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맥 빠지게 하는 것들
우리를 맥 빠지게 하는 것들
  • 경남일보
  • 승인 2014.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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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선 (객원논설위원)
지난 4개월 반 동안 우리는 엄중한 사회적 혼란과 엄청난 충격을 겪었다. 순진한 어린 학생들을 차가운 바닷속에 매몰시킨 세월호로 말미암아 죽음으로 되돌아온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온 국민은 눈물을 흘리고 슬퍼했다. 죽은 학생들 모두가 한 핏줄 한 겨레의 아들딸들이었고, 선한 우리 이웃의 자녀들이기 때문이었다.

누가 이 아름다운 새싹들을 바닷물 속에 몰아넣었는가. 사건의 진상이 하나하나 밝혀질 때마다 우리는 참사에 숨겨진 어두운 음모에 놀랐다. 신도들을 불러 모아 사이비 단체를 만든 유병언의 탐욕이 빚어낸 결과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국민감정은 극에 이르렀다. 신을 빙자한 종교집단이 과연 ‘구원파’ 하나뿐이겠느냐는 자조 섞인 말도 나돌았다.

그런데 이 엄중한 국민적 감정이 정치와 연결되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가혹한 정신적 회의에 휘말렸다. 46일 간에 걸친 단식을 중단하면서 야당을 향해 ‘단식을 중단하고 국회로 돌아가라’는 ‘지침성 주문’을 한 ‘유민 아빠’의 발언은 우리를 참으로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를 따라 단식에 참여한 사람들, 의미 없는 야당의 장외투쟁, 청문회 한 번 열어보지 못한 채 해산한 세월호 침몰사고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실종된 민주정치의 실체를 보는 듯하였다. 타협은 사라지고 극한투쟁만 난무하는 정치권에 강한 회의감을 품게 했다.

그뿐이겠는가. 일부 한국사 검정교과서에 ‘지면이 모자라서’,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라서 유관순 열사를 제외했다는 저자들의 엉뚱한 발언, 국립현충원에 당당하게 들어 앉혀진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의 화환, 현직 지사 아들의 부하장병에 대한 가혹행위, 독직사건으로 구속된 국회의원들, 대통령을 명예훼손한 혐의로 22차례에 걸친 검찰소환에도 끝내 조사에 불응한 현직 의원 등은 우리를 더욱 김빠지게 만들었다.

유관순이 누군가. 3·1만세운동으로 일제 헌병대에 체포돼 독립만세를 고창하다가 모진 구타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방년 18살 난 우리의 독립열사 아니던가. 유관순을 배제하면 곧바로 친일이 된다. 국립현충원은 어떤 곳인가. 김일성의 6·25남침전쟁으로 초토화된 국가와 국민을 구하려다 산화한 국군장병들의 유골을 모신 곳이 국립현충원이다. 그곳에 김일성 손자의 화환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

옛날 어느 주인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마당에서 하인이 뱀을 잡는데 큰 뱀은 잡았다가 놓아주고 작은 뱀 두 마리는 패대기쳐 죽이는 것을 보았다. 주인이 까닭을 물었더니 “큰 뱀은 독이 올라 있어 앙갚음하기 때문에 죽여서는 안 되고 작은 뱀은 독이 없으니 죽여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간교한 꾀로 어리석은 사람을 속이는 이야기도 있다. 말 한 마리를 세 사람이 흥정하면서 한 사람은 말 등을, 다른 한 사람은 말 머리를, 나머지 한 사람은 말 꽁무니를 각각 나눠 함께 사자고 합의하였다. 그런데 산 말을 몰고 가면서 등을 산 사람은 말을 타고, 머리를 산 사람은 고삐를 잡고, 꽁무니를 산 사람은 채찍을 들고 따랐다. 말을 사면서 들인 돈은 같은데 한 사람은 주인노릇을 하고 다른 둘은 종노릇을 하는 꼴이 되었다.

우리 사는 세상에 이 같은 사례는 너무나 비일비재하다. 특히 종교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우리는 내세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럴듯한 말로 내세를 주입하면 검은 유혹이 숨겨져 있음을 모르고 속는다. 고된 삶을 보상받을 것으로 믿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갖다 바친다. 악을 견제하고 선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데도 나라는 온갖 부정부패의 연결고리를 방치한 채 허송세월하였다. 그 사회적 비리가 곪아 터진 것이 세월호 참사였다.

죗값은 반드시 되돌려 받는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다. 교언영색으로 뭉뚱그려진 말과 행동으로 끌어 모은 재산 가운데 30여억 원의 돈뭉치를 들고 광야를 헤매다가 벌레 먹은 시신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유병언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박동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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