 못, 누구의 가슴에도 깊이를 알 수 없이 깊은 못입니다/오늘 밤하늘은 밤바다처럼 빛을 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중략) 빛을 비추며 아이를 찾아야 했습니다/서로서로 빛을 비추며 죽은 아이를 찾아야 했습니다/어디서 날이 밝아온다고 아무도 말하지 못했습니다”(‘빛’ 중)

‘빛’을 비롯해 시집 후반부 시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쓴 시들이다.

21일 전화로 만난 시인은 세월호 참사라는 큰 비극을 겪은 뒤 시를 쓰는 게 힘겹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우문에 “부끄러운 마음”이라고 고백했다.

“시기적으로 몇 편의 시가 그랬습니다. 어쩔 줄 모르고, 어찌할 수 없이 그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그 유명한 말을 뒤집어 쓸 수 없는 것은 시가 아니라 산문이라고 했던 지젝의 말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의 자리가 시의 자리, 문학의 장소일 테니까요. 어떻게 해도 제 것보다 거대한 슬픔이라 슬픔을 드러내는 것이 어쩔 수 없이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시인은 “‘밤에’라는 시에서 ‘밤에 날카로운 것이 없다면 빛은 어디서 생길까’라고 물은 바 있었는데 어둠 속에 빛을 비추어 어둠을 찢는 일이, 살을 찢는 것처럼 아프고 아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찢지 않는다면 세상의 빛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차마 희망이라는 말을 쓸 수 없는 세계에서, 다만 어떤 통증만이 공동체의 윤리를 간신히 떠받치고 있을 때, 지극히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의 통증에서 빛의 가능성을 간신히 말해볼 수 있었다”고 했다.

실험적인 시어와 감수성으로 독자적인 시세계를 펼쳐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타인의 불행을 ‘나’의 일로 겪어내면서 시 안에서 기쁨과 슬픔을 토해낸다.

“우리는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물결처럼/우리는 깊고 부서지기 쉬운/시간은 언제나 한가운데처럼”(‘인간의 시간’ 중)

시인은 “시간 속에 있는 인간의 몸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면서 “인간의 시간 안에서 타인과 내가 어떻게 얽히고 밀어내고 닳는지, 그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썼다”고 설명했다.

문학평론가 박진 씨는 “‘에코의 초상’에는 견딜 수 있는 것 이상을 견디는 눈부심 같은 게 있다”고 평했다.

그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데 대한 절망적인 규탄과 꿈결에서조차 용서를 허락지 않는 후회와 자책으로 한 그루 덤불을 껴안고 활활 타오르는 시간들 속에서 그녀는 타인의 불행을 ‘나’의 일로 겪어내고 있다”고 풀이했다.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은 시집 ‘사춘기’ ‘이별의 능력’, 산문집 ‘마주침의 발명’ ‘에로스와 아우라’ 등을 펴냈다.

연합뉴스

김행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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