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들을 기억하며
꼴찌들을 기억하며
  • 경남일보
  • 승인 2014.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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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시인, 소설가)
인천 아시안게임이 한창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열리는 아시안게임이지요. 올림픽, 월드컵 축구 등 커다란 스포츠 제전이 연이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것을 보며 국력 신장을 새삼 느끼기도 합니다. 연일 선전하며 정상에 오르는 선수들을 보면 더욱 그렇지요. 그리고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면 단순한 관람자의 입장에서도 그들의 건각(健脚)이 부러운 게 사실입니다. 그만큼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온 결과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혼신을 다해 승리를 거머쥐고서 내지르는 환호와 시상대에 올라서서 흘리는 감격의 눈물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것은 선수 개인의 기쁨이기도 한 동시에 우리 모두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하여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물해준 그 선수들에게 감사하고 또한 마음껏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지요. 승자 못지않게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은 패자들입니다. 승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아니, 승자보다는 패자가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패자가 없으면 승자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수많은 패자 없이는 제 아무리 승자라고 해도 결코 빛을 발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저 단순한 논리구조를 갖추기 위한 담론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승자는 기억해도 패자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움은 바로 거기에 있지요.

오래 전, 한 소설가의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었지요. 그 책은 지금도 읽히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그처럼 많이 읽혔다는 것은 바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있다는 것의 방증이 아니겠는지요.

물론 이는 스포츠 경기에 한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승자와 패자가 갈리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승자는 내일의 패자를 예약해둔 것이고, 오늘의 패자는 내일의 승자를 예약해둔 것입니다.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승자의 환호도, 패자의 뜨거운 눈물도 모두 아름답지 않겠는지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승자보다 훨씬 많은 패자들 중에서 그래도 눈길을 놓을 수 없게 하는 것은 스포츠 약소국에서 온 선수들입니다. 메달을 다 휩쓸어가다시피 하는 스포츠 강국의 선수들 속에서 그들은 얼핏 초라하기까지 합니다. 부탄, 몰디브, 동티모르 등에서 온 선수들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선수들과는 게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지도 모르지요.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과 조국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하고, 그런 다음에는 금빛보다 더 환한 미소를 짓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오늘이 지난 내일에도 우리는 그들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지요.
 
전미야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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