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祭祀)
제사(祭祀)
  • 경남일보
  • 승인 2014.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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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 (진주향교 사무국장)
지난 추석 때 집사람은 무척 분주했다. 콩나물도 미리 조그마한 동이에 키우고, 도라지도 삶아 둔 것을 조금 사면 될 것을 꼭 생것을 사다가 껍질을 벗기고 물에 담가 두었다가 쓰는 등 일거리를 만들어서다.

옛날 어머니들은 제사에 온 정성을 쏟았다. 4대 봉제사를 모시는 필자의 집에는 후사가 없는 고조부가 계셔서 일 년에 열 번, 설·추석 차례를 합치면 열두 번의 제사를 모셨다. 종손도 종부도 아니면서 아버지는 큰집인 필자의 당숙이 형편이 어렵다고 큰집 몫 제사까지 도맡아 모셨는데, 부친이 돌아가시자 재종형님께 모셔 가라고 할 수 없어 그대로 이어 받았다. 그러나 그 많은 제사를 모시면서도 나의 어머니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으셨다. 오직 숙명인 듯 즐거운 마음으로 조상을 모셨다.

어릴 때 추억은 그 비좁은 방에 콩나물 동이가 놓이고 자다가 쪼르륵 물소리가 들리면 ‘아! 제사가 다가오는구나’ 하고 알 수 있었고, 제사 전날이면 여섯 누나가 멍석에 둘러앉아 제기(놋그릇)를 기왓장을 가루 내어 짚 쑤시개로 닦곤 하였다. 제삿날 어머니는 풀을 빳빳하게 먹인 흰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고 물동이에 물을 이고 와서 아궁이에 불 때어 제사 밥을 지었다.

남자들이야 차려 둔 제사에 절만 하면 되었지만, 참 일도 많고 잔손 잡히는 제사준비였다. 옛날 어머니 시대의 유풍을 몽땅 물려받은 거야 아니지만, 지금 아내가 상당부분 그것을 전수받아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세상이 많이도 변했다. 아무리 농촌이라도 수도시설이 잘 되어 있어 물동이에 물 이고 다니는 여인 없이 손가락만 까닥하면 되고, 나무 해다가 불 때서 눈물 흘리며 멧밥 지을 일 없이 전기밥솥이 해결해 주고, 가까운 시장에 가면 나물이며 과일이며 다 있으니, 그냥 사다가 제사상에 얹으면 끝이다. 그 많은 제사를 손수 준비하면서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모셨던 어머니의 시대에서 대(代)가 바뀌니 이렇게 편리한 시대에 살면서도 ‘명절 증후군’이 생겼다니 세상 참 너무 변한 셈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제사 한 번 모시고 나면 돌아가서 아내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생병을 치른다니 돌아가신 조상님이 이 모습을 보면 어떤 감회에 젖을까. ‘죄는 지은 데로 가고 덕은 닦은 데로 간다’는 속담처럼, 오늘날 나의 몸이 이 세상에 있게 한 조상을 잘 모시고 섬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제사로 인해 흩어져 살던 형제자매가 모여 조상을 추모하고 화합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미풍양속인가. 조상 잘 섬겨 손해 볼 일 없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을 쏟자.
심동섭 (진주향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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