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상림의 꽃무릇과 승안사지를 찾아서
(58)상림의 꽃무릇과 승안사지를 찾아서
  • 경남일보
  • 승인 2014.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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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꽃으로 피었다면 이리 붉을까
윤위식의 기행
상림의 꽃무릇
 
 
옛정의 따사로움이 그리움으로 되살아나서 지난날이 아련해지는 가을의 초입이다. 아침저녁의 서늘함이 외로움을 불러 오고 높아버린 하늘은 허전함을 안기는데, 떠가는 흰 구름이 옛 생각에 젖게 하고 코스모스의 하늘거림이 잊혀진 옛사람들을 줄줄이 불러온다.

두고두고 아련한 옛이야기가 길섶마다 도란거리고, 역사의 향기가 청솔가지마다 품어내는 지금쯤의 함양에는 상림의 꽃무릇이 지천으로 피었겠다 싶어 홀가분한 차림새로 길을 나섰다.

35번 고속도로 함양요금소를 빠져나가자 함양읍의 들머리부터 소공원이 조성되어 길따라 줄지어 선 코스모스랑 억새꽃이 듬성듬성 섞여서 길손들을 반긴다.

읍내로 들어서자 군청 앞의 학사루가 왼쪽 소매를 붙잡는다. 고운 최치원 선생께서 자주 올라 시를 지으셨다는 고색창연한 학사루는 성리학자로 영남학파의 종조이신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지조가 가슴 뭉클하게 되살아나서 지나는 걸음마다 발길을 멈추게 한다.

유자광이 함양에 들러 한시를 지어 걸었던 주련을 함양 군수이신 선생께서 모조리 떼어내어 불살라버렸던 것이 훗날 역사에 피를 적신 무오사화로 이어진 애달픈 사연을 머금은 채 고고한 자태로 날렵한 추녀를 활짝 펼치고 하늘로 치솟는다. 지금의 주련은 지은이는 알 수 없으나 학사이승황학거(學士已乘黃鶴去) 행인공견백운유(行人空見白雲留), ‘학사는 이미 황학을 타고 가버렸는데 행인은 부질없이 흰 구름만 바라보네’라고 하니 먼 훗날 지나는 객의 심사까지 꿰뚫은 글귀에 온고지정이 두고두고 새롭다.

학사루에서 고운로를 따라 2000~300m를 가다가 위천강을 가로지르는 돌복교 앞에서 강을 따라 500m 남짓 거슬러 오르면 고운교를 앞세우고 울창함 활엽수의 상림이 말끔한 주차장을 마련하고 탐방객을 반긴다.

강의 상류를 따라 이어진 숲은 끝이 보이지 않지만 지금의 들머리도 아래쪽까지 길게 이어졌던 숲이었는데 홍수와 인위로 훼손되어 아래쪽은 몇 그루의 흔적만 남긴 채 하림으로 떨어져 나갔으니 예전의 모습이 참으로 아쉽다.

 

윤위식의 기행
승안사지 3층 석탑



고운 최치원 선생께서 이곳 천령군 태수로서 홍수의 피해를 막으려고 만드셨다니 선생께서 가신지 천년하고도 200여년이 지났으니 그 세월 얼마인가 가늠조차 어렵다. 갈참나무와 졸참나무에다 너도밤나무와 개서어나무 등 일백 여종이 넘는다는데 문외한의 눈에는 그게 그것 같은 활엽수이고, 2만여 그루라니 숫자의 개념은 이미 넘었고 최초의 인공림으로 문화와 역사의 기념물로서 천연기념물 제154호로서 18만여㎡라니 6만평의 드넓은 숲이다.

숲속으로 들어서자 붉은 양탄자를 깔은 듯이 바닥이 온통 꽃무릇으로 뒤덮였다. 또랑또랑한 개울물 소리를 듣고 자라서인지 잎도 없는 외줄기의 기다란 꽃대 끝에 예닐곱 송이가 또렷또렷하게 한 송이처럼 촘촘하게 둘러붙어 빨간 꽃잎을 크기도 모양새도 똑같은 모습으로 또르르 뒤로 감고, 길쭉길쭉하면서 실낱같이 가는 암술과 수술도 꽃잎 같이 빨간 빛깔인데, 수술의 끝에 맺힌 노란 화분주머니가 작은 점 하나를 찍은 듯 마는 듯 보일락 말락 아롱아롱하여 공작새의 꼬리깃털 같이 우아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활짝 피었다.

지리산이 보인다 하여 ‘망악루’라는 옛 이름을 지닌 함양읍성 남문의 문루였던 함화루 뒤에도 지천으로 피었고, 고운 선생의 시호를 색인한 ‘문창후최선생신도비’ 옆으로도 활짝 피었고, 고운 선생을 그리워하며 현판으로 남긴 옛 문인들의 시가 즐비하게 걸린 사운정 둘레에도 만개를 했는데, 경상대학교 강희근 교수는 ‘사운정에서’라는 근작의 시에서 ‘보라 사운정/최고운의 문장이 허리로부터 흘러내리면서/맞받아 맞받아서 점자로 짚어내고 있다’라고 사운정에 올라서 선생을 그리워했다.

