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함’과 ‘쉰들러 리스트’
‘악의 평범함’과 ‘쉰들러 리스트’
  • 경남일보
  • 승인 201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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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객원논설위원, 한국국제대학교 교수)
군대의 병영문화는 위기가 아니라 낭패이다. 전우애는 이제 옛날 영화에서나 찾아 볼 일이 되었다. 그래도 이전의 군대는 ‘군대 빠따(방망이)’라는 걸 맞아도 그리 서럽지도, 억울해 하지 않으며 서로 동지애가 있어 그에 의지하여 군 생활을 해낼 수 있었다. 지금 병영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들은 전우애(戰友愛)란 온데간데없고, 서로 ‘병영내의 적’이 되어 으르렁거리며 살아간다는 살벌하고 걱정스러운 사건소식들뿐이다.



집단 따돌림은 ‘악의 평범함’의 전형이다

왕따 당한 병사는 자신을 왕따시킨 동료들에게 수류탄을 까 던지고 탈영하더니. 한 병사는 침 뱉은 바닥을 혀로 핥아가며, 강제로 치약 한통 먹어내면서 그 수치심을 못 이겨 귀한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기까지 했다. 또 특전사부대의 선임 병사가 상습적으로 부하병사의 혓바닥에 전기를 통과시켜가며 고문했다고 전한다. 이게 어디 군대인가. 아니다. 겪어서는 안될 생지옥의 광경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쁜 인습을 관행으로 일삼는 군대 같은 집단문화 속에는 전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는 ‘악(惡)의 평범함’이 존재하기 쉽다. ‘악의 평범함’이란 유대인 대학살의 집행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법정진술에서 ‘국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편안하게 진술하는 장면을 보고 생겨난 말이다. ‘한나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은 악행을 저지른 범죄자이기보다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학살자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후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죄책감이라고는 털끝만치도 느끼지 못하는 ‘악의 평범성’을 보이는 전형적인 인간으로 불린다.

우리 군대에도 ‘악의 평범함’이라는 권위의 문화가 너무 오랫동안 우리 병사들을 길들여 오고 있지 않은지 모를 일이다. 군인들은 명령에 죽고 산다. 하지만 이제 그 명령에 대한 복종은 전쟁터에나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군대식 권위는 지금도 병영막사 주위를 배회하면서 병사들 사이를 갈라놓은 거대한 괴물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임 병장 총기사건을 일으킨 집단 따돌림에 가세한 병사들이나, 윤일병 가혹행위에 가담한 병사들이나 군대라는 집단소속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집단의 요구를 거절하기도 어렵다. 군대문화 속에서 그들의 양심은 인간 본연의 것이 아니라 군대라는 환경과 여건 속에 그들이 저지른 행동이 잘못된지 느끼지 못하는 ‘악의 평범함’에 매몰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권위를 깨는 길은 인간적 공감을 실천하는 문화를 깨우치면 치유할 수 있다. 인간적인 동료애는 인간 존재의 핵심이다. 그런 동료애는 타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때 생겨난다. 공감은 동료 병사의 처지가 되어 보고, 그들의 감정과 관점을 이해하며, 그러한 이해를 행동으로 삼는 일이다. 그러한 공감의 확장은 ‘악의 평범함’에 매몰된 군인들을 인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쉰들러 리스트’에 담긴 인간애

그런 점에서 같은 ‘홀로 코스트’망령에서 유태인들을 구한 ‘쉰들러 리스트’는 공감을 실천한 좋은 예이다. 구원의 리스트를 만든 주인공인 ‘쉰들러’는 자기가 고용한 유태인 출신인 세무직원의 어려운 처지를 듣고 인간애를 느낀다. 그는 자기와 우정을 나눈 동료의 처지에서 작은 손으로 탄피를 닦아야 하는 공장에 필요한 어린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한다.

물론 ‘악의 평범함’이 우리 군대식 문화의 소산이라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단순 질식사로 감춰질 뻔한 윤모 일병 구타사건은 억울하게 죽은 자의 입장에서 그 처지를 공감한 한 병사의 용기 있는 증언으로 밝혀졌다. 이 한 병사가 해낸 공감 실천이 무조건 복종하는 군대식 문화의 권위를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고원규 (객원논설위원, 한국국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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