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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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4.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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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청 (시인, 진주제일여고 교사)
영화 ‘명량’이 최고 흥행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이야기인데, 사람들은 왜 ‘명량’에 열광하는 것일까. 영화의 작품성과 대중성이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일까. 그런 면도 일부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문화평론가 진중권 교수는 김한민 감독의 전작 ‘최종병기 활’과 비교하면서 혹평했다. 그런 면에서 가히 신드롬이라고 할 만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영화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이순신 신드롬’이다. 그리고 신드롬은 그만큼 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뜻도 내포한다.

이야기는 많은 경우 ‘세계와의 불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지지만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은 세계와 화해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인간 앞의 세계는 언제나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것들은 늘 어느 날 갑자기 우리들 앞에 다가와 평온한 일상을 위협한다. 이야기는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세계와 화해하여 일상의 평온을 회복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욕망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그것이 재탕이든 삼탕이든 이야기의 탄생과 유통에는 당대 삶을 배경으로 한 현실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유로 영화 ‘명량’의 흥행은 역설적으로 이순신 때문만은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불안감 때문이다. 그들의 불안감이 이순신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났고, 이것이 ‘명량’의 흥행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영화 ‘명량’의 흥행은 굳이 작품성의 관점에서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우리들이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 배경이 있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시대적 반향이 반영된 결과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모두들 국가개조를 외치고 있지만, 그것이 제대로 이뤄질까 의구심을 품고 있는 대중들이 과거 우리 역사 속의 영웅 이순신을 통해 시대적 염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든 이 시대가 다시 정상적인 평온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에 다름 아니다. 불안한 현실에 맞서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욕망은 의외로 끈질기다. 따라서 이순신 이야기에는 대중들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욕망이 투영되어 있는 그만큼 지극히 현재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배경을 지닌 ‘충무공 신드롬’이 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왕조 사회와 달리 오늘날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국민에게서 나온다. 과거에는 민초들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시대였다면 오늘날은 우리들이 선택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시대이다. 다만 그 불만의 정도와 열망의 방향이 서로 다르고, 현실에 대한 진단과 해결방법이 같을 수 없다. 그래서 각자의 열망이 기이하게도 초인적인 이순신에 대한 신드롬으로 응축되어 나타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서로의 입장에 따라 극명하게 서로 대립하고 각자 갈라서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신드롬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열망의 근원과 지향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모순과 혼란이 야기된다.

이러한 모순이 하나의 현상으로서 분명히 존재한다면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현실이 분명 잘못되었지만 바꾸었을 때 더 큰 혼란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든지, 아니면 바로잡는 것 이상으로 바로잡는 절차와 방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든지, 아니면 아예 바꾼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든지, 아니면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욕구의 분출로 현실에 대해 불만을 품고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지만 그것은 단지 가슴의 일이고 실제로는 현실적 욕구가 더 앞선다든지 그 이유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이러한 각자의 이유를 어찌 하나의 잣대로 부정할 수 있겠는가. 다만 무수히 많은 이유를 하나로 용해할 수 있는 시대적 가치와 그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설사 이순신이 살아서 돌아온들 우리는 여전히 비루한 현실과 신드롬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방황할 것이다.
하재청 (시인, 진주제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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