선생을 그리워하던 많고 많은 이들이 상사화로 피어났나! 발 들일 틈도 없이 바닥을 덮었는데, 천년의 세간이 다기그릇 한 점 없이 만고풍상 오죽해서 양손마저 잃은 채 상림 속에 정좌하신 ‘이은리 석불’ 아래에도 만개를 했으니 헌화일까 보시일까 불꽃같이 피어났다.

잎과 꽃이 일생동안 서로를 못 보고, 꽃이 피기 전에 흔적 없이 잎이 지고, 잎이 피기 전에 흔적 없이 꽃이 지니 서로를 그리워한대서 ‘상사화’라 불러진다니 아리땁고 화사한 자태는 세속을 위한 사랑이라 하더러도 말없이 앓는 속내는 애처롭고 안타깝다.
윤위식의 기행
승안사지 석조여래좌상

짧은 늦가을에 간신히 새움 돋아/무서리도 견뎌내고 된서리도 참아가며/꽁꽁 언 땅에다 애달프게 뿌리박고/한겨울 폭설 속에 없는 듯이 푸른 잎은/봄볕일랑 한가득 품어보고 싶었건만/나뭇가지 사이로 꿈길같이 얼핏 보고/오뉴월 뙤약볕도 한없이 바랐건만/무심한 나뭇잎은 그마저도 가려버려/떠나야 할 육신을 흙속에 묻으면서/작별인사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 채/만나지 못하는 가슴 아린 그리움이/설움의 한으로 남을 법도 하건만/오롯이 남긴 정이 팔구월의 꽃대 되어/사무친 그리움이 상사화로 피었구나.

상림을 뒤로하고 보물 제376호 교산리 석조여래좌불이 교정에 있는 함양중학교 앞을 지나 24번 국도를 따라서 지곡방향으로 승안사지를 찾아서 차를 몰았다. 작은 고갯마루를 넘어서자 들녘 풍광이 좋으니 한숨 돌리고 가라며 청암공원이 노송의 그늘을 깔아 놓고 어유정으로 오르란다. 필까 말까 한 억새꽃 틈새에서 길게 목을 늘인 코스모스까지 거들고 나서기에 어유정에 오르니 발끝의 낭떠러지 아래로 누릇누릇한 가을 들녘이 노송의 가지 사이로 풍년의 꿈을 일렁이고 있다.

정여창 선생의 고택을 비롯한 하동 정씨 · 풍천 노씨 등 마을 전부가 고택들로 즐비하고 역사의 정취가 어린 개평마을이 옷소매를 붙잡는데, 훗날을 기약하고 지곡면사무소 앞에서 우회전을 하여 강을 건너서 거창방향으로 4차선 3번 국도를 따라 1km 남짓 가다보면 승안사지를 알리는 작은 안내판이 화살표를 안고 출구를 알린다.

출구 앞으로 단청이 화려한 두 개의 비각은 정여창 선생의 신도 비각과 의병을 일으켜 무신란의 평정에 공을 세운 아홉 분의 하동정씨 구충비각인데, 비각까지 가지 말고 다섯시 방향으로 난 시멘트 길을 따라 좁다란 골짜기를 1km가량 오르면,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 솟을대문의 고택 앞으로 단청이 고운 전각 안으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3호인 석조여래좌상이 좌정하고 계신다. 땅에 묻힌 하반신을 빼고도 상반신의 높이가 2m80cm의 거대한 석좌불이다. 통일신라 때 번창했다는 승안사의 기록으로 보아 온갖 전란과 만고풍상에 오른쪽 팔이 떨어져 나갔으나 선이 굵고 자태가 근엄하여 합장의 예가 절로 난다.

작은 개울을 건너 맞은편 석탑으로 발길을 옮겼다. 옥개석의 귀가 더러는 떨어져 나갔어도 범상치 않은 석탑이다. 사면에 양각된 부처와 보살, 그리고 비천상의 돋을새김이 두텁고 또렷하며, 탑신의 높이가 4m를 훨씬 넘는데도 균형 잡힌 장엄한 조형미가 껴안고 싶을 만큼 멋스러운 3층 석탑으로 고려시대에 조성됐다는 보물 제294호란다

탑돌이 세 바퀴로 예를 갖추고 고승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산등성이로 이어진 돌계단을 밟았더니, 등줄기를 따라 웅장한 묘역이 줄을 지었는데 경상남도 기념물 제268호란다. 쌍으로 선 우람한 문인석과 망주석이며 삼단의 상석 앞에 동물상이 마주한 네모진 분묘 옆으로 팔작지붕의 갓머리 비석에는 ‘유명조선국일두정여창선생지묘’라 쓰였으니, 무오사화로 유배 중에 세상을 뜨셨는데 갑자사화로 부관참시의 현장이고 보니 참연한 감회가 만감으로 교차한다.

중종반정으로 복관되어 훗날 문헌공의 시호와 함께 우의정으로 추증되셨고 정경부인완산이씨의 묘는 위쪽에 있다. 이웃 고을 동계 정온 선생께서 비문을 지으신 커다란 귀두의 돌거북이 짊어진 용두의 비석 옆에서 선생을 우러러 재배의 예를 올리니 만고상청 선생의 충의학덕에 노송은 더욱 짙푸르고 승안사의 범종소리가 거룩한 역사 속에서 장엄하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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