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미안해
아들아, 미안해
  • 경남일보
  • 승인 2014.09.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숙자 (시인)
얼마 전 공군 훈련병을 대상으로 한 공군 리더십 특강에서 한 대학교수가 부대 내 가혹행위로 최근 순직 결정된 고 김 일병을 두고 “죽을거면 나가서 죽지. 왜 여기서 죽냐”라는 발언을 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군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면 가슴이 철렁하는 마당에 이제 입대한지 몇주차 되는 훈련병들을 앞에 두고 이런 소리를 했다니 ‘벌컥’ 하는 심정이다.

아들이 군대 간지 석달여 만에 부모초청 행사가 있다고 연락이 왔다. 간단한 행사가 끝나고 군 내무반 참관을 하고 식당에서 장병들이 먹는 그대로 식당체험까지 진행됐다. 예전의 침상형 내무반이 이제는 침대형으로 개인생활이 존중되고 체육단련실과 컴퓨터가 줄 선 정보방, 휴게실, 샤워실 등을 둘러보는데 깨끗하고 잘 정돈돼 있는 모습에 남편은 “세상 참 좋아졌다고” 했다

안내하는 주임원사는 자기 아들에게 “고생 좀 해라” 하고 최전방으로 배치받게 권유했다고 한다. 부모들은 오로지 자식 고생할거만 생각해서 몸조심하라고 하니 요즘 군인들은 도전하는 면이 부족하고 나약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고 안타깝다고 했다. 새로운 환경과 시련이 영혼이 강한 아들로 단련시킬 것이다.

시설은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좋아졌는데 어찌된 일인지 최근에는 그동안 쉬쉬했던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인지 군대는 온통 사고 소식으로 얼룩진다. 운전하다 죽고 교통사고 나서 죽고 심지어 수영연습 하다가도 죽었다는 소식이다.

선임들의 끊임없이 자행되는 가혹행위로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윤 일병 사건. 작은 일에 감사하고 많이 배워 좋은 간호사가 되어 호스피스 병동에서 평생 봉사하며 살고 싶다던 수첩 속에 깨알같이 적혀 있던 그의 꿈은 이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 돼 버렸다.

잔혹한 가혹행위에 경악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법정시민감시단까지 꾸려 처벌을 호소하기에 이르고 군인권센터의 역할로 상해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기소하기까지 은폐, 축소에 이르는 군의 페쇄성에 분노했다. 어째서 군대 잔혹설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일까 . 군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의 설문조사 70% 이상은 그냥 참을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육군 4명 중 1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수직형 계급사회의 실상이다.

군복무 중 자식을 잃은 많은 부모들이 우리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달라고 피눈물을 흘리며 시위하는데도 군은 침묵하고 있었다. 여론이 잠잠해지고 유가족들이 지쳐 나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허망하게 아들을 떠나 보낸 부모들은 어딘가에 또다시 고통받고 있는 제2, 3의 윤 일병은 없는지 참담해 한다. 자식을 잃은 슬픔은 점점 더 또렷해져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고 비통해 한다.

군대에서 생긴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와 가족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았다. 제대를 하고서도 복학을 하여 활기차게 대학 교정을 누벼야 할 청년들이 외상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온전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채 심각한 군폭력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 마음은 ‘안 당해보면 모른다’고 가슴을 친다.

희망이 없는 시대, 지금 우리 사회는 혼란 속에서 한바탕 위기를 겪고 있다. 어느 집단이든지 갈등 없는 관계는 없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제대하는 그날까지 ‘몸조심해라’, 부모의 당부는 그것이다.

군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병영문화 개선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입대한 이 땅의 아들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옳은 것 아닌가. 날아갈 수 없는 혹은 날려 보낼 수 없는 아픈 통증들을 생각한다.
 
황숙자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