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엔 기도를
이 가을엔 기도를
  • 경남일보
  • 승인 2014.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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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시인, 소설가)
바람결이 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또 가을입니다. 성했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면 굳이 바람결이 아니더라도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여름 내 그저 뻗쳐오르기만 하는 성했던 기운에 미처 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을 이제는 돌아보고 살펴야 하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가을이란 계절이고, 그 바람이 주는 의미이기도 하겠습니다.

지난 여름, 더는 봄부터 우리는 너나없이 너무도 큰 아픔을 겪고 상처를 입어야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GOP 총기 난사사건,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까지, 있어서는 안 될 일들아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그런 사건을 접하고 지켜보면서 우리는 그저 참담함에 젖어 할 말을 잃었지 않았던가요? 이 나라에서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사람으로서 어찌 저럴 수 있나 싶어 경악하고 분노하고, 그리고 탄식하다가는 절망하곤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싶은 생각에, 그건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가슴 한복판에 깊이 팬 상처를 그저 속수무책으로 안아 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요. 그건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니던가요. 그저 성장 일변도로 달려오면서 인성을 다스려 나가는 법을 잊어버렸고, 그것들을 외면해왔고, 또한 가르치고 이끌어오지 않은 탓이 아니던가요?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상처를 입었고, 그리하여 그걸 치유할 길을 찾지 못해 허덕이지 않았던가요. 따지고 보면 가해자도 피해자도 우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굳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나름대로 상처를 입고 그 상처부위를 제대로 한 번 핥지도 못한 채 여름을 지나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절은 속일 수 없어 가을이 왔습니다. 그게 정한 이치이겠지요. 성하기만 했으니 이제는 숙연해져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상처 입은 자들을 위로해주기는커녕 제대로 된 해결방법도 찾지 못한 채 허둥거리기만 하고, 또 그것으로도 모자라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이해득실을 따져 자기식의 논리에 대한 아집을 버리지 못하고, 각 계층은 또한 자기들대로 목소리만 높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결국은 상처만 깊게 할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지요. 아니, 뻔히 알면서도 그러는 것이겠습니다.

그렇듯 너무나도 큰 상처를 안아야 했던 여름이 끝나갈 무렵 교황이 이 땅을 다녀간 것은 결코 우연할 일이 아니었다고 여겨집니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치유입니다. 서로 보듬어 안고 어루만져야 할 때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특정한 종교나 종교인이 아니라도, 그런 저런 형식을 벗어나 옷깃 여미고 두 손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요.

닫힌 창문을 엽니다. 곡식을 여물게 하고 과일을 익게 할 햇빛이 내립니다. 그 햇빛이 고개를 숙이게 합니다.
전미야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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