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섬김 리더십, 그 후
교황의 섬김 리더십, 그 후
  • 경남일보
  • 승인 2014.08.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근 (객원논설위원, 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장)
‘나는 여러분 앞에 선지자가 아니라 천한 종으로 서 있습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섬김(서번트) 리더십은 바로 이런 뜻을 담고 있다. 행동에 앞서 스스로 종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더욱 어렵다. 사실 지도자가 자신을 천한 종이라고 표현한다고 해서 아무도 그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무한한 존경심으로 다가올 뿐이다.

섬김 리더십을 처음 제시한 그린리프(Greenleaf)는 헤르만 헤세의 ‘동방순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주인공 레오가 교단의 정신적 지도자였지만 모든 것을 숨기고 종의 자리에서 여행단을 섬겼다는 내용을 보면서 불현듯 떠올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진정으로 누군가를 리드(lead)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들을 위해 서브(serve)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시대에 가장 섬김의 지도자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은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까지 섬김의 자세로 대하고 있지만, 그의 영향력에는 어느 누구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 3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교황을 선정했다. 검소하고 소탈한 모습, 권위를 내려놓은 행보를 보여준 것이 더 큰 위대함을 낳은 것이다.

반면 당연히 상위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생각했든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5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포천의 설명은 의외로 간단하고 명료했다. ‘그저 대규모 조직을 운영하거나 영향력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명단에 오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향력은 권위 있는 자리에서 생기는 것도, 힘 있는 직책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특권을 내려놓는 것이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어떤 것이지 교황은 평소에도 실천해 왔다. 줄곧 소형차를 고집하고 교황궁 대신 게스트 하우스를 거처로 삼았다. 취임 후 첫 외부 방문지로 지중해 난민 수용소를 방문해 죄수의 발까지 축복의 입맞춤을 선사하는 파격을 보였다. 자신의 생일날에도 집 없이 떠도는 노숙인을 초대해 함께 아침을 먹고 미사를 드렸다. 심지어 무슬림에게까지 세족식을 하는 등 권위를 스스로 바닥에 내려놓는 하심을 몸소 실천했다. 그러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사생활로 물의를 빚은 독일 주교에 대해서는 단칼에 징계하고, 바티칸 내부의 문제도 과감히 개혁을 단행하는 엄격한 모습을 보였다.

4박 5일간의 짧은 방한 기간에도 항상 낮은 자세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공항에서 소형 승용차로 이동하는 모습은 시작에 불과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비롯해 위안부 할머니,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과 늘 함께했다. 한국을 떠나면서도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남겼다. 교황은 사람들의 마음에 진정으로 다가갈 줄 아는 섬김의 지도자였다. 교황의 이런 모습은 세월호 참사 등으로 좌절에 빠져 있던 국민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우리가 교황 신드롬에 빠진 이유는 그에게 참된 섬김의 리더십, 낮은 곳으로 향하는 소통의 리더십을 보았기 때문이다. 교황이 다녀간 지금 우리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답답하기 그지없다. 여전히 구시대적인 권위에 익숙해 있고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국회는 빈사상태에 빠져 있다. 서민생활에 필요한 각종 법안들은 한 건도 처리되지 못한 채 정쟁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비리 국회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방탄국회를 여는 등 특권을 내려놓기보다는 오히려 악용하고 있다.

국민들은 교황이 떠난 후 가슴을 열고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오는 지도자가 더욱 그립다.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특별히 배려해 그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교황의 메시지에 대해 하루속히 우리 정치권이 응답하길 바란다.
안상근 (객원논설위원, 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