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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는 애달픈데 자연은 아름답더라생명의 터전 지리산 둘레길 <16>금계~동강
최창민/강동현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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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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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락재에서 본 임천. 크게 굽이치는 아름다운 강이다. 중앙에 있는 나무군이 점필재, 김종직의 유적지다.

 
 
수몰될 위기에서 벗어났던 강원도 영월의 동강만큼 감입곡류의 미를 자랑하는 강이 우리고장 함양의 임천이다. 엄천강으로도 부른다. 하류로 내려가면서 경호강으로 이름을 바꾸고 진양호에 잠시 머물다 남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임천이 흐르는 함양군 휴천면 한남마을 주변에 ‘새우섬’이 있다. 강물이 큰 S자로 흐르면서 두 줄기로 갈라져 중앙에 자연스럽게 등굽은 새우처럼 생긴 섬이 형성된 것이다. 지금은 산 어귀쪽 물줄기가 메워져 한줄기로 흐르지만 예전에는 두 줄기여서 고립된 섬이었다.
이곳이 세종의 12번째 아들이자 비극의 주인공 한남군 ‘이어’가 유배된 곳이다.
한남군은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 소생으로 세종의 손주, 즉 단종에게 젖을 물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 인연으로 훗날 어린 단종이 왕위를 잇자 혜빈은 내명부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그러나 1953년 계유정난이 일어나고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뺏기자 혜빈도 함께 나락으로 떨어진다.
1456년 단종 복위운동이 있었으나 실패해 이를 주도했던 성삼문 등 사육신은 영월에 유배되고, 연루됐던 혜빈 양씨는 청양으로, 아들 한남군 ‘이어’는 세조(수양대군)의 명으로 목숨만을 건진 채 함양 임천 새우섬에 유배된다.
그는 새우섬에서 고립돼,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단종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고루한 삶을 이어간다. 이듬해 어머니 희빈마저도 교수형으로 비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자신은 점점 조여오는 생명의 위협에 단 하루도 편한 잠을 이루지 못했을 터이다. 결국 응어리 진 애환을 가슴에 안고 죽은 듯 살다가 29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새우섬은 대왕의 아들이었지만 비정한 권력 앞에 절망하고, 또 생의 무상함에 좌절한 젊은 왕자의 영혼이 서린 곳이다. 새우섬 건너편에 그의 이름을 딴 한남마을이 있고, 함양읍 교산리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그의 묘가 있다.
이 구간에는 한남군의 사연 외에도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애환을 글로 남겼던 이른바 조의제문(弔義帝文)의 주인공 점필재, 김종직이 넘었던 구시락재도 있다. 그는 사후에 조의제문이 문제가 돼 부관참시 당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금계→의탄교→의평마을입구→의중마을→둘레길 갈림길→서암·벽송사→갈림길 하산→이끼계곡→모전마을→둘레길 전설탐방로→송전마을→운서마을→구시락재→동강마을.
▲오전 9시, 지리산 둘레길 함양센터 마천 금계에서 출발해 지리산 칠선계곡 방향으로 임천 의탄교를 건넌다. 의탄교 아래 임천은 최근 내린 비로 수량이 많다. 흐르는 물빛이 보기 드물게 연초록색을 띠는데 하얀 포말과 어울려 한결 상큼함을 전해준다.
둘레길은 의평마을 입구에서 좌측으로 꺾어 산으로 붙는다. 의평마을에는 늙은 느티나무가 마을의 상징물처럼 버티고 있다. 수령 700년을 바라보는 당산목으로 이 계곡의 끝 칠선계곡 상부에 있는 주목군락의 나이와 비슷하다.

 


