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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비의 풍모를 닮은 고고한 자태(57) 윤경남선생 생가와 심소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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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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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루와 심소정
소심루와 심소정
 
고추잠자리 떼가 가을 마중을 나와서 하늘 나직하게 바쁘게 휘젓고 다닌다. 빗속에 파묻혀 철 가는 줄을 몰랐던지 성큼 다가온 가을 앞에서 놀란 토끼눈을 한 태양이 여름의 끝자락을 붙들고 다급하게 오곡을 익히느라 볕살을 쏟아붓는다. 이맘때면 배롱나무인 목백일홍이 장관을 이루는 정자가 있어 35번 고속도로에서 88고속도로로 길을 바꿔서 거창요금소를 나와 2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의 심소정을 찾아 길을 나섰다.

합천호로 흘러가는 황강을 건너서면 강둑길 너머로 우거진 숲이 작을 골짜기를 한가득 메우고 뒷산의 주봉에서 양 갈래의 긴 산등성이를 타고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은 산발치까지 아름드리 노송으로 빼곡한데 듬성듬성 배롱나무의 빨간 꽃송이가 나뭇가지 틈새마다 선혈처럼 영롱하다.

소나무 숲속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비 갠 뒤끝의 싱그러움이 송진내음을 물씬 풍기는데 작은 골짜기의 비탈진 길 위로 날아갈 듯 날렵한 2층 누각이 고색창연한 옛 멋을 풍기며 만개한 배롱나무 꽃무리를 거느리고 덩그렇게 앉았다.

단청은 세월에 빛이 바래 찬란하지는 않으나 은은하고, 계자난간은 연약한 듯하면서도 다부짐이 묻어나고, 곡선이 멋스러운 익공포의 운치는 더할 나위없는데, 귀공포마다 봉황과 청황용이 정교하고 섬세하여 날렵한 추녀 밑에서 힘찬 비상을 준비하는데, 소심루의 현판은 위풍당당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고개를 젖혀 쳐다보는 누마루는 세월의 정취가 정겨움으로 넘치는데 2층 누마루엔 연방이라도 큰 갓 쓰고 도포 입은 근엄한 선비들이 막 중대사를 논의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게 한다. 정면 3칸에 측면 2칸인 소심루는 산비탈의 언덕배기를 올라 돌계단으로 이어진 심소정의 문루인데, 웅장하지는 않으면서 엄숙함이 묻어나고 균형의 안정감이 그림같이 수려하며 단아한 짜임새가 더 없이 날렵하여 추녀는 연방이라도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날 것 같다.
윤위식 기행
윤경남 생가전경

나무계단을 밟고 누마루에 올라서자 천장의 화려함이 기막히게 아름답다. 대들보를 걸탄 육중한 청황룡은 여의주를 물고 서로를 마주하고, 보머리마다 올라앉은 봉황과 연꽃봉오리의 섬세한 조각은 생동감이 넘치는데 대들보에 그려진 호랑이는 포효의 우렁찬 소리를 내지를 것 같고 주심도리 위의 화반에는 선선도가 아련하다. 종도리와 대들보밖에 모르는 문외한으로서는 짜임새의 설명은 언감생심이고 장인들의 옛 솜씨에 그저 놀라는 것만으로도 흡족할 뿐인데, 아기자기한 짜임새와 화려하면서도 포근한 정감이 어려서 외모는 근엄하고 내면은 온화하여 다정다감의 정취가 그윽한 누각이다.

소심루 밑으로 통과하면 빤하게 비탈을 이룬 자연석 돌계단의 층층대 위에 ‘심소정’이라는 현판이 붙은 커다란 정자가 화려한 단청은커녕 어떠한 도색의 흔적도 없이 세월에 바래져서 윤기조차도 없는 옛 모습 그대로 중후한 자태로 근엄하게 앉았다. 돌계단을 올라서면 정자의 왼편으로 좁다란 잔디밭이 배롱나무의 그늘에 짙푸른데 수백년 노송은 풍진 세월에 허리 굽고 등이 굽어 애환에 얽힌 옛 이야기라도 일러줄 듯이 양팔을 벌리고 반기고 섰다. 노송의 휘어진 가지 아래로 ‘고 현감 화곡 윤공지단’이라는 용머리의 커다란 비석을 등에 진 거북은 세월의 무게가 버거운지 화곡 윤경남 선생의 충의학덕이 높고도 깊어선지 꽤나 큰 덩치건만 납작하게 엎드려 입을 벌린 채 안간힘을 쓰고 있어 눈이 퉁방울 같이 튀어 나왔다.

정면 4칸에 측면 2칸의 계자난간을 두른 누마루에 올라서니 발끝 아래로 황강이 흐르고 벼논이 널따랗게 펼쳐진 건너로 거창읍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종 32년 단성 현감을 지낸 윤자선 선생이 낙향하여 지내다가 세조 4년에 건립하여 후학과 후진을 길러낸 정자라고 안내판은 간단하게 일러주는데 후일 3·1독립선언에 유림들이 빠진 것을 아쉬워하며 망국지탄에서 털고 일어나 비분강개한 유림들이 ‘파리강화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은밀하게 제출하여 세계 만방에 호소한 파리장서 거사를 논의한 유서 깊은 곳이며 옛 거창국민학교의 전신인 ‘남창의숙’의 교육장이기도 했다.

