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11)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11)
  • 경남일보
  • 승인 2014.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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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유안진 시인 부군의 빈소에 들른 문인들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11)
<72>유안진 시인 부군의 빈소에 들른 문인들 
 
유안진 시인(서울대 명예교수)의 부군 김윤태(서강대 명예교수) 교수의 부음을 듣고 필자는 기존의 일정 때문에 짬을 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헬리곱터를 타고라도 가서 조문을 해야 할 입장이라 조문 마지막날(8월 31일) 오후 5시경 서울 가톨릭성모병원 영안실에 가까스로 닿을 수 있었다. 미리 김수복 시인과 약속을 한 터이라 김 시인과 같이 영안실로 들어갔는데 마침 방배동 성당 연도팀이 막 망자 김윤태(프란치스꼬)를 위한 연도를 시작할 때였다. 필자는 연도팀 한쪽 곁에 앉아 그들과 호흡을 맞추어 연도를 바쳤다. 유안진 시인과 아들 상주(미국 펜실바니아주립대 교수)에게 조의를 표한 뒤 봉투를 넣는 조의함을 찾는데 유시인이 부군의 영정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조의금을 받지 말라고 하네요”하는 것이었다.

‘저 사람이’라는 말에 부부의 삶이 참 거룩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유시인은 최근 부군의 병상을 지키느라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는 터라 시인이 얼마나 한 몸 부치는 것일까 염려하는 심정으로 그냥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그 며칠 전에 부음을 듣고 ‘부음’이라는 제목의 시를 써 놓고 있었다. “동시대를 함께 늙어간다는 일이/ 행복이라고 말한 벗이/ 한 생애 동반자를 잃었다 하네/ 그동안 손가락 깨물어 피 흘려 넣는 병구완이라/ 정성이 하늘에 닿고도/ 몇 차례 돌아오는 시간,/ 아픔이 닳아 무색한 아픔일까// 어깨가 흔들리는 듯, 지금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기도 한 꾸러미 데리고 내게 허락된 하루/ 슬픔이 슬픔에게로 가는 길.”

유안진 시인이 부군을 만난 것은 미국 유학중일 때였다. 당시 정태범 교수(교원대 교수, 교육부 편수국장)도 유학 중이었는데 부군과는 막역한 사이였다. 유 시인은 유학 가기 전에 대학 졸업후 마산 제일여고교사로 한 3년 근무하여 경남과는 인연을 맺었고 근래에는 이형기문학상을 받아 진주에 자주 들리는 편이었다. 정태범 교수(진주사범 출신)는 산청 덕산 출신 시인 허윤정의 부군으로 남강문학회 수필분과 회원으로 해마다 진주에 들른다.

필자는 한 30년전 쯤 마산에서 한국시인협회(당시 회장 김남조) 세미나를 마친 뒤 돝섬 기행을 할 때 유안진, 이근배와 여류시인 다른 두 분과 전통찻집에서 담소하며 합석했는데 필자가 화두를 먼저 꺼냈다. “그저께 진주에서 성파시조문학상 제1회 시상식이 있었는데 수상자는 최재호 시인이었지요. 시상하는 성파 스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어찌도 저리 맑은지 저는 그 얼굴의 청정에 대해 생각을 했어요”하자 유시인은 “저는 세속에서 때묻지 않은 일석 이희승 선생을 떠올려요”했다. 이를 받아 한 동석 여류는 “이 자리 이근배 시인이 동안이예요”하고 이근배 시인에게로 시선을 돌리게 했다. 필자는 남자가 둘 밖에 없는 자리에서 좀 머쓱한 마음이 들 순간 유시인이 “여기 계시는 강희근 시인도 동안이예요”하고 나를 다들 바라보게 했다. 필자는 한 번도 스스로 동안이라는 생각을 해본 일 없는 터라 유시인이 주변을 배려하는 마음 씀이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30년, 시인들의 행사에서 만나고 심사도 하고 하는 사이 늘 배려하는 분, 아량이 바다 같은 시인이라는 것, 한 마디에도 향기가 나는 분으로 인정하며 지내왔다.

필자가 조문 문인들 틈에 앉기 직전에 다녀간 문인들은 문효치, 문정희(한국시인협회장), 이화은, 이채민, 장충렬, 이상문(국제 펜 이사장), 신달자(전 한국시협 회장) 등이었다. 필자와 함께 동석한 문인은 김원일, 김수복, 황학주, 권택명 그리고 여류들 몇 명이 있었는데 여류들은 필자에게 인사를 해왔지만 이름들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필자가 머뭇거리자 여류들은 “저희는 진주 이형기문학제에서 뵀습니다”하고 스스로를 분명히 밝혔다. 이형기문학제는 그럭 저럭 연륜이 쌓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옆 자리 앉은 진영 출신 김원일 작가와는 초면이지만 그가 현대문학 장편소설에 입상할 때 필자의 작품이 현대문학에 자주 실렸으므로 이름을 익히 아는 사이였다. 그의 ‘겨울 골짜기’에 대해 비교적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초판과 최근 판에서 달라진 부분, 사건에서 살아난 문씨 집안의 신생아가 무슨 큰 회사의 중역이 되어 있다는 것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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