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 최초 출전지는 모자랑포”
“거북선 최초 출전지는 모자랑포”
  • 이웅재
  • 승인 2014.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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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상 국제대 교수 ‘성역화사업’ 토론회서 주장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통해 거북선 최초 출전지가 사천 모자랑포 임을 확인한데 이어 거북선의 용머리에서 포를 쐈다는 기록을 확인한 만큼 사천해전 거북선의 복원가치가 높다는 주장이 제기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같은 내용은 사천시가 이순신 장군의 최초 출전지 성역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3일 오후 2시 용현면사무소에서 열린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지명 고증 토론회에서 나왔다.

이에앞서 사천시는 임진왜란때 거북선 최초 출전지의 역사적 고증 및 사천해전 재조명, 성역화 사업을 통한 관광자원 활성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거북선 최초 출전지 성역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 발표자로 나선 국제대 이우상 교수는 “국내 최고의 이순신 전문가들과 함께 난중일기를 고증해 본 결과 거북선 최초 출전지가 사천 모자랑포인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천해전에 출전한 거북선은 ‘용머리 입으로 포를 쐈다’는 기록으로 볼때 목이 길게 위로 올라가 있는 귀선이 아닌 용머리가 선체 앞과 일체형으로 돼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1592년 5월29일에 있었던 사천해전은 거북선이 처음 출전해 승전보를 올린 곳이며 거북선 전투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고, 실전배치를 증명하는 중요해전으로 역사적 의미가 커 성역화 사업의 당위성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사천해전에 출전한 거북선은 용 머리에서 포를 쐈다고 기록돼 있는데 이는 현재 복원 또는 재현된 거북선들과는 용머리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사천해전 거북선의 복원가치가 높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사천 모자랑포가 수군진영이었다’는 증거로 난중일기에 ‘이순신 장군은 사천해전에서 어깨에 관통상을 입고 사천땅 모자랑포에서 5월29일 밤을 새웠다’는 기록을 제시했다.

그러나 난중일기에 기록된 ‘사천 모자랑포’의 오늘날 지명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실안동 영복원 일대와 노룡동 모자랑개, 용현 주문 등이 거론됐지만 고증의 한계로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다만 사천 선창이 용현면 선진과 통양 사이 조금마을 부근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해군사관학교 충무공연구회 정진술 자문위원(사천시 모자랑포 위치 고증)과 제장명 교수(임진왜란 승전지 지명 고증),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이상훈 실장(사천해전과 거북선) 등 국내 유수의 이순신 장군 연구가들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사천시 관계자는 “역사적 의미가 깊은 사천해전을 지역의 다른 관광자원과 연계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기본 구상을 하기 위해 학술용역을 실시했다”며 “학술용역 결과를 납품 받아 시장에게 보고하고 추진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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