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상(斷想)
가을 단상(斷想)
  • 경남일보
  • 승인 2014.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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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법학 박사· 전 진주경찰서장)
우리집에서 20여㎞ 떨어진 북천고을에 하양, 빨강, 분홍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그 옆에 메밀꽃들이 시샘을 하며 입술을 삐쭉거리고 있습니다. 바람결은 삽상하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하얗게 높이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가을빛이 완연해졌습니다.

세상의 온갖 허세를 다 부리며 큰소리 땅땅치고 다니면서도 가을 바람에 은행잎 하나 노랗게 물들어가는 것만 보아도 가슴이 뛰고 설렙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기분에 젖어 조금 숙연해지고 여러 가지 상념에 젖어들곤 합니다.

지난 여름 더위가 무서워 졸렬하게 계곡으로 숨어들었을 때 밤나무는 토실한 알밤을 만들기 위해, 감나무는 달콤한 과육을 불리기 위해, 그리고 길가의 코스모스들조차 화려한 가을을 꿈꾸며 불판 같은 뙤약볕을 묵묵히 견디어 내지 않았던가?

사람이 죽을 때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많이 베풀지 못한 것, 둘째는 참지 못한 것, 셋째는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이 중 많이 참지 못했던 것이 제일 아쉽고 후회스럽습니다. 그때는 내가 옳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이 지나고 보니 좀 더 참고 여유를 가지고 대처했더라면 내 인생이 좀 더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더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친 것이 아닌가 하고 후회합니다.

‘모죽’이라는 대나무가 있습니다. 이 모죽은 5년 동안 땅 위로는 하나의 싹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5년 동안 모든 성장은 땅속에서만 이뤄집니다. 그러다가 다섯 번째 해가 끝나갈 무렵의 어느 순간부터 하루에 80cm씩 무서운 속도로 거의 25m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로 자라납니다. 그렇게 한 순간에 커서 비바람 속에서도 눈보라 속에서도 100년을 견디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모죽에게 5년 동안의 시간은 과연 어떤 시간이었겠습니까? 땅 속에서 뿌리를 견고히 내리면서 모진 세월을 인내하며 견디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장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 때문에 때가 되어 땅 위에 올랐을 때, 다른 어떤 식물보다도 빨리 그리고 높이 자라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이 더디고 잘 진척이 되지 않아 언제 될까 싶은 일이나 사람도 어느 순간에 모죽이 크듯이 쑥쑥 잘 이루어지고 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이 80에 출사한 태공망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남들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는 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현재를 낭비하지 않으면서 꾸준히 노력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준비하는 인고(忍苦)의 시간이 지난 뒤에는 엄청난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강선주 (법학 박사· 전 진주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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