침목계단의 산길로 올라선 뒤 의중마을에 닿는다. 의중마을 삼굿터는 100여년 전 주민들이 한지의 원료가 되는 닥나무를 공동으로 삶아내던 곳이다. 1990년까지 사용했으나 지금은 석축에 이끼가 끼어 형태만 남아 있다.
9시 20분, 갈림길. 임천으로 바로 가는 길과 서암 벽송사를 거쳐 가는 길로 나뉜다. 취재팀은 벽송사 방향이다. 오른쪽 발 아래 칠선계곡의 물소리가 우렁차다. 최근 내린 비가 많은 것도 이유지만 지리산 최고의 계곡이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소리다. 장마철 칠선계곡 산행은 물폭탄이 쏟아지기 때문에 자제하는 것이 좋다.
시누대밭과 칡넝쿨을 헤치듯 오르면 서암정사가 나온다. 서암은 인근에 있는 벽송사의 부속암자로 천연의 암석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원응 스님이 불교의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조각법당을 10년에 걸쳐 완성했다. 법당으로 향하는 입구에도 자연 암반에다 많은 불상을 조각했다.
10시 벽송사. 조선 중종 1920년 지엄선사가 창건했다. 서산대사 휴정이 3대 조사로 알려져 있다. 사명대사 유정도 이곳에서 수행했다. 입구에 있는 목장승이 유명한데 솟대에서 유래된 것이다. 석장승은 선돌이 원조다. 사찰에 들어오는 악귀의 퇴치, 풍수지리상의 비보 역할 등 다양한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다.
일제시대 초기의 것으로 당초에는 노상에 세워져 있었으나 훼손되면서 보호각을 세워 놓았다. 표정이 위풍당당해 무서워 보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순박하고 익살스럽다. 불교와 민간신앙이 어우러져 나타난 걸작이다. 벽송사 뒤 명품 소나무 미인송은 태풍으로 기울어져 사다리로 받쳐 놓았다.
벽송사를 떠난 뒤 산속 길, 곳곳에 여름철 버섯이 창궐해 있다. 계란처럼 생긴 계란버섯은 식용으로 송이버섯과 같이 솔향이 난다. 두꺼비와 뱀도 보인다. 이번에는 독이 있는 살모사다. 다행히 슬그머니 길을 비켜주어 지나갈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둘러가야 한다. 산은 그들의 영역이다.
 

11시 21분, 갈림길을 만나고 이제 임천방향으로 하산 길을 잡는다. 이끼가 많은 계곡이다. 몇 곳에서 이끼폭포를 만날 수 있어 사진촬영의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내려서 닿은 곳은 모전마을. 아스팔트 도로에 서면 가까운 곳에 용유담과 용유교가 보인다. 일행은 오른쪽으로 꺾어 모전마을회관 앞을 지나 오른다.
11시 52분, 마을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따라 오르면 와불산으로 갈 수 있고 왼쪽이 둘레길이다. 와불산은 일전 100명산에 소개한 산으로 한국전쟁 이후 마지막까지 남았던 빨치산 정순덕이 숨어 살던 선녀굴이 있는 곳이다. 정순덕은 이 선녀굴에서 마을로 내려왔다가 잠복한 군인에게 잡혔다.
이곳에서 세동(송전)마을 방향으로 강을 따라 용유담의 전설과 함께하는 ‘둘레길 전설탐방로’가 시작된다. 도로를 이용해도 되지만 둘레길은 강가로 아주 가까이 다가간다.
에메랄드 연초록 물빛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길은 강가에 다가가거나 혹은 멀어지면서 오골거리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낮 12시 30분, 때죽나무와 참나무 그늘 아래 강돌이 깔린 좋은 위치에서 꿀맛같은 휴식. 사람들은 먼곳에서 천국을 찾지만 그게 아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소중하고 내 옆에 있는 자연환경이 천상이다. 이곳에서 천국이 따로 있지 않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오후 1시 30분, 자리를 털고 일어서도 길은 강물과 함께 이어진다. 송전가든에 올라서면 숲길이 끝나고 아스팔트 도로다. 이 도로는 새우섬이 보이는 대형 펜션건물까지 이어지다 다시 논밭 사잇길로 연결된다.
2시 40분, 멀리 한남군의 애끓는 사연을 안고 있는 새우섬에는 오백년이 넘은 지금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유유자적하고 있다.
운서마을 쉼터를 넘어가면 몇 개의 산등성이와 마을, 논길을 지나고 구시락재에 닿는다.
구시락재는 운서마을에서 동강마을로 가는 고갯길이다. 힘이 들어 구시렁거리면서 지나 구시락재일까. 하지만 구시렁거림은 이 재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저 멀리 유유히 흘러가는 임천을 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진다. 이 길은 또 한 분의 대쪽 김종직의 사연을 담고 있다. 들녘 가운데 나무 군락지가 그의 유적지다.
점필재, 김종직이 누구던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유두류록과 부관참시다. 그는 세조의 왕위찬탈을 못마땅히 여겼다. 1457년 왕위찬탈을 비판하고 단종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는 이른바 조의제문을 지었다. 그를 따랐던 사림 김일손이 이 문장을 사초(史草)에 넣으면서 사화의 빌미가 된다. 이 사실이 김종직이 세상을 떠난 뒤인 1498년(연산군4) 훈구파에 발각되면서 부관참시를 당하고 관련된 사림들도 죽임을 당한다. 사초 때문에 일어난 조선 최초의 무오사화(戊午士禍)다. 그는 지리산 유람 기행물 유두류록을 남겼다.
3시 40분, 동강마을에서 4코스가 끝난다. 동강마을은 동쪽의 강이라는 뜻의 강원도 영월의 동강과는 다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정부는 동강마을 상류 임천 용유담에 문정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지역민과 환경단체들이 반대하고 있다. 20여년 전 영월의 동강에서 그랬던 것처럼….
최창민·강동현기자
 

새우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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