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독서의 계절
사라진 독서의 계절
  • 경남일보
  • 승인 2014.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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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시인, 소설가)
엊그제, 그대는 사십여 년이나 묵은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며 출간 일자가 인쇄된 맨 뒷면을 사진으로 찍어 전송해왔지요. 책장은 누렇게 변색되고, 너무 오래 되어 마른 곰팡내가 나고, 또한 잘못 넘기면 책장 끝이 바스러지는 것처럼 찢기기도 한다고요. 그러면서 그 책을 구입할 때의 일화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다보니 그러구러 넘어간 세월이 그렇게나 오래 되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처럼 오랜 세월을 지나온 책을 다시 꺼내 읽는다는 게 문득 거기서 풍겨나는 마른 곰팡내처럼 목을 매캐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진한 그리움 같은 것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독서의 계절입니다. 함에도 요즈음은 이런 말을 들을 수가 없고, 말 자체마저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이맘때쯤이면 천고마비(天高馬肥)니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니 하여 독서권장에 여러 행사가 치러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듣기도 어렵고 관련 행사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가을이면 오히려 책이 더 팔리지 않아 출판사들은 여름 휴가철을 겨냥해 출간하는 경향으로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도 무척 오래입니다. 그렇다고 독서의 계절이 여름 휴가철로 옮겨져 그 때에 책이 많이 팔리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전동열차 안에서, 길을 가다가 가로공원의 벤치에 앉아 잠시 쉬면서, 혹은 어느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짬을 내어 숄더백 속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책 한 권을 꺼내 읽는 모습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인데 말입니다.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희귀동물 취급을 당하기 십상입니다. 책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야 마땅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짬만 나면 아니, 짬이 나는 게 아니라 길을 가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그 없는 짬을 만들어 가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봅니다. 물론 전자책이라는 것도 있어서 전자기기를 이용해 그것을 읽을 수도 있지만 그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손에 쥐는 스마트폰 하나면 온갖 정보를 접할 수가 있습니다. 유용한 정보들도 많지요. 하지만 그것들은 필요할 때만 이용하면 되는 것이지 목을 매다시피 할 일은 아니지요. 정보의 바다라 해도 쓰레기 같은 것들이 대부분인데 사람들은 거기에 목을 매다시피 하고, 그 사이버 공간에서 댓글 싸움이 일어나 살인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뭔가 깊은 향기를 느끼게 하는 것은 그런 경박스런 댓글 싸움으로 핏대를 올리게 하는 스마트폰의 그 사이버 공간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이 아니겠습니까? 신간의 잉크냄새는 얼마나 상큼하고, 오래 묵은 책의 마른 곰팡내는 또 얼마나 향기 깊던지요.

오늘은 나도 묵은 책 한 권 뽑아 들고 누군가의 ‘그대’가 되기로 합니다.
 
전미야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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