누마루에 오르면 우물마루의 마루청바닥은 투박한 널빤지가 큰 자귀질의 흔적이 또렷한데, 선현들의 발끝에 닳고 닳아 반들거리는데 목재의 전부는 세월에 닳고 닳아 윤기라곤 없다. 그 옛날 먼 길 손님들의 유숙과 사계절용의로 두 칸의 방은 아래층에 아궁이를 마련한 온돌방으로 꾸며져 툇마루까지 붙었다. 정자라기보다는 누각 같은 웅장한 건축물로 문화재자료 제58호이다.

계자난관에 걸터앉아 사방으로 활짝 핀 선혈 같은 목백일홍에 깊이 묻혀 만고상청 푸른 솔을 등지고 황강을 굽어보면 온고지정에 흠뻑 빠져 신선이 된 듯하다. 아무리 고운 꽃도 십일을 넘기지 못한대서 화무십일홍이라 했건만 목백일홍은 어찌하여 백일을 마다않고 고운 빛을 내는 걸까. 끈질긴 은근함을 말 하렴인가, 불변의 지조를 뜻 하렴인가. 원줄기도 구분 없이 틈새마다 가지를 내어 이리저리 굽었어도 선현들이 가까이 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만고불변 절의일까, 불원천 불우인(不怨天不尤人)의 깊은 뜻이 서렸을까. 목백일홍 심은 뜻은 고고한 선비의 유훈이 아니런가.



비바람 모질어서 이리저리 굽었어도

원줄기 구분 않고 두루두루 가지 뻗어

오뉴월에 꽃피워서 삼복염천 마다않고

무서리 오는 날까지 두고두고 붉으리라.



심소정에서 불원지간에 있는 상촌마을의 윤경남 선생 생가를 찾아서 발길을 돌렸다.

심소정 솔숲의 산모롱이를 돌아들자 작은 도랑 건너편으로 언뜻 보아도 백여 그루는 넘을 것 같은 소나무 숲이 아름드리 노송들로 들판 가운데 섬처럼 떠 있다. 산기슭을 밟으며 도랑을 끼고 샛길로 접어들자 늦여름의 장대비가 국지적으로 폭포수 같이 쏟아져 남부지방을 할퀴고 간 생채기는 아랑곳없이 모처럼의 햇살을 받은 올된 코스모스는 일찌감치 길섶에 자리를 잡고 서서 길게 목을 늘이고 빵긋하게 피었고 여름 내내 비에 젖어 신명나게 한 번 울어보지도 못한 매미소리는 벌써부터 시들먹하게 풀이 죽어 가엽기도 하다.

빨간 고추를 널어 놓은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대궐 같은 기와지붕이 마을 한가운데서 추녀를 맞대고 무리지어 있다. 지금은 주차장이 된 바깥마당을 앞에 두고 솟을대문이 덩그렇게 솟았다. 대문을 들어서면 대청누마루가 딸린 ㄱ자의 사랑채가 바닥의 경사를 이용하여 절반은 축대를 쌓아 덩그렇게 높이 솟아 누각같이 웅장하게 보이는데 사방으로 난간을 둘러 운치를 더한다.

안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산을 등지고 비탈진 곳을 축대로 쌓아서 역시 ㄱ자형으로 사랑채보다는 높게 자리하여 대청마루 두 칸에 안방 두 칸은 다락으로 이어진 아랫방을 끼고서 다락 아래엔 두 칸의 부엌까지 거느렸다. 지형을 절묘하게 이용한 특이한 구조로서 한옥연구사에 중요한 고택이라며 파평 윤씨 33세손인 윤원생씨가 일러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생가는 군기를 비축하는 장소로 내놓고 선생은 의병을 모집하여 크게 활약하며 진주성까지 참전하여 그 공으로 장수 현감을 역임하였으며 사후엔 대사헌으로 벼슬이 더해졌다고 자상한 설명까지 덧붙인다.

선생은 벼슬보다는 학문을 부귀보다는 후진양성에 일생을 바쳤으니 이는 나라를 위한 충성이었고 백성을 위한 보우였으며 가문을 위한 명예였고 장부로서의 기개였으며 후세를 위한 희생이었다. 텃밭을 내려다보는 선생의 사당 아래에는 대를 이어 을사조약을 반대하며 을사오적을 통렬히 비난하는 ‘기사의 소’를 올리고 국권을 되찾아 외세를 배척하여 자주정신을 확립하자는 동지문(同志文)을 지어 뜻을 같이하자고 전국의 교우동지들께 촉구한 교우 윤주하 선생 문집판각이 파란만장했던 긴긴 역사를 지켜보고 섰다.
윤위식의 기행
윤경남생가